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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尹, 경선 불개입 선언하라

이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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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분 걸림 -

'UAE의 적은 이란' 발언 파문으로 가려지긴 했으나 윤석열 대통령의 '세일즈 외교' 평가에 인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이란이 우리 대사를 불러 항의할 정도로 화가 단단히 난 만큼 현명한 후속 조치가 절실하다. 아무튼 윤 대통령은 이번 국빈 방문을 통해 한국의 높아진 국격을 재차 확인하고 어깨도 으쓱했을 것이다. 하지만 귀국길에 오른 윤 대통령의 발걸음은 무거울 수밖에 없다. 골치가 지끈거리는 현안이 산적한 탓일 게다.

당장 윤 대통령이 해결해야 할 사안은 국민의힘 내홍이다. 나경원 전 의원의 당 대표 출마를 둘러싼 혼란은 점입가경이다. 급기야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까지 저격에 가세했다. 그런데 성명의 마지막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대통령께서 나 전 의원의 그간 처신을 어떻게 생각하실지는 본인이 잘 알 것"이라는 대목이다. 나 전 의원 출마를 막는 장본인이 바로 윤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드러낸 것이다. 결국 이 사태를 풀 당사자는 윤 대통령임을 공개적으로 시인한 셈이다.  

국민의힘 '3∙8전당대회'는 한국 정당사에 남을 오욕의 과정을 써가고 있다. 특정 후보 출마를 막는 '집단린치'는 군사독재 시절에도 보기 어려웠던 장면이다. 오로지 대통령 한 사람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서라는 게 더 고약하다. 한 보수논객은 박근혜 대통령도 당 대표 선거에 이 정도로 개입하진 않았다고 꼬집었다. 국민의힘 지지층조차 고개를 갸웃거린다고 하니 대다수 국민이 어떤 생각을 할지는 물어보나 마나다.  

정당민주주의 퇴행의 끝판을 보여주는 이번 사태를 막을 사람은 윤 대통령밖에 없다. 상황을 이 지경으로 악화시킨 당사자로서 결자해지의 자세를 가져야 하는 건 당연하다. 기성 정치에 때 묻지 않은 그에게 걸었던 많은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게 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 당 대표 선거에 개입하지 않고 중립을 지키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일체의 당무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며, '윤핵관'과도 절연하겠다고 약속해야 할 것이다.

발걸음 무거운 귀국길, 해결할 현안 산적
與 내분 책임 윤 대통령, 나경원 족쇄 풀어야
이재명 언제까지 투명인간 취급할 순 없어
'날리면' 소송 철회하고, 언론 소통 강화를

향후 정치 일정을 감안하면 윤 대통령이 실질적으로 일할 수 있는 시기는 올해뿐이다. 윤 대통령도 가시적 성과를 내기 위해 정책적 드라이브를 거는 모습이다. 하지만 그도 절감했듯이 야당과 협치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아무리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는 대통령이라도 국회의 입법권을 뛰어넘을 방법은 없다. 윤석열 정부 브랜드가 될 '3대 개혁'도 다수당인 야당의 도움없이는 공염불이다.

윤 대통령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범죄자'로 규정해 만나기 싫어한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재명을 빨리 구속시킨 뒤 후임자와 회동하려는 생각"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하지만 현재 국회 상황으로 보면 구속은 언감생심이다. 지금까지 검찰이 밝혀낸 것으로는 당 대표 자리를 빼앗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언제까지 이 대표를 투명인간 취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협치를 하지 않아 손해보는 쪽은 야당이 아니라 대통령과 여당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윤 대통령이 풀어야 할 또하나의 시급한 과제는 언론과의 관계다. 대통령실은 UAE 방문 전용기 MBC기자 탑승 허용을 "대통령의 통 큰 결단"이라고 했지만 다른 한편으론 '바이든-날리면' 소송을 제기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였다. 윤 대통령의 언론관은 '검찰이 흘려주면 받아먹는다'는 검찰 시절의 퇴행적 사고에 머물러 있다. 출근길 약식 문답을 중단한 것도, 신년 기자회견을 생략한 것도 그런 인식의 결과일 것이다.

언론은 누구도 이용할 수 없고 이용당해서도 안 된다는 건 철칙이다. 대통령이 필요할 때만 우호적인 기자, 언론사와 만나고 인터뷰하는 건 소탐대실이다. 국민의 목소리를 외면해서는 국정 운영이 제대로 될 리 없고, 결국은 정권의 부담으로 돌아간다. 황당한 '대리 소송'은 철회하고, 기자들과의 만남은 늘려야 한다. 용산으로의 대통령 집무실 이전 명분으로 '열린 소통'을 내세운 게 윤 대통령 자신이었던 사실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설 연휴를 국정의 분기점으로 활용한 이들이 적지 않다. 개각 등 인사 쇄신과 정책 기조 변화, 소통 강화 등 심기일전의 계기로 삼았다. 윤 대통령은 '경제∙안보' 위기 속에 여야 관계와 소통 등 고차원적인 과제에 봉착해있다. 근본적 문제는 대통령의 태도에 있다. 지난 9개월 간 오만과 독선에 빠지지 않았는지 돌이켜보기 바란다. 그렇게 해서 달라진 모습과 마음가짐으로 국민 앞에 나타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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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한국일보 전 주필. 1987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사회부장, 편집국장, 수석논설위원, 주필을 역임했습니다. 만 35년 간의 기자 생활을 마치고 2022년 12월 퇴사했습니다. 오랜 기자 경험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우리 사회 현안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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