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윤석열은 '복수'를 하고 싶었다
윤석열이 했다는 "이번 기회에 싹 다 잡아들여"는 말은 12·3 내란을 관통하는 핵심어다. 느닷없는 비상계엄 선포의 배경과 후속 진행 상황을 이 한마디로 짐작할 수 있다. 그가 잡아들이려 했던 사람이 누군지를 보면 초헌법적 비상대권을 사용한 이유가 절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메모한 체포 대상 명단에는 이재명, 한동훈 등 평소 눈엣가시같았던 정치인 외에도 의외의 이름이 들어있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과 권순일 전 대법관, 김동현 부장판사 등이다. 이들이 포함된 이유가 아리송하지만 굳이 추측하자면 김명수는 사법부 좌편향 주도, 권순일은 극우가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는 2022년 총선 당시 중앙선관위원장 재직, 김동현은 이재명 위증교사 1심 무죄 선고 등이다. 모두 판사 출신이다.
판사에 대한 윤석열의 부정적 인식은 익히 알려져 있다. 검사의 판사 견제심리는 대체로 직업적인 것이지만 윤석열은 특히 자신이 기소한 사건에 무죄를 내리는 판사에 대한 불만이 컸다고 한다. 이런 악감정이 검찰총장 때 지휘한 사법농단 수사에서 판사 수백 명을 소환해 모멸감을 안겼을 게다. 조국 사건 등 주요 사건을 맡은 판사들 개인 정보와 성향 등 뒷조사를 시킨 것도 검찰총장 윤석열이었다.
내란 단죄 과정에서 윤석열이 사법부 위에 군림하려 한 것에는 이런 배경이 깔려있다. 윤석열 변호인단은 구속 취소 청구를 하면서 "법원이 잘못을 인정하고 시정할 마지막 기회라는 점을 강조할 것"이라는 황당한 말을 했다. 심지어 헌재재판관들에게 "이념, 소신 이런거 다 버리고 법관으로서의 양심에 따라 판단해 달라"고 훈계까지 했다. 윤석열에게 판사와 사법부는 검사 밑에 굴복시켜야 할 대상으로 인식된다.
비상계엄이 다분히 윤석열의 '사적 감정'에서 출발했다는 건 희대의 언론사 봉쇄와 단전·단수 지시에서도 확인된다. 윤석열에게 언론은 권력의 홍보수단이지 감시기구가 아니다. 애완견처럼 여기던 도구가 자신과 정권을 비판하는 것을 윤석열은 참을 수 없었다. 윤석열정권 내내 언론사·기자에 대한 압수수색과 기소가 이어졌고, 그 것으로도 분이 안풀렸는지 계엄으로 비판 언론을 아예 말살하려 한 것이다.
앙심 품었던 비판 세력 제거가 목적
히틀러의 정적 처단과 뭐가 다른가
윤석열의 보복 대상은 수사가 진행될수록 끝없이 늘어나는 양상이다. 김건희에게 명품백을 건넨 최재영 목사도 체포 명단에 올랐고, 채 상병 사망 사건을 수사한 박정훈 전 수사단장 재판과 구속영장심사를 맡았던 군 판사들에 대해서도 성향 파악 지시가 있었다고 한다. 윤석열 탄핵 천주교 시국선언의 주역인 사제단이 '수거 대상'으로 지목됐다는 보도도 나왔다.
윤석열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제거하려 한 것인가. 자신의 말대로 비상계엄을 통해 평소 앙심을 품었던 비판 세력을 모조리 잡아넣을 생각이었던 것일까. 개인이든 집단이든,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대로 잡아서 가두고 처단하려 했는가. 비상계엄 포고령에 대담하게 '전공의 처단'이라고 버젓이 넣은 걸 보면 그 수가 어느정도에 이를지 가늠조차 안 된다.
탄핵심판에 출석한 윤석열은 내란을 '호수 위에 달 그림자'라고 강변했다. 수 많은 사람에게 체포 지시를 내리고, 구금시설을 준비하고, 고문도구까지 갖춰놓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나. 시민들이 국회로 달려가고 의원들이 국회 담을 넘지 못했더라면 엄청난 유혈사태와 수백, 수천명의 강제구금이 이뤄졌을 것이다.
윤석열은 구치소에 면회온 여당 지도부에 민주당을 '나치 독재'에 빗댔다는데, 비판 세력을 처단하려한 그야말로 나치나 다름없다. 권력의 최정점인 '총통'에 오르기 위해 친위쿠데타를 일으켜 정적을 대거 숙청한 히틀러와 대통령으로 절대권력을 누리기 위해 비판 세력을 제거하려한 윤석열이 뭐가 다른가. 히틀러 정권은 쿠데타 후 내부 권력투쟁과 불신으로 결국 패망했다. 윤석열의 운명도 패가망신의 길로 향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