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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공약 파기' 간호법 뿐일까

이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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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6일 국무회의에서 간호법 제정에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공약 파기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윤 대통령이 대선 기간 중 약속했던 공약이 사라진 것은 손에 꼽기도 어렵습니다. 공약을 지키지 못했으면 겸손한 자세로 국민에게 반성하고 이해를 구해야 하는데 아무런 설명도 없습니다. 국민을 상대로 한 약속에 대해서는 윤 대통령의 보다 솔직하고 진지한 태도가 요구된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공약 파기 논란이 거센 간호법 제정이 단적인 사례입니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간호법 제정을 약속했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공식적으로 후보가 약속은 하지 않았다"며 공약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윤 대통령 공약집이나 국정과제에 포함돼 있지 않으니 공약이라고 할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하지만 '후보자가 어떤 일에 대해 국민에게 실행할 것을 약속한다'는 일반적인 의미로 본다면 공약 파기 논란은 피하기 어렵습니다.  

실제 윤 대통령은 지난해 1월 대선 후보로 간호협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간호법 제정 등 정책제안을 전달받으며 "간호협회의 숙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윤 대통령 대선 캠프 정책본부장이었던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당시 "간호법은 국민의힘이 앞장서 조속히 입법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윤 후보가 직접 약속을 했다"고 했고,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지난해 말 "간호법이 만들어지도록 적극 응원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윤 대통령과 여당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간호법 제정을 약속했으면서 공약집에 없다고 공약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말장난이라는 주장이 나올만합니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주로 '한 줄 공약'으로 젊은층의 호응을 이끌어냈습니다. 페이스북에 단문 메시지로 올린 이들 공약은 정부와의 차별화를 시도하며 지지층을 결집하는 주요 수단으로 작용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취임 후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여성가족부 폐지는 사실상 없던 일이 됐고, 사드 추가 배치도 종적을 감췄습니다. 파격적 규모로 대선 내내 뜨거운 감자였던 코로나19 피해 '50조 지원' 공약은 '잉크도 마르기 전에' 파기됐습니다.

"한두 명이 아니라 여러 명 나올 것"이라고 강조했던 30대 장관 기용은 1기 내각에서 한 명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부모찬스 없는공정한 대입제도'를 내세워 수능으로 선발하는 정시 모집인원을 확대하겠다던 약속은 교육개혁에도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취임 즉시 군인 병사 월급 200만원' 공약 역시 국정과제에선 단계적 인상으로 축소됐고, '주식양도세 폐지' 공약도 기약이 없습니다. 선거 때는 표에 도움이 된다고 섣불리 약속을 꺼냈다 취임 후 실현 가능성이 없자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 셈입니다.

팩트체크 전문미디어 뉴스톱은 윤 대통령 취임 1주년을 맞아 공약 이행률을 분석한 결과, 파기율이 11%에 달했다고 밝혔습니다. 반면 문재인 정부에서는 파기율이 1.8%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그나마 뉴스톱의 분석 대상에선 윤 대통령의 페이스북 한 줄 공약은 제외된 것이라고 합니다. 윤 대통령의 공약이 얼마나 즉흥적이고 정략적으로 만들어졌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윤 대통령의 공약에 대한 이중잣대는 영부인  일정을 담당하는 제2부속실 부활 논란에서 뚜렷해집니다. 윤 대통령은 대선 당시 제2부속실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는데, 김건희 여사의 광폭행보 논란이 커지면서 보수 진영에서조차 제2부속실 설치 필요성을 제기했습니다. 당시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주요 공약을 파기해야 한다는 점에서 부담을 느끼는 것 같다"는 취지로 난색을 표명했습니다. 윤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약속한 특별감찰관 임명도 공약 이행과 파기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윤 대통령의 공약 파기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사과나 해명이 없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공약을 지키지 못했으면 합당한 사유를 설명하고 사과하는 게 당연한데, 공약이 아니라고 강변하거나 논란이 없으면 그냥 넘어가는 태도가 더 심각하다는 겁니다. 간호법 제정이 공약이 아니라는 주장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행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공적인 약속을 저버리는 지도자는 국민의 신뢰를 받기 어렵습니다.

[세상읽기] 대한민국 국격이 드러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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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거야의 벽인가, 대통령의 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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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전 주필. 1987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사회부장, 편집국장, 수석논설위원, 주필을 역임했습니다. 만 35년 간의 기자 생활을 마치고 2022년 12월 퇴사했습니다. 오랜 기자 경험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우리 사회 현안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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