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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기시다와는 네 번째, 시진핑은 안 만나나

이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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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분 걸림 -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 기시다 총리와 미국 바이든 대통령을 또 만난다. 이번엔 19일부터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G7 정상회의에서다. 취임 후 1년 만에 각각 세 번의 한미 정상회담, 한일 정상회담이 열렸다. 21일 한일 정상회담을 포함하면 기시다 총리와 네 번째 머리를 맞대는 셈이다. 정상 간 사이가 좋지 않으면 이렇게 자주 만날 수가 없다. 시쳇말로 '꿀 케미'다.

기시다 총리는 G7 정상회의 개최에 많은 공을 들였다. 자신의 고향이자 세계 최초로 원자폭탄이 투하됐다는 '피폭지' 이미지를 활용하기에 적합한 장소라는 점이 고려됐을 것이다. 이번 회의를 통해 일본의 군사안보적 이익을 최대화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려는 게 기시다 총리의 계산이다. 미 시사잡지 타임이 이번 주 표지인물로 기시다 총리를 선정하면서 "오랜 평화주의를 버리고 자국을 진정한 군사대국으로 만들려 한다"고 밝힌 것도 이를 보여준다. 타임은 기시다 총리가 강조하는 '핵무기 없는 세상'과 '방위력 강화'가 서로 충돌해 모순된다는 의견도 소개했다. 기시다 총리와 일본 극우 세력의 속내를 정확히 꿰뚫어 본 것이다.

주목할 건 윤 대통령이 기시다 총리의 의도를 알고 있느냐는 점이다. G7 초청에 숨겨진 의미를 모른 채 기시다 총리의 장단을 맞춰주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대통령실은 기시다 총리와 윤 대통령이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공동 참배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양국 정상이 공동으로 한국인 위령비를 공동 참배하는 것은 처음이며, 한국 정상으로서도 첫 참배라니 의미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시다 총리가 진정 한국인 원폭 희생자들을 위로하는 마음에서 행사를 마련했는지는 의문이다. 원폭 희생자 대부분은 일제의 강제동원으로 끌려갔다 목숨을 잃은 이들이다. 강제동원 피해자 사과와 보상은 철저히 외면하면서 원폭 희생자를 추모한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히로시마에서 한국인 원폭 피해자를 직접 만나 위로할 예정이라는 윤 대통령도 일방적인 '강제동원 제3자 변제' 방식과의 모순을 인식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尹, 히로시마 G7에서 기시다, 바이든과 또 회동
일본, 군사대국화와 후쿠시마 방류 인정 노림수
미국과 일본에 일방적으로 쏠리는 외교에 우려
정작 미일은 中 만나는데 한국은 중국견제 선봉 

일본의 G7 개최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해 국제적 인정을 받으려는 속셈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가 정상회의에서 후쿠시마산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각국 정상들에게 대접하겠다고 한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일본은 2021년 도쿄올림픽 때도 후쿠시마산 식재료를 공급해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당시 한국은 식재료를 본국으로부터 직접 공수해 선수단에게 음식을 제공했다. 가뜩이나 한국 정부의 일본 시찰단 방문이 들러리에 불과할 거라는 우려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이 음식을 먹을 것이냐가 관심거리로 등장했다.

G7 기간 열리는 한미일 정상회담에선 북한의 미사일 경보 정보를 실시간 공유하는 방안이 논의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되면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한 한국의 우월한 정보를 일본은 실시간으로 받아볼 수 있다. 한국으로선 대중 견제를 위한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계에 사실상 편입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이런 조치는 미국의 요구에 따른 것이라는 게 안보전문가들 분석이다. 이번 G7에서 채택될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는 공동성명도 미국과 일본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일련의 상황은 한국이 미국과 일본의 요구를 얼마나 충실히 수용하는지를 보여준다. 미중 경쟁 격화와 신냉전 구도에서 어느 정도 불가피성을 인정한다 해도 지나치게 종속적이란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은 '빈 잔'을 채울 생각이 전혀 없고, 미국도 반도체법과 IRA법으로 인한 한국의 피해에는 별 관심이 없는 상황에서 한국이 얻는 실익이 뭔지 의문을 갖는 국민이 적지 않다.

한국이 간절이 원하는 G7 가입만 해도 그렇다. 한국은 이번 G7에 옵서버 국가로 초청됐다. 한국 정상으로는 역대 네 번째 참석인 데다 한일 관계 개선으로 G8로의 확대 기대감이 컸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 국무부는 "회원국 변화와 관련한 어떤 논의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고 선을 그었다. 일본의 견제도 만만찮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시아 유일 회원국으로서의 영향력이 약화할 것이라는 일본의 본심이 작용했을 것이다.

더 한심한 건 한국이 대중국 견제 최선봉에 서는 사이 미국과 일본은 '이중플레이'를 펴며 자신들의 이익을 마음껏 챙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미국과 중국의 외교·안보 사령탑이 제3국에서 예고 없이 회담을 갖고 관계 회복에 나섰다. 일본 외무상도 지난달 3년 만에 중국을 방문해 양국의 지속적인 소통 필요성에 공감했다. 당장은 서로 각을 세우며 견제하면서도 뒤로는 '윈윈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반면 윤석열 정부에선 대중정책이란 게 없다. 윤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이 지난해 말 잠깐 만난 후 반년 동안 고위급 회담이 열리지 않고 있다. 일각에선 윤 대통령이 대중국 관계에 손을 놓고 있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친중(親中) 행보에 대한 반발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윤 대통령이 굳이 하지 않아도 할 발언으로 중국을 자극하는 모습을 보면 터무니 없지 만은 않다. 잘못된 내치(內治)는 바로잡을 수 있지만 국가 간 관계는 방향을 잘못 잡으면 쉽게 되돌리기 어렵다. 한중관계가 악화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감당해야 한다.  

윤 대통령은 "1년 전 이맘때를 생각하면 외교안보만큼 큰 변화가 이뤄진 분야도 없다"고 강조했다. 외교안보 분야에서 자신의 치적을 강조하는 말이겠지만 거꾸로 생각하는 국민이 적지 않다. 외교가에서 오랜 격언은 국제사회에서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방도 없다는 말이다. 미중이 적대적 관계를 전환한다면 한국은 낙동강 오리알이 될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윤 대통령이 어설픈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국익을 훼손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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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한국일보 전 주필. 1987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사회부장, 편집국장, 수석논설위원, 주필을 역임했습니다. 만 35년 간의 기자 생활을 마치고 2022년 12월 퇴사했습니다. 오랜 기자 경험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우리 사회 현안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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