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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 도청, 미국을 바로봐야 할 이유

이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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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분 걸림 -

미국 정보기관이 한국 국가안보실을 감청해 온 정황이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는 가운데 과거에도 비슷한 수법이 빈번했을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지난 2013년 미 중앙정보국(CIA) 전 요원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로 미 국가안보국(NSA)의 주미 한국대사관 도청 의혹이 불거진 바 있지만 구체적인 내용이 알려지진 않았습니다. 이보다 주목되는 사건은 지난 2010년 위키리크스의 미국 외교전문 무더기 폭로입니다. 당시 미 외교전문 25만 여건이 가디언과 뉴욕타임스 등을 통해 공개됐는데, 이 중 한국 관련 전문 1,980건의 내용이 공개된 바 있습니다. 주한미대사관이 작성해 본국에 보고한 것인데 3급 이상의 비밀문서가 절반을 넘었습니다.

당시 공개된 전문은 2006년부터 2010년 사이에 생산된 것으로 이명박(MB) 정부 관련 사항이 대부분이고, 노무현 정부 시기가 일부 포함돼 있습니다. 주한미대사관의 정보 수집 출처는 주로 미대사관 관계자들이 한국 정부 관료들을 만나 전해들은 것으로 돼있는데, 출처가 석연치 않은 것들도 적지 않습니다. 때문에 당시에도 한국 정부를 대상으로 한 미국의 도∙ 감청이 진행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MB 정부 때인 2010년 11월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국 외교전문에 한국 정부가 아프가니스탄에 5억 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다는 내용입니다. 이 전문이 공개되자 우리 정부는 "아프칸 재정 지원에 아는 바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1년 8개월이 지난 2011년 4월 정부는 당시 폭로된 전문 내용과 똑같은 지원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이미 미국이 우리 정부의 지원 계획을 알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대통령의 연설문이나 대통령이 주재한 비공개 간담회가 사전에 미국 대사관에 유출됐다는 의혹도 여러 차례 제기됐습니다. 2007년 1월 24일 미 대사관은 '노무현 대통령의 신년연설, 국내 문제에 초점'이라는 3급비밀 전문을 보냈습니다. 전날 있었던 노 대통령 연설을 분석한 내용인데 이 가운데 '당초 연설문 원고에 들어있던 중요한 부분, 전시작전권 환수와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언급이 실제 연설에서 빠졌다'고 돼있습니다. 물론 청와대나 외교부 직원을 통한 유출 가능성도 없진 않지만 도∙ 감청을 의심할만한 대목입니다. 뿐만아니라 노 대통령의 비공개 간담회 녹취록이 미 대사관 전문에 그대로 담긴 사례도 드러났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번 도청 의혹을 대하는 대통령실의 안이한 태도입니다. 대통령실은 굳건한 한미동맹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며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동맹국을 상대로 함 도청은 명백한 주권침해인데, 2주 앞으로 다가온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방문에 악재가 되지 않도록 파문 확산에만 급급한 모습입니다. 외교 전문가들은 이런 저자세가 오히려 국익을 해치고 건전한 한미동맹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에 미국에 강한 항의와 재발방지를 요구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미국의 한미동맹에 담긴 속내를 보여주는 두 가지 문건이 있습니다. 첫째는 2008년 1월 8일 주한미대사관이 본국에 보낸 '보다 발전적이고 전략적인 한미동맹을 위한 2020비전'이라는 보고서입니다. 이 가운데 한미동맹이 도출해낼 미국의 7가지 이익을 기술한 항목을 보면 북한 관련은 한 개뿐이고, 미국의 경제적 이해관계와 관련된 것이 네 개로 가장 많습니다. 나머지 세 개는 중국을 견제하거나 염두에 둔 내용입니다. 또한 보고서에는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고 진정한 슈퍼파워와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에 대해 자랑할 수 있고, 자랑하고 있다'는 대목도 있습니다.

또다른 문건은 한국이 IMF 국가부도 사태에 빠져있던 1998년 2월 4일 당시 주한 미 대사 스티븐 보스워스가 '올해의 한국'이라는 2급비밀 전문에 기술한 내용입니다. 전문에는 '한국이 금융위기를 잘 타개해 나가도록 돕는 동시에 우리(미국)에 대한 의무를 완전히 준수하도록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압박하며'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당시 미국은 IMF 구제금융 조건과 정리해고제 도입 등 미국측 요구가 수용된 후에야 지원에 나섰습니다. 모든 나라의 외교는 자국의 이익 확보가 목표입니다. 미국의 잘못된 행동을 우리 국익을 위한 지렛대로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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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전 주필. 1987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사회부장, 편집국장, 수석논설위원, 주필을 역임했습니다. 만 35년 간의 기자 생활을 마치고 2022년 12월 퇴사했습니다. 오랜 기자 경험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우리 사회 현안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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