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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윤석열이 관세협상 했더라면

이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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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외신 인터뷰에서 "미국 요구에 따랐다면 탄핵당했을 것"이라고 발언한 것은 다목적 포석이다. 미국을 향한 협상 전략적 측면이 크지만 국내 여론을 의식한 발언일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총력을 기울여 관세협상에 임하고 있다는 것과 그 결과가 다소 기대에 못 미치더라도 이해해달라는 뜻이 내포된 것으로 보인다.

새 정부 출범 석 달만에 '이재명 탄핵'을 입에 올린 국민의힘에게 대미 관세협상은 좋은 먹잇감이다. 아무리 잘해봐야 우리에게 손해일 수밖에 없는 협상 구조부터가 그렇다. 덜 내주든, 더 내주든 '닥공'하기에 이만한 게 없다고 국민의힘은 생각할 것이다. 협상 타결이 늦어지면 늦어진 대로 철석같은 한미동맹이 흔들린다며 손가락질할 게 뻔하다.  

국민의힘은 일찌감치 속내를 드러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얼마 전 언론인터뷰에서 관세협상이 난항을 겪는 건 이 대통령 때문이라는 취지로 말했다. 이 대통령의 '좌파 일색' 인사, 야당과 교회를 탄압한 문제가 작용했다고 비판했다. 좌파 인물 중용이라는 팩트 자체도 틀렸지만 하나라도 더 이익을 챙기려는 관세협상과 인사가 무슨 상관이 있나. 야당과 교회 탄압 주장은 극우의 인식과 한치도 다르지 않다. 관세협상을 이재명 탄핵의 불쏘시개로 활용하겠다는 뜻을 노골화한 것이다.

이 대통령으로선 그야말로 단두대에 선 형국이다. 가능한 시나리오를 떠올려봐도 어느 한 가지 만만치 않다. 미국이 요구한 3600억 달러 현찰 납부를 그대로 들어주는 건 최악이다. 미국이 수용할 리도 없겠지만 한미 통화스와프를 체결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원화를 내주고 달러로 납부하는 일종의 '마이너스 통장'인데 막대한 국채 발행과 환율 변동을 막을 길이 없다. 변덕 심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무기로 삼아 흔들면 또 어쩔 텐가.

난관 부닥친 관세협상, 국힘에 먹잇감
배수진 치며 총력 기울이는 이 대통령
윤석열이었다면 지금까지 버텼을까

그렇다고 미국 싱크탱크와 국내 일각에서 제시하는 '노 딜'이 정답은 아니다. 3600억 달러를 내주느니 그 돈으로 관세 피해 기업을 지원하라는 건데, 트럼프가 이를 두고 볼 위인이 아니라는 건 모두가 안다. 주한미군 감축과 방위비 인상 등 안보라는 약한 고리를 최대한 이용하려 할 공산이 크다. 시간이 마냥 우리 편인 것도 아니다. 일부에선 내년 미국 중간선거까지 버티면 트럼프 패배를 기대할 수 있다고 하지만, 판세가 낙관적이지 않고 그때까지 트럼프가 가만히 있을 리 만무하다.

가장 이상적 시나리오는 트럼프가 요구 수준을 낮추는 것인데, 우리 정부도 여기에 초점을 둔 듯하다. 유엔총회에 참석한 이 대통령이 미국 상·하원 의원들을 만나 관세협상의 애로를 털어놓고 재무장관까지 만나는 이유가 뭐겠는가. 미국 조야의 폭넓은 협조를 얻고, 가능한 한 협상의 허들을 낮추려는 노력일 것이다. 외신에 '탄핵'이니 '외환위기'니 하는 극단적 용어를 구사하는 것도 미국의 과도한 요구를 알리려는 의도다. 안팎으로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배수진을 쳤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관세협상을 총괄하는 김용범 정책실장은 25일 뉴욕에서 협상 방향에 대해 4가지 원칙을 밝혔다. '상업적 합리성에 맞고, 우리가 감내 가능하고 국익에 부합하며 상호 호혜적인 결과를 도출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3600억 달러에 서명하도록 채근했지만 이에 응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익이 안 되는 합의서에 왜 서명하냐"고 보수진영 공세에 반박했다.

만약 윤석열이 지금까지 대통령으로 남아 미국과 관세협상을 했다면 어떤 일이 펼쳐졌을까 떠올리면 아찔하다. 뼛속까지 친미 행적을 보여온 윤석열이 미국의 3600억 달러 요구에 여태껏 서명을 하지 않고 버텼을까 하는 것이다. 협정문에 사인한 뒤 온갖 포장을 씌워 성과로 미화하거나, 많이 안내는 척하며 이면합의를 해 국민을 속이거나, 아니면 한미동맹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뻔뻔하게 나왔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재명이 대통령이어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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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전 주필. 1987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사회부장, 편집국장, 수석논설위원, 주필을 역임했습니다. 만 35년 간의 기자 생활을 마치고 2022년 12월 퇴사했습니다. 오랜 기자 경험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우리 사회 현안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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