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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윤석열도, 한동훈도 무능했다

이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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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분 걸림 -

진흙탕 싸움으로 번진 '김건희 문자' 파문의 승자는 외견상 한동훈 후보로 보인다. 문자 파동 전후 여론조사를 비교하면 '어대한' 추세는 꺾이지 않고 견고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원희룡이 수세에 몰리고 한동훈이 되레 공세를 퍼붓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가는 방망이 오는 홍두깨'라는 말이 딱 제격이다.  

그렇다고 한동훈이 온전히 이겼다고 보긴 어렵다. 내상과 후유증이 만만치 않아서다. '감히 영부인 문자를 씹다니' 따위의 말을 하자는 게 아니다. 나경원은 '판단 미숙'이라고 애써 순화했지만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정치인으로서 자질 부족을 드러낸 치명적 결함이다. 총선을 지휘하는 비대위원장 입장에서 김 여사 사과는 선거 판도를 바꿀 중대 변수였다. "사과를 수용했으면 20석은 더 건졌을 것"(조정훈 의원)이란 말은 다소 과장됐지만 여당에 유리하게 작용했으리라는 건 부인할 수 없다.

한동훈의 '읽씹'은 당원과 지지자들에게 찜찜함을 남겼다. 당장은 미래권력인 한동훈의 손을 들어주지만 '과연 믿을 수 있는 사람인가'라는 의심을 갖게 만들었다. "김 여사 문자 내용은 사과가 힘들다는 뜻"이었다는 한동훈의 해명은 전문 공개로 힘을 잃었다. 영부인 문자에 답하면 국정농단이라고 판단했다는 말을 따른다해도 왜 즉시 대통령실과 논의하지 않았는지, 왜 김 여사 사과 의사만이라도 공개하지 않았는지 의문은 꼬리를 문다.

한동훈이 대통령실에 여러차례 사과를 요구했다는 말도 변명처럼 들린다. 그는 명품백 수수 의혹이 불거지자 일관되게 '함정 몰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국민 눈높이'라는 애매모호한 말을 흘리고, 대통령실과 갈등설에 "갈등 같은 건 없다"고도 했다. 심지어 한 언론사 질문에 "제가 김 여사 사과를 이야기한 적이 있던가요"라고 반문하며 정정보도 청구까지 냈다. 이쯤되면 그의 말을 얼마나 믿을 수 있는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한동훈, 외견상 승리에도 내상 만만찮아
윤 대통령도 김 여사 문제 부각돼 타격
정치인 자질 부족 드러난 검사 선후배

한동훈이 당 대표에 오르면 정무감각 부족 문제는 더 크게 불거질 수 있다. 차기 대선을 노리는 한동훈이 윤석열 대통령과의 차별화 행보를 가속화하면서 국민의힘이 분당 사태까지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가 보수층에 팽배하다. 이를 막기 위해선 고도의 정치적 계산과 줄타기가 필요한데 한동훈에게 그럴 역량이 있을까를 걱정하는 것이다. 당장 한동훈표 '채 상병 특검법'을 둘러싼 내홍이 시험대가 될 것이다.

한동훈의 상처가 미래형이라면 윤 대통령의 타격은 현재진행형이다. 윤 대통령 부부든, '친윤'이든 한동훈을 거꾸러뜨리겠다는 계략은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 권력이 아직도 기세등등하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던 윤 대통령은 손 밑으로 모래가 빠져나가고 있음을 실감했을 터다. "국민의힘 전당대회 선거 과정에서 일절 개입과 간여를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대통령실 입장 발표는 무력감의 실토나 다름없다. 불과 1년 전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던 호기는 어디로 갔나.

윤 대통령에겐 김 여사 사과를 정국 반전의 계기로 삼을 기회가 여러차례 있었다. 하지만 그에겐 그럴만한 정치적 식견이나 혜안이 없었다. 여전히 검찰총장 때 사고에 머물러 한동훈에게 '이런 XX'라는 극언을 퍼붓는 모습에서 뭘 기대할 수 있을까 싶다. 한 여권 관계자 말처럼 "자기 감정도 못 다스리는 미성숙한 대통령"이란 이미지만 국민들에게 각인시켰다.

이번 '김건희 문자' 사태로 확인된 건 윤석열과 한동훈의 무능이다. 수십 년간 연을 맺고 한 몸처럼 지낸 그들의 권력 싸움에 국민의힘은 선거에도 패하고 이젠 극단적 분열의 길로 향하고 있다. 얼떨결에 국민의힘에 몸을 담은 두 사람은 여태껏 보수정권과 보수정당의 가치와 비전을 제대로 내놓은 적이 없다. 상대방 공격과 흠집찾기, 위압적 상명하복, 소통 단절 등 특수부검사식 사고와 문화,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섣불리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한계다. 검사 선후배가 이끌 나라의 앞날이 심히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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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한국일보 전 주필. 1987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사회부장, 편집국장, 수석논설위원, 주필을 역임했습니다. 만 35년 간의 기자 생활을 마치고 2022년 12월 퇴사했습니다. 오랜 기자 경험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우리 사회 현안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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