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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인사 참사'에 침묵하는 이유

이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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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아들 학교폭력 문제로 낙마한 정순신 국가수사본부장 '인사 참사'에 닷새째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자신이 내세운 '공정' 가치 훼손과 검증 실패 책임론이 불거졌지만 이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도 없습니다. 다만 이주호 교육부장관에게 학교폭력 대책 마련을 지시한 게 이번 사태와 관련한 유일한 조치입니다. 정치권에선 검찰 출신 측근들로 구성된 인사라인을 지켜주려는 의도 외에 정 변호사 인선을 윤 대통령이 주도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이런 관측은 윤희근 경찰청장이 지난 27일 국회 정보위에 출석해 "대통령실과 사전 의견 교환이 있었다"고 밝힌 데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윤 청장이 의견 교환이라고 에둘러 말했을 뿐 사실상 대통령실에서 정 변호사를 낙점했음을 시인한 셈입니다. 윤 청장은 또 "경찰청은 인사검증 권한이 없고 '아무 문제 없음'으로 통보받았을뿐"이라고도 했습니다. 법무부 인사검증단이 검증을 맡았다며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책임을 돌린 겁니다.  

한 장관도 자신의 입장을 강변하는데 급급했습니다. 그는 28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기본적으로 책임감을 느낀다"면서도 구체적인 책임을 묻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가족의 송사 문제는 본인이 직접 말하지 않는 한 확인하기 어렵다"며 정 변호사를 탓했습니다. 정 변호사가 학교폭력 소송 사실을 말하지 않아 몰랐다는 건데 그러려면 검증 절차가 왜 필요한지 의문이 제기됩니다. 결과적으로 대통령실과 법무부, 경찰청 등 관련 당사자 누구도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법조계에선 윤 대통령을 비롯해 검찰 출신 인사라인에서 정 변호사 아들 문제를 몰랐을 리 없다고 봅니다. 2018년 학교폭력 사건이 KBS에 보도됐을 때 정 변호사는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이었고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은 윤 대통령이었습니다. 한 장관은 3차장이었고, 이원모 대통령실 인사비서관은 평검사로 함께 근무했습니다. 검찰 내부 보고를 통해 정 변호사 아들 문제를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을 거라는 얘기가 설득력이 있습니다.  

용산 주변에선 지난해 여름부터 정 변호사 국수본부장 내정 소문이 돌았습니다. 지난 1월 19일자 인사이트(검찰 출신이 수사경찰도 총괄?)에서 지적했듯이 정 본부장 임명은 윤 대통령 취임 후 정교하게 짜여진 경찰 장악 시나리오의 일환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시행된 검경 수사권 조정을 되돌리려는 의도로 분석됩니다. 초대 행안부 장관에 핵심 측근인 이상민 장관을 앉혀 '경찰국'을 신설하고 수사경찰도 정 변호사를 낙점해 경찰을 손안에 넣으려 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정이 이러니 정 변호사 인사검증은 요식행위에 그쳤을 게 불을 보듯 명확합니다. 본인 문제도 아니고 아들의 일이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개연성이 높습니다. 윤 대통령이 진작부터 결정한 인사인데 이를 거스를 사람은 누구도 없었을 겁니다. 그러니 이제와서 말썽이 생겼다고 윤 대통령이 새심 인사라인을 질타하고 책임을 묻기가 어려웠을 거로 보입니다. 심각한 인사 난맥상이 드러났는데도 엉뚱하게 변죽만 올릴 수밖에 없는 겁니다.

윤 대통령은 이틀 전 연세대 학위수여식에 참석해 "기득권 카르텔을 깨고 더 자유롭고 공정한 시스템을 만들고 함께 실천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정 변호사 낙마 사태는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기득권과 공정을 거론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쏟아집니다. 무엇보다 국정 운영의 핵심인 인사 과정에서 실패가 드러났는데 책임 규명이 없다는 점에 상당수 국민이 의아해합니다. 윤 대통령이 이제라도 이번 인사 참사에 대한 사과와 책임자 문책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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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한국일보 전 주필. 1987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사회부장, 편집국장, 수석논설위원, 주필을 역임했습니다. 만 35년 간의 기자 생활을 마치고 2022년 12월 퇴사했습니다. 오랜 기자 경험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우리 사회 현안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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