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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정치인 한동훈'의 밑천

이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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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분 걸림 -

지난달 27일 국회 체포동의안 표결 당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설명은 '정치인 한동훈'의 데뷔 무대를 방불케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신상발언이 5분에 그친 반면 한 장관은 15분 동안 장광설을 폈다. 그는 노웅래 의원 체포동의안때 '돈 부스럭거리는 소리'의 역풍을 의식한 듯 이번엔 '휴대폰 영업사원' 등의 비유를 써가며 이 대표를 몰아세웠다. 일타강사 같은 화법에 여권에선 "당장 출마해도 손색없다"는 찬사가 쏟아졌다.

한 장관이 정치인으로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는 인상은 정순신 국가수사본부장 낙마 사태에서 각인됐다. 그는 검증 실패 논란에 "정무적 책임감을 느낀다"면서도 실제로 책임을 지진 않겠다고 했다. 교묘하게 책임을 회피하는 화법이 정치인 뺨칠 정도다. 모두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니 마지못해 입을 뗀 게 그 모양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초 김인철 정호영 송옥렬 등 '인사 참사'가 속출할 때 그나마 일언반구 유감 표명도 없었던 것에 비하면 낫다고 할까.

그때나 지금이나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을 책임진 법무부 인사정보단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검증 대상이 누군지, 어떤 절차와 과정을 거치는지 알 도리가 없다. 한 장관은 지난해 "정치 권력의 비밀 업무였던 인사 검증이 감시받고, 국회와 언론이 질문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자랑했지만 식언(食言)이 된 지 오래다. 자신의 말을 지키지도 못하고, 책임도 지지 않는 사람이 정치인이 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돌이켜보면 한 장관은 검사 시절 자신의 이해에 유독 철저했다. '검언유착' 의혹 사건 피의자로 수사받을 당시 그는 육탄전까지 벌이면서 아이폰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고 버텨 결국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2020년 '고발사주' 의혹이 불거졌을때는 김건희 여사와 수백 차례의 카톡 대화를 주고받은 사실이 드러났지만 건재했다. 법무부 장관이 된 후에는 '살아있는 권력' 수사에 침묵하는 모습으로 자신의 이해를 도모하고 있다. 김 여사 주가조작 의혹을 뭉갠데 이어 김 여사가 운영하는 전시기획사 코바나컨텐츠의 '대기업 협찬' 의혹도 최종 무혐의 처분했다.

정순신 검증 실패 책임감 느끼지만 책임은 안 지겠다는 궤변
'검언유착' '고발사주' 의혹때 자기 이해 철저했던 모습 겹쳐
법무 장관 정책적 성과는 없고 검찰 권한 확대와 야당 잡기뿐
비중있는 정치인 되려면 윤 대통령 그늘 벗어나 역량 보이길

법무부 장관으로서 한동훈은 낙제점에 가깝다. 취임 후 한 일이라고는 축소된 검찰 수사권 되돌려 놓기와 야당과 전 정권 때려잡기 외엔 기억나지 않는다. 마치 검찰의 수장처럼 행동을 하고 있으니 그도, 국민도 검찰총장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인권 보호의 주무부처로서의 역할은 포기하고 검찰의 몸집만 키우려는 행태는 퇴행적이다. 정책적 성과는 없이 권력의 비호를 받아 정치인으로 직행하는데 우려가 없을 수 없다.

사실 한 장관이 보수진영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건 국회에서의 거칠고 직설적인 답변 덕분이다. 야당의 공격에 밀리지 않고 논리적으로 되받아치는 모습에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고 한다. 반면 어떤 질문도 피장파장으로 만드는 말꼬리잡기식 답변에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그 못지 않다. 지난 1월 이재명 대표가 검찰 소환을 앞두고 '대선 패배의 대가'라고 말하자 한 장관이 "대선에서 이겼으면 권력을 동원해 (자신의) 사건을 못하게 뭉갰을 것이라는 말로 들린다"고 되받아친 게 한 예다.

이런 논법은 듣는 사람을 현혹시켜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전형적인 '전건(前件)부정법'이다. 논리학에 무지한 저질논쟁에서나, 그것이 오류임을 아는 권력자가 무지한 비권력자를 겁박할때 사용된다. (이정철 서울대 교수) 일종의 '악마의 대화법'으로 한 장관 답변은 매사 이런 식이다. 진영을 '갈라치기'해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의도밖에 없다.  

'정치인 한동훈'의 가장 큰 약점은 나름의 서사(敍事)가 없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그 자리에 오른 건, 옳고 그르고를 떠나 살아있는 권력에 맞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동훈에겐 윤석열의 자장(磁場)안에 있다는 것 말고는 내세울 게 없다. 보수진영 차기 대권주자로 나타나는 여론조사도 언제 바뀔지 알 수 없는 신기루 같은 것이다. 지금은 국민의힘에서 총선 중책을 맡아달라고 손짓하지만 그럴만한 정치적 역량인지 줄곧 시험대에 오를 것이다.

한 장관이 진정 유력 정치인으로 체급을 올리고 싶다면 윤 대통령 모델을 따르는 방법밖에는 없다. 윤 대통령이 했던 것처럼 자신을 임명해준 대통령에게 할 말은 하는 것이다. 김 여사 관련 수사를 파헤치고, 쓴소리를 하고, 스스로 책임질 게 있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여당의 존재감 없는 율사(律士) 출신 국회의원 숫자를 하나 늘리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스스로 쟁취하지 않고 의존하는 권력은 손에서 쉽게 빠져나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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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전 주필. 1987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사회부장, 편집국장, 수석논설위원, 주필을 역임했습니다. 만 35년 간의 기자 생활을 마치고 2022년 12월 퇴사했습니다. 오랜 기자 경험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우리 사회 현안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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