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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누가 미국에 선을 대나

이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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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시혁 하이브 의장 출국금지를 해제해달라는 주한미대사관의 요청은 의심스러운 대목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방탄소년단(BTS) 공연과 미국 독립 250주년 기념행사 참석 지원을 위해서라는데, 정작 하이브는 "공식 참석 요청을 받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행사 성격상 방 의장 참석이 꼭 필요한지도 의문이고, 정식 창구인 외교부를 통하지 않고 경찰에 직접 서한을 보낸 것도 석연치 않다.

부적절한 절차와 과정은 흑막을 낳는다. 방 의장이 미국 측을 움직여 경찰에 우회적인 압력을 넣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그가 굳이 미국 독립기념 행사를 보고 싶어 그랬을 것 같지는 않다. 방 의장은 기업공개를 앞두고 투자자들을 속여 지분을 팔게 함으로써 1900억원의 부당이득을 얻은 혐의를 받고 있다. 그런데 이 계획을 공모한 것으로 추정되는 하이브 전 투자최고책임자가 지난해 돌연 미국으로 출국해 잠적했다. 수사가 조여오자 방 의장이 이 인물을 만나 입을 맞추려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 같은 추론이 사실이라면 쿠팡 총수인 김범석 의장 뺨치는 수법이다. 미국 정부는 최근 김 의장 법적 안전이 보장되지 않으면 한·미고위급 채널 가동이 어렵다는 뜻을 우리 정부에 전해왔다. 김씨가 한국에 오더라도 신변에 영향이 없게 하겠다는 약속을 해야 핵추진잠수함 도입 등을 논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쿠팡 기업에 대한 규제와 불이익을 문제삼는 게 아니라 김범석 개인의 신변을 거론한 것이 기이하다. 국가 정상 간에 합의한 안보 현안을 한 개인의 법적 처분과 연계한다는 것 상식을 뛰어넘는다. 그것도 주권국가의 사법권까지 침해하면서 말이다.  

쿠팡의 미국 정부를 향한 로비는 미 외교가에서도 정평이 나있다. 쿠팡은 2021년 나스닥 상장을 계기로 미국 대관 활동을 본격화한 이후 매년 관련 예산과 로비스트 수를 지속적으로 늘려왔다. 주목할 건 쿠팡 노동자 사망, 온라인 플랫폼 규제법 등 국내에서 논란이 커질 때마다 로비 예산이 증액돼 왔다는 점이다. 한국 유통시장을 장악하며 막대한 매출과 이익을 얻고 있으면서도 미국 국적이라는 방패 뒤로 숨는 김 의장에게서 책임지는 기업인의 모습은 찾기 어렵다.

미국 방시혁 출금해제 요구 의문투성이
쿠팡 총수 김범석 로비 행태와 닮은 꼴
'정보 누설' 사건 배경에도 친미 그림자

쿠팡을 돕는 세력은 미 정부와 일부 미 의원만이 아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미국 방문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직후 열린 최고위원회에서 "쿠팡 사태를 포함해 이재명 정부의 반미·반기업 기조가 국내 경제 발목을 잡고 있다"고 말했다. 베일에 가려진 장 대표의 방미 일정 중 만난 인사로부터 쿠팡 관련 이야기를 들은 것으로 짐작되는 대목이다. 장 대표가 유독 보안을 강조하는 걸 보면 국내의 반쿠팡 정서와 정부의 정당한 조치를 설명하기 보다는 일방적 주장에 동조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우리 정부 내에서도 미국에 줄대는 이들이 존재하는 것 같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기밀 누설' 논란이 그런 의혹을 촉발했다. 미국이 한국 정부와 갈등으로 대북 정보를 제한한 사례는 왕왕 있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이 외부로 노출되지는 않았다. 불만이 있어도 알려질 경우 북한만 이롭게 하는 터라 이를 공개하거나 문제 삼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엔 사실상 실시간으로 언론을 통해 부각됐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흘렸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이재명 대통령이 인도 방문 중에 "대체 왜 이런 터무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자세히 알아봐야겠다"고 말한 것도 이를 암시한다. 일각에선 논란이 불거진 배경으로 자주파와 동맹파 갈등을 거론하고 있다. 언론에 등장한 소식통이 '동맹파'라는 추측도 나온다. 한미 공조보다는 남북 관계 복원을 중시하는 자주파를 곤경에 빠트리기 위한 소행이라는 것이다. 안보 정책을 둘러싼 이견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만 내부 토론을 통해 해결해야지 누구를 골탕먹이는 식으로 풀 문제는 아니다. 한미 갈등을 부추긴다는 점에서 중대한 국익 침해 행위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한 미국은 우리가 알던 미국이 아니다. 무차별 관세폭탄과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이란 전쟁은 우리 경제에 직격탄을 날렸다. 동맹까지 적으로 돌리는 트럼프의 좌충우돌에 전 세계가 등을 돌리고 있다. 이런 마당에 개인적, 정치적 이익을 위해 미국에 선을 대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국민을 배신하는 행위라는 것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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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한국일보 전 주필. 1987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사회부장, 편집국장, 수석논설위원, 주필을 역임했습니다. 만 35년 간의 기자 생활을 마치고 2022년 12월 퇴사했습니다. 오랜 기자 경험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우리 사회 현안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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