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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으로 '국민통합'될까

이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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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27일 단행한 특별사면은 예상대로였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MB)과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동시 사면됐는데 김 전 지사에겐 사면만 하고 복권은 하지 않았습니다. 앞서 김 전 지사는 "MB와의 끼어맞추기식 사면은 거부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여권에선 즉각 불쾌하다는 반응이 나왔고 김 전 지사가 사면에서 제외할 거라는 관측이 나왔습니다. 그럼에도 김 전 지사를  포함시킨 것은 형식적이나마 여야 형평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MB의 경우 대통령직을 사익 추구의 수단으로 이용한 파렴치한 범죄를 저질렀지만 사면으로 15년의 감형을 받게 됩니다. 징역 17년을 선고받았지만 치료 등으로 거의 수형 생활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국민에게 사과한 적도 없고 벌금도 82억 원을 미납한 상태입니다. 반면에 김 전 지사는 형기가 5개월 남았습니다. 15년과 5개월을 동일한 잣대에 놓고 '국민통합'과 형평성을 말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윤 대통령이 김 전 지사를 사면하면서 복권을 하지 않은 것은 정치적 의도가 크다는 분석입니다. 대통령실에선 대선 불법 여론 조작이라는 범죄의 중대성과 여전히 반성하지 않는 점을 복권 불허 사유로 제시하지만 MB와 비교할 때 타당성이 떨어집니다. 그보다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사법리스크'가 현실화한 상황에서 포스트 이재명의 구심점으로 부상할 수 있다는 정무적 고려가 깔린 것으로 보입니다. 내후년 총선에 출마해 PK지역에서 바람을 일으킬 것을 우려했다는 관측도 제기됩니다.

이번 사면은 이전 정부에서와는 달리 유독 여권에 기울어졌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여권 성향으로 분류되는 인사들은 수십 명인 반면 야권 인사들은 김 전 지사 외에 전병헌 전 수석, 신계륜 전 의원 등 손으로 꼽을 정도입니다. 특히 박근혜·이명박 정부 비리 정치인, 공직자가 대거 포함된 점은 주목할 대목입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우병우∙ 조윤선 수석, 박근혜 '문고리3인방' 등이 포함됐고,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전 국정원장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심지어 '국정원 댓글공작' 사건을 주도한 혐의 등으로 징역 13년을 확정받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감형으로 남은 형기가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윤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 당시 '적폐 청산' 수사를 지휘해 기소했던 이들이 대부분입니다. '적폐 수사'의 정당성을 스스로 훼손했다는 지적이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윤 대통령은 27일 사면 심의를 위한 국무회의 발언에서 "각계 의견을 수렴해 신중하게 사면 대상을 결정했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15일 공개된 여론조사에서 MB 사면에 찬성한 응답자는 39%, 반대한 응답자는 53%였고, 김 전 지사의 사면에 찬성한 비율은 34%, 반대한 비율은 51%였습니다. 반대 여론이 찬성보다 압도적으로 높은데도 사면을 결정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이 충분한 이유와 필요성을 설명하지 않은 것은 국민 여론을 외면한 처사입니다.

정치권과 시민단체 일각에선 국민통합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정치적 노림수로 악용되는 사면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지적이 오래 전부터 나왔습니다. 헌법이 대통령 사면권을 둔 것은 법원 판결의 오류 등 사법권이 부당하게 행사됐을 경우 마지막 구제장치가 되기를 기대한 때문입니다. 하지만 법치주의나 사법부의 독립성을 해칠 위험이 있는 만큼 최대한 자제하는 게 마땅합니다.과거 국회에서 사면권 행사에 앞서 국회와 대법원의 의견을 듣도록 하자는 사면법 개정안이  발의된 바 있습니다. 정치인·기업인 비리나 파렴치범에 대해선 특별사면을 제한하자는 의견도 많습니다. 대통령실과 국회가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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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한국일보 전 주필. 1987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사회부장, 편집국장, 수석논설위원, 주필을 역임했습니다. 만 35년 간의 기자 생활을 마치고 2022년 12월 퇴사했습니다. 오랜 기자 경험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우리 사회 현안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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