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 대통령의 '책임정치'
이재명 대통령을 연상시키는 단어를 꼽으라면 '유능'이다. 임기 초반 지지율 고공 행진은 다른 건 몰라도 일은 잘 한다는 '일잘러' 이미지가 크게 작용했다. 대선 때 이재명을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자발적 '뉴이재명' 세력으로 편입한 것도 탁월한 행정력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유능한 행정가' 이재명 이미지에 균열이 생긴 단초는 6·3 지방선거 결과다. 대통령 얼굴로 치러지는 집권 1년의 선거에서 나타난 기대밖의 성적표는 이 대통령의 능력에 의구심을 품는 계기가 됐다. 이재명이라면 뭐든 잘할 것 같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실망감과 함께 이 대통령을 다시 보는 '현실 자각'의 순간을 맞게 한 것이다.
선거에서 불의의 타격을 입은 이 대통령에게는 반전의 기회가 있었다. 선거 전후로 국정의 상당 부분을 잠식해온 부동산 문제와 검찰개혁이 그것이었다. 거의 모든 국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이들 사안을 어떻게 풀어가느냐에 이전으로 돌아갈지, 아니면 침체의 늪으로 빨려들지가 달려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만 보면 이 대통령의 판단은 그리 성공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집값 문제는 사실상 이 대통령이 주도해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올 초부터 하루에도 몇 차례씩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리며 강한 해결 의지를 보여왔다. 대통령이 직접 팔 걷고 나섰으니 집값이 잡힐 거라는 기대가 치솟았다. 대선 때는 팔짱 끼고 있던 이 대통령이 부동산 문제 해결에 갑자기 나섰으니 밑에서부터 치밀한 준비와 대책이 마련되고 있을 거니 했다.
그렇지 않았다. 청와대도 민주당도, 하다못해 국토교통부 등 관련 부처도 뒷짐을 지고 있었다. 그 결과, 반년 넘게 만지작대던 세제 개편은 정작 발표됐을 때 구멍이 숭숭 뚫린 상태였고, 공급은 그제서야 택지를 찾겠다며 허둥댔다. 그린벨트를 해제하면서까지 부지를 마련할 요량이었다면 진작부터 서둘렀어야 하지 않았겠나. 서울의 주택 공급을 늘리겠다면서도 서울시장과 담을 쌓고 있었던 것도 성과를 중시하는 이재명 정부답지 않은 태도다.
부동산 대책, 보완수사권 문제에서도 타격
아랫사람에 책임 넘기는 듯한 태도 잘못
보완수사권 폐지 논란의 중심에도 이 대통령이 있었다. 이 대통령은 줄곧 보완수사권 폐지에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피해자 보호와 권리구제가 그만큼 중요하다고 판단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 전당대회 국면에서 이 문제가 쟁점이 되자 너무 쉽게 손을 놓아버렸다. 만약 이 대통령이 끝까지 입장을 바꾸지 않고 강성 당원들을 설득하는 모습을 보였더라면 지금처럼 곤혹스런 상황에 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도자가 유능하다는 건 단순히 업무 능력이 뛰어난 것만이 아니라 책임을 피하지 않는 자세도 아우른다. 일이 잘못됐을 때 대통령이 아랫사람을 추궁하는지, 그 책임까지 떠안는지를 국민은 유심히 지켜본다. 이 대통령은 세제 개편안에 대한 여론의 반발이 크자 국무회의에서 "세금을 만지는 사람은 제도를 바꾸면 욕을 먹게 돼 있으니 재경부 장관님은 무조건 기어서 다니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3시간이 넘는 부동산 대토론회를 주재하며 보유세 방향까지 직접 제시하는 장면을 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겠나.
주요 정책을 놓고 부처 장관들이 딴소리를 하는데도 대통령이 "자연스런 현상"이라며 방치하는 것도 국민들에게는 무책임하게 보일 수 있다. 정부 내에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고, 이를 치열한 토론으로 정책을 만드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이견 조정은 물밑에서 이뤄져야 한다. 장관들이 공개된 자리에서 같은 사안에 정반대 의견을 내는 모습을 정상적이라고 보는 국민은 드물다. 의견을 조정하고 매끄럽게 매듭짓는 리더십도 대통령의 역할이자 능력이다.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일어난 쿠바 피그스만 침공 사건이 대실패로 끝나자 공식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그러자 지지율이 수일만에 10% 넘게 뛰었다. 당시 기자들이 사과의 배경을 묻자 그는 '승리했을 때에는 자기 공이라고 나서는 사람이 100명이지만, 실패했을 땐 나서는 사람이 없다'는 속담을 인용하며 이렇게 말했다. “추가적인 발표나 구체적 논의를 한다 해서 책임을 피할 순 없다. 내가 이 정부의 최종 책임자이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6월 유럽 순방 중 막스 베버의 글을 인용해 "좋은 의도만 앞세우고 결과는 나 몰라라 하는 '신념윤리'보다 결과를 예측하고 책임지는 '책임윤리'가 정치인에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민의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며 결과로 증명해야 하는 책임을 강조한 발언이다. 당시 민주당 지도부의 독선적 운영을 겨냥한 말이지만 이는 이 대통령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다. 이 대통령의 유능하다는 이미지는 책임정치를 실현할 때 다시 회복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