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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윤석열 대통령의 착각

이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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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분 걸림 -

국민의힘 전당대회 난장(亂場)을 보면서 드는 의문은 윤석열 대통령이 왜 이렇게까지 하느냐다. 정치 초보 대통령으로서 당대표를 내 사람으로 앉혀 총선 공천권을 쥐락펴락하려는 의도라면 이해할 측면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 정도에 그칠 것이라고 생각하기엔 미심쩍은 구석이 많다. 대통령 탈당설에 이어 보수진영의 트라우마인 '탄핵'을 입에 올리더니 이젠 명예 당대표 추대론까지 나왔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라는 광고 카피 그대로다.

윤 대통령의 구상은 훨씬 멀리 닿아있는 듯하다. 임기 후반은 물론 퇴임 후까지를 내다보는 것 같다는 얘기가 여권에서 심심찮게 들린다. 국민의힘을 사당화(私黨化)해 대통령에서 물러났을때 안전판을 확보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는 것이다. 검찰 출신 등 수십 명이 여의도 투척 대기 중이라는 소문도 괜한 게 아니다. 호위무사를 잔뜩 심어놔야 할 필요성이 그만큼 큰 것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적폐 청산'의 선봉장이었던 윤 대통령은 그 가혹함과 처절함을 누구보다 생생히 느낀 인물이다. 칼을 휘둘러 본 사람이 칼의 무서움을 가장 잘 알기 마련이다. 만일 정권이 바뀌면 문재인 ∙ 이재명을 향했던 칼 끝이 거꾸로 자신을 향하리라고 믿는 건 자연스럽다. 후과(後果)에 대비하려면 지금부터 차근차근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이런 마당에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의 총설계자를 자처하다시피 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대통령실 주변에선 선거의 기획과 대본, 연출, 각색 등 거의 전 과정을 윤 대통령이 맡고 있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대통령실 참모들은 윤 대통령이 불러주는대로 입장문을 내고, 이를 당에 전달하는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획은 실패로 귀결되는 모양새다. 작전이 성공하려면 이면의 암투와 뒷거래 등 추악한 모습이 드러나지 않아야 한다는 게 이 바닥의 불문률이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권력의 위압적이고 폭력적인 장면을 온 국민이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상황이 됐다. 멀쩡한 후보들이 차례로 사라지는 공포물에 사람들은 경악했다. 백주대낮에 각목으로 전당대회장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1987년의 일명 '용팔이 사건'과 뭐가 다른가.

과도한 국민의힘 전당대회 개입, 퇴임 후 고려한 포석
올 가을 용산발 무더기 공천 투척 때는 더 험한 꼴 볼 듯
지지율 30%대론 총선 승리는커녕 탈당 요구 받을 수도
윤 대통령, '힘자랑' 그만하고 겸손함과 책임감 갖기를

문제는 전당대회는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자타공인하는 '진윤(진짜 윤석열계)' 후보가 당대표가 됐을 때를 떠올리면 아찔하다. '용산 출장소'로 전락한 여당에 민심 전달은 언감생심이다. 벌써부터 '당정융합'이니 '당정일체화'니 하는 걸 보면 다른 목소리를 내는 비주류는 도륙당할 판이다. 올 가을 시작될 용산발 무더기 공천 낙하산 투척 때는 또 어떤 아수라장이 펼쳐질지 섬뜩하다.

윤 대통령의 설계와 전략은 커다란 오류에 터잡고 있다. 이준석이 없었으면 더 크게 대선에서 이겼을 것이고, 안철수와 단일화를 안 했더라도 승리했을 거라는 착각이다. 다른 사람 말 안 듣고 내 식대로 하니까 결국 대통령이 되지 않았느냐는 과도한 자신감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니 내 말만 따르면 총선 승리는 따논 당상이라고 밀어붙인다.

최근 윤 대통령 지지율은 다시 30%대로 추락했다. 오로지 나만 믿으라는 독선과 오만이 국민에게 좋게 비칠 리 없다. 하지만 이런 저조한 지지율로는 총선은커녕 국정과제 하나 제대로 추진하기 어렵다. 민생이 도탄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형편이 아니다. 자칫하면 총선을 앞두고 여당으로부터 버림받는 험한 꼴을 당할 수도 있다.

윤 대통령이 진정 퇴임 후 안전을 걱정한다면 꼭 필요한 게 있다. 겸손과 책임감이다. 정치가 해보니 의외로 쉽다는착각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국정의 성공 여부는 지식이나 암기가 아니라 경청과 실행에서 판가름난다. 그러려면 자신의 말을 줄이고 다른 사람의 고언을 들어야 한다. 대통령의 '근육자랑' '힘자랑'은 그만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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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한국일보 전 주필. 1987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사회부장, 편집국장, 수석논설위원, 주필을 역임했습니다. 만 35년 간의 기자 생활을 마치고 2022년 12월 퇴사했습니다. 오랜 기자 경험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우리 사회 현안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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