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판사, '다툼의 여지' 남발하는 이유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들이 최근 내란 사건 피의자들에 대해 잇따라 영장을 기각하면서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이유를 제시하는 배경에 관심이 쏠립니다. 이 용어는 통상 사실관계나 법률 해석이 확정되지 않아 피고인이 방어할 여지가 있다고 판단될 때 사용하는데, 사실이 명백히 드러난 경우에도 이런 사유를 들어 논란을 낳습니다. 법조계에선 영장판사들이 보편적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기준과 법리를 제시하지 못하고 피의자가 부인하면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애매한 표현으로 피해가려는 꼼수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형사소송법 70조는 구속 사유로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1항)외에 범죄의 중대성 등(2항)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간 법원은 거물급 기업인·정치인 등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경우 범죄의 중대성을 구속의 중요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범죄의 중대성'은 2007년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포함됐는데, 당시 대기업 회장 등이 도주와 증거 인멸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법망을 피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됐습니다. 범죄의 죄질과 피해의 정도, 국민의 법 감정과 여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라는 취지입니다.
하지만 언제부턴지 사회지도층 인사들에 대한 영장 심사에서 사안의 중대성은 사라지고 이 자리를 '다툼의 여지'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내란 사건에서 영장판사들이 법적 근거도 없는 표현을 유독 많이 동원하는 양상입니다.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는 지난 3일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혐의 및 법리에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이유를 댔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비상계엄 당일 추 의원의 행적이 계엄해제 표결을 방해하려는 의도가 명확해 다툴 여지가 없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입니다.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의 영장을 연이어 기각한 박정호·남세진 영장판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박 판사는 "위법성을 인식하게 된 경위에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했고, 남 판사도 "범죄 혐의에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법률 전문가이자 법치 행정 책임자인 법무부 장관이 비상계엄이 불법임을 몰랐다는 취지로, 옹색하다는 비판이 따릅니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 구속영장을 기각한 정재욱 영장판사는 더 황당합니다. "기본적인 사실관계는 어느정도 소명되나, 법리적인 면에서 다툴 여지가 있다"고 했는데, 이율배반적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법조계에서는 '다툼의 여지'를 주요 기각 사유를 제시하는 건 영장판사들의 책임 회피로 해석하는 시각이 강합니다. 구속영장 발부에 전권을 가진 입장에서 소신껏 판단을 해야 하는데, 피의자가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면 '다툼이 있다'며 빠져나간다는 주장입니다. 일각에선 영장판사들이 필사적일 만큼 '다툴 여지가 있다'는 이유로 구속을 불허하는 것은 결국 조희대 대법원장을 엄호하기 위한 목적이 깔려 있는 게 아니냐는 추측도 나옵니다. 조 대법원장이 비상계엄 당일 주재한 법원행정처 회의에서 계엄 대책을 논의한 것이 특검 수사 대상이 될 것을 우려해서라는 분석입니다.
영장판사들이 '다툼의 여지'를 자주 거론하다보니 급기야 김건희도 이를 따라하는 형국이 됐습니다. 김건희는 지난 3일 열린 결심공판 최후진술에서 "특검이 주장하는 내용 중 일부는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혐의를 받는 피의자가 스스로 '다툴 여지'를 거론한 건 매우 이례적인 상황입니다. 영장판사들의 최근 영장 기각 사례를 반영해 형량을 줄여보려는 의도로 풀이됩니다. '다툼의 여지'라는 문구가 국정농단의 핵심 피의자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이용할 만큼 정치적으로 악용 소지가 크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들은 결정적인 고비마다 영장을 기각해 수사 동력을 떨어뜨리고 수사의 맥을 끊어버린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내란이라는 사안의 중대성과 엄중함을 따지지 않고 구속 기준을 지나치게 높이고 있다는 반응이 많습니다. 내란 특검팀도 "사실관계가 명백한데도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이유로 구속하지 않는다면 누구를 구속수사할 수 있겠나"라고 반발하고 있습니다. 영장을 기각할 때는 납득할만한 기준과 법리를 제시해야 내란 수사를 방해한다는 의혹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발표한 국가안보전략이 유연한 현실주의에 초점을 맞춘 게 눈에 띕니다. 길윤형 한겨레신문 논설위원은 33쪽에 이르는 긴 문서 안에 왜 북한 언급이 없는지, 중국 비판을 위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던 민주주의, 가치, 국제규범 등이 왜 등장하지 않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이런 전략 변화는 어쩌면 대한민국도 간단히 버려질 수 있다는 의미라고 진단합니다. 👉 칼럼 보기
[한겨레 프리즘] 영혼없는 공무원, 사라질까
공무원의 '복종 의무'를 없애는 내용의 공무원법 개정안이 입법예고됐습니다. 정혁준 한겨레신문 전국팀장은 법에서 공무원의 복종 의무가 사라지더라도 권위적이고 형식적인 관료 문화가 지속되는 한 하위직 공무원이 상관 지휘에 의견을 제시하거나 거부하긴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지적에 공감을 표합니다. 오래된 관행인 공무원의 상명하복 문화도 이번 법개정으로 함께 진행돼야 한다는 얘깁니다. 👉 칼럼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