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 무시하는 '여론조사 공표 금지'
28일부터 대선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되는 가운데 이 제도가 국민의 알권리를 제한하고 오히려 혼란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제기됩니다. 투표일 6일 전부터 여론조사를 공개할 수 없는 공표금지 기간을 설정한 공직선거법 조항이 민주주의 관점과 배치될 뿐 아니라 시대착오적이라는 주장입니다. 여론조사 공표를 막는 주체인 선관위도 여러 차례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지만, 국회에선 관련 법안이 제대로 논의되지 않고 있습니다. 시민사회에선 새 정권이 들어서면 정치개혁 차원에서 반드시 문제 조항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여론조사 공표금지 기간 설정은 선거일에 임박해 발표되는 여론조사 결과가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부정확한 여론조사 공표로 선거 공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점을 이유로 듭니다. 선거 직전까지 여론조사가 공표되면 1위 후보 혹은 열세 후보 투표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얘깁니다. 앞서가는 후보 지지자들에게는 대세론 편승 효과가, 추격하는 후보 지지자들에게는 응원 심리가 발동해 선거가 왜곡된다는 주장입니다. 게다가 선거가 임박해 불공정하고 부정확한 여론조사가 나오면 유권자에게 왜곡된 정보를 줘 판단을 흐리게 한다고도 말합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이 터무니 없다는 건 사전투표에서 가장 두드러집니다. 이번 대선에선 28일부터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되고, 하루 뒤인 29일부터 사전투표가 시작됩니다. 사전투표 첫날 참여자들은 투표 하루 전까지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 결정하는 반면, 본투표 참여자들은 6일 동안 이른바 '깜깜이' 상태가 되는 셈입니다.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사전투표율과 본투표율은 각각 절반 정도로 투표 참여자들 간에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선거의 불공정을 막는다고 도입한 여론조사 공표금지가 오히려 공정성을 훼손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여론조사 공표금지 효과는 전혀 입증되지 않은 주장입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른바 공표금지의 이론적 근거인 '밴드웨건 효과'와 '언더도그 효과'는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유권자들이 이로 인해 영향을 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 스스로도 가늠할 수 없어 아예 측정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공표금지는 유권자들의 알권리를 제약한다는 측면에서도 득보다 실이 큽니다. 유권자는 후보자의 당선 가능성을 중요한 판단 근거로 삼는데, 유권자가 숙고된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핵심 장치인 여론조사를 제한하는 건 비합리적입니다.
더 큰 문제는 공표금지 기간에도 공표를 못할 뿐이지 여론조사가 실시돼 암암리에 퍼져나간다는 점입니다. 각 선거 캠프는 공표되지 않은 여론조사를 입수해 선거 전략에 활용하는데 이 자료는 언론과 당원, 누리꾼들에게도 공유되는 게 일반적입니다. 해당 규정이 사실상 무용지물이 되는 셈입니다. 오히려 특정 후보나 정치세력 쪽이 확인되지 않은 유리한 결과를 SNS로 유포하는 행위가 횡행해 혼란을 키웁니다. 선관위가 단속을 한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온라인 공간과 메신저 대화방을 통해 퍼져나가는 것을 차단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여론조사 공표금지는 세계적 흐름과도 맞지 않습니다. 한국과 달리 다른 국가들은 공표 금지기간이 없거나 상대적으로 짧습니다. 선관위에 따르면 공표기간 규제가 없는 국가는 미국, 영국, 일본, 스웨덴 등 대부분 선진국으로 나타났습니다. 프랑스는 선거일 포함 2일을 금지기간으로 하고 있고, 당초 여론조사 공표금지 기간이 있었지만 알 권리를 침해하는 과잉 규제라는 지적에 기간을 줄이거나 없앤 국가들도 있습니다.
시민사회와 전문가들은 여론조사 공표 금지 규정을 서둘러 폐지하거나 하루 이틀 정도로 단축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합니다. 선관위만 해도 2023년 공표 금지 기간을 현행 6일에서 2일로 단축하는 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습니다. 의원들이 '현역 프리미엄'을 유지하기 위해 개정 논의에 소극적이란 지적이 나옵니다. 선거는 유권자가 나라의 주인임을 확인하는 기회입니다.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유권자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게 정부와 국회의 역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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