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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되는 윤 대통령 통화기록, 공수처 책임이다

이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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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분 걸림 -

'채 상병 수사 외압 사건'의 핵심 증거인 윤석열 대통령의 개인 휴대폰 통화기록이 2일 사라집니다. 이 휴대폰에는 윤 대통령이 지난해 8월 2일 해외출장중이던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과 세 차례 통화한 내용이 담겨있는데, 만 1년의 보존기한이 끝나 자동 소멸됩니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공수처는 최근 윤 대통령 휴대폰 압수수색 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됐다고 밝혀 통화 내용 확보는 불가능해졌습니다. 특검이 실시되더라도 통화 내용 확인은 미궁에 빠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치권에선 공수처의 늑장 대응 등 수사 의지 부족을 질책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윤 대통령과 이 전 장관의 통화 내용은 채 상병 수사 외압 사건에서 가장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통화 후 경북경찰청으로 이첩됐던 해병대 수사 보고서가 국방부로 회수됐고, 수사단을 이끌던 박정훈 대령은 보직 해임됐습니다. 모든 의혹의 정점에 이날 윤 대통령의 통화가 있다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윤 대통령의 휴대폰을 확보해 당시 통화 내용을 확인하면 수사 외압의 실체는 단숨에 풀릴 수 있지만 물거품이 됐습니다.

윤 대통령 휴대폰뿐 아니라 당일 윤 대통령과 통화한 상대방의 통화 내용도 2일에 함께 폐기될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해 8월 2일 윤 대통령은 이 전 장관 외에도 임기훈 국방비서관과 신범철 국방부 차관에게도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들의 휴대폰 통화 내용을 역으로 확인해도 의혹을 규명할 수 있지만, 공수처는 이 역시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들로부터 휴대폰을 임의제출받지 못했고, 압수수색 영장도 기각된 것으로 알려집니다.

윤 대통령 통화 내용 확보 실패의 일차적인 책임은 공수처에 있습니다. 법조계에선 혐의 관련성이 명확하지 않은 사건에 통신영장 발부를 잘 하지 않는 법원의 관행을 고려한다면 사전에 공수처에서 정황증거를 충분히 제시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 아니냐고 지적합니다. 이런 주장은 지난달 26일 국회에 출석한 송창진 공수처 수사2부장의 발언으로도 뒷받침됩니다. 그는 "통신영장을 청구하기에 부족한 부분이 있어 보완 의견을 낸 바 있다"고 밝혀 윤 대통령 등에 대한 통신영장이 급하게 청구됐음을 시인했습니다.

공수처에서 윤 대통령 휴대폰 영장 관련 사실을 뒤늦게 공개한 데 대해서도 뒷말이 나옵니다. 그간 언론과 정치권에선 윤 대통령 휴대폰 확보 필요성을 줄곧 제기했습니다. 하지만 공수처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다가 시일이 한참 지나서야 영장 청구와 기각 사실을 밝혔습니다. 그것도 국회 탄핵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공수처 수사 책임자가 의원들의 질의가 있자 마지못해 털어놨습니다. 전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사건에서 공수처가 지나치게 대통령실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됩니다.

법조계 일각에선 공수처의 통신영장 청구가 의례적이었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공수처가 수사 의지가 있다면 통화기록 폐기 전에 법원에 증거보전 신청이라도 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겁니다. 통상 증거보전은 보관기간이 정해진 휴대폰 통화기록이나 CCTV의 영상 등 자료확보가 시급한 경우 법원에 요청하는 것으로, 압수수색보다 훨씬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증거확보를 위한 모든 수단을 시도해보지 않고 영장을 청구했으니 할 일 다했다는 식이어서는 곤란하다는 얘깁니다. 그나마 항명 혐의로 재판을 받는 박정훈 대령 쪽이 지난달 30일 윤 대통령 휴대폰 등에 대한 증거보전을 군사법원에 요청했지만 시일이 촉박해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실제 채 상병 수사 외압과 관련해 '구명 로비' 등 각종 의혹이 커지고 있지만 공수처 수사는 지지부진합니다. 공수처는 지난 5월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을 불러 조사한 이후 두 달 넘게 주요 인물에 대한 공개소환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구명로비 의혹도 답보상태입니다. 이런 가운데 윤 대통령은 공수처 수사를 실질적으로 지휘하는 차장 자리를 공석으로 놔둬 공수처 힘을 빼려는 의도라는 비판이 제기됩니다. 공수처장이 검찰 출신 변호사를 차장으로 임명 제청한 지 20일이 넘었지만 임명하지 않고 있습니다. 공수처의 채 상병 수사가 안팎으로 기로에 섰습니다.  

[메아리] 제2부속실은 독(毒)이 될 수도 있다

대통령실이 김건희 여사를 보좌할 제2부속실 설치 방침을 밝히자 만시지탄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한국일보 이영태 논설위원은 제2부속실 설치로 김 여사의 활동이 투명해지긴 하겠지만 두고볼 일 이라고 말합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 여사가 바뀌지 않는다면, 제2부속실이 외려 김 여사 국정 개입의 탄탄한 방패막이 될지도 모른다고 경고합니다. 👉 칼럼 보기

[세상읽기] 복기의 시간, 1/N의 책임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집니다. 서복경 더가능연구소 대표는 대통령 탄핵까지 거론되는 현 상황의 가장 큰 책임은 윤 대통령에 있지만, 우리가 한번도 아니고 두번이나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에 대해선 각자 함께 복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지난번 우리는 너무 쉽게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준 것 아니냐는 질문을 던집니다. 👉 칼럼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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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한국일보 전 주필. 1987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사회부장, 편집국장, 수석논설위원, 주필을 역임했습니다. 만 35년 간의 기자 생활을 마치고 2022년 12월 퇴사했습니다. 오랜 기자 경험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우리 사회 현안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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