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는 '기울어진 대법원' 바란다
대법관 '패싱 제청' 파동, 보수 일색 대법원 유지 속셈
추천위 새로 구성해 보수 성향 인물 재제청 전망 우세
대법원 보수 진보 12대 2, 남여 11대 3으로 불균형
청와대의 대법관 재제청 요구를 받은 조희대 대법원장의 선택이 주목되는 가운데, 조 대법원장의 숨은 의도에 관심이 쏠립니다. 조 대법원장이 대통령과 충분한 협의를 거쳐 제청하는 그동안의 관례를 깬 배경에는 현재의 보수 일색의 대법원 구성 유지하려는 속셈으로 보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조 대법원장은 남은 후보는 배제한 채 새로 구성한 추천위에서 추천한 후보 가운데 자신의 마음에 드는 보수 성향의 인사를 다시 제청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내년 6월 임기 만료 때까지 '보수 대법원' 체제 사수를 위해 물러서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법조계에서 나옵니다.
조 대법원장은 대법관 후보자 제청권을 저항의 수단으로 쓰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았습니다. 그가 후보 제청을 7개월 가까이 미룬 이유가 진보적 성향의 김민기 서울고법 판사는 절대로 대법관을 시키지 않겠다는 강한 '소신'이 바탕에 깔려있다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관측입니다. 한때 김 판사 배우자가 현직 헌법재판관이어서 제청을 꺼린다는 말이 나왔지만 이는 의도적으로 흘렸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최근 국회에 출석한 법원행정처장은 대법관과 헌법재판관 부부는 결격 사유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법원 안팎에서는 조 대법원장이 김 판사의 전력을 불편하게 생각한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김 판사는 이명박 정권 당시 광우병 촛불집회 재판에 개입한 신영철 서울중앙지법원장에게 대항한 판사중 한명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신 법원장은 보수 성향이 강한 재판부에 사건을 집중적으로 배당했는데, 김 판사 등이 이에 반발해 사회적 파문이 컸습니다. 이 사건으로 김 판사가 법원 내부 보수 세력으로부터 미운털이 박혔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청와대의 대법관 재제청 요구에도 조 대법원장이 기존 추천 후보를 무시하고 새로운 추천위를 구성할 거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런 상황을 반영합니다.
조 대법원장이 내달 퇴임하는 이흥구 대법관 후임으로 보수 성향의 김성수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제청한 데서도 그런 기류가 읽힙니다. 대법관 후보 추천위는 이달 초 김예영 서울남부지법 부장판사 등 4명을 추천했는데, 조 대법원장은 이중에서도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김성수 부장판사를 제청했습니다. 함께 추천된 김예영 서울남부지법 부장판사는 지난해 전국법관대표회의 의장을 맡아 활동한 데다 유일한 여성 후보로 대법관 후보로 가장 적합하다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시민사회와 법조계에서는 이흥구 대법관이 대표적인 진보 성향 대법관으로 꼽히는 만큼 후임자도 '진보' 성향의 인사를 제청해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조 대법원장은 이를 철저히 외면했습니다.
조 대법원장이 새로운 추천위원회를 꾸릴 거라는 전망이 우세한 데는 추천위 구성 과정에서 대법원장의 입김이 작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대법관 후보 추천위원 10명 가운데 4명은 대법원장이 임명하고, 당연직인 법원행정처장과 선임 대법관은 대법원장과 사실상 한몸입니다. 추천위원 6명이 사실상 대법원장의 영향력 아래 있는 구조입니다. 애초 대법원이 지향해야 할 다양성의 가치를 실현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게다가 추천위에서 올린 후보들 가운데 여성이나 진보 성향의 인사는 조 대법원장이 의도적으로 배제해 대법원 구성이 상당한 불균형 상태에 놓였다는 게 법조계의 지적입니다.
현재 대법원은 이념적 성향이 절대적으로 보수 우위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흥구 대법관이 퇴임하면 진보 성향은 천대엽·오경미 대법관 2명에 불과합니다. 여기에 김성수 대법관이 가세하고, 조 대법원장이 또한명을 보수 성향 인물로 앉힐 경우 대법원장 등 14명의 대법관 가운데 보수 대 진보는 12대 2의 구도가 됩니다. 현재 남성 11명, 여성 3명으로 크게 기울어진 대법관의 성비도 개선되지 않게 됩니다. 문재인 정권 때 4명이었던 여성 대법관이 3명으로 줄어 대법원이 사회적 다양성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는 점에서 퇴행적이라는 비판이 뒤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조 대법원장은 자신이 사법부 보수 세력의 '적통'을 잇는다는 착각에 빠진 듯합니다. 퇴임 전까지 지금의 보수화된 대법원 체제를 지켜야 한다는 그릇된 사명감에 몰입된 모습입니다. 조 대법원장은 유례없는 '대통령 패싱 제청' 사태에 여태껏 한마디 유감 표명도 하지 않았습니다. 헌법에 보장된 제청권을 무기로 대법관 장기 공백의 책임을 대통령에게 떠넘기는 교묘한 술수를 동원했습니다. 대법원장의 부적절한 처신으로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곤두박질쳤는데도 '대법원 보수화'라는 허황된 가치에 집착해 정국을 혼란에 빠트리고 있습니다. 이제라도 청와대와 충분한 협의를 거쳐 대법관 후보를 제청하는 게 사태를 수습하는 유일한 해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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