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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윤 대통령의 '유체이탈' 화법

이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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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분 걸림 -

윤석열 대통령을 만난 인사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얘기는 그의 '다변(多辯)'이다. 사람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깨알같은 지식을 쏟아낸다는 건 검찰총장 때부터 익히 알려진 바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대통령이 된 뒤 더 심해졌다는 것이다. 회의와 보고 자리에서 대통령이 거의 발언을 주도한다고 한다. 듣기보다 말하기에 치중해 핵심을 놓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윤 대통령은 최근 국무회의에서 무려 23분 동안 장광설을 폈다. '빈손' 한일 정상회담에 대한 대국민담화 성격이라지만 생업에 바쁜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다. 급히 길가는 사람 붙잡고 자신의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이 게 끝이 아니라 공개발언 후에도 한참을 더 얘기했다니 참석자들 심정은 오죽했을까 싶다.  

리더가 말을 많이 하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크다. 무엇보다 자신이 한 말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유체이탈 화법이 그래서 나온다. 근로시간 개편안에 대해 윤 대통령은 '주 69시간안'을 마련한 노동부를 거듭 질책했다. 하지만 대선 때 '일주일 120시간'을 강조했던 게 윤 대통령이다. 개편안 결제도 직접 했다. "중국집 사장이 짜장면을 처음 보는 것처럼 굴고 있다" (정의당 논평)는 말이 왜 나왔겠나.

윤 대통령이 요즘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은 '기득권 카르텔'이다. 그러나 정치적 필요에 따라 남발하다 보니 스텝이 꼬이는 경우가 다반사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연세대 졸업식 축사에서 "기득권 카르텔을 깨야 혁신이 이뤄진다"고 호소했다. 예의 노동계를 겨냥한 발언이지만 하필 그때가 정순신 변호사 '부모 찬스'로 나라가 들끓던 시기였다. '검사 기득권 카르텔'에 대한 원성은 모른 채 청년들 앞에서 딴소리를 하니 '아무 말 대잔치'란 우스개가 나온다.  

일이 잘못됐을 때 남 얘기하듯 하는 유체이탈 화법은 책임 떠넘기기와 한 몸이다. 윤 대통령은 방일 중 일본 야당의 한국 야당 직접 설득 얘기를 듣고 부끄럽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국민은 대통령이 일본에 일방적 퍼주기를 한 것을 비판하는 데 윤 대통령은 자신의 책임을 우리 야당에 돌렸다. 상처받은 자존심을 거론하는 국민은 졸지에 "과거에 매몰된 집단"이 돼버렸다.    

때와 장소 가리지 않는 다변(多辯) 스타일 대통령 된 뒤 심해져
노동시간 개편안 윤 대통령이 주도하고 노동부에 책임 떠넘겨
'일본 퍼주기' 비판에도 사과 한마디 없이 야당과 국민만 힐난
지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쓴소리 경청하는 자세 명심을

윤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 때는 경찰에 강한 질타를 퍼부면서도 국정을 통할하는 대통령으로서 제대로 된 사과 한 마디 없었다. 정순신 사태 때는 인사검증 문제를 지적하면서도, 정작 최종책임자인 자신이나 측근들 책임에는 침묵했다. 대통령이 이러니 대통령실이나 내각이나 누구 하나 "내 탓"이라고 나서는 사람이 없다.

더 우려되는 것은 대통령이 가장 잘 안다는 착각이다. 대개 그렇듯이 어느 사안에 대해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다 보면 스스로가 유능하다는 오류에 빠진다. 게다가 대통령에게는 온갖 정보가 들어오고 최고의 참모들이 조언을 한다. 윤 대통령이 일본에 먼저 내주면 그들도 나중에는 양보할 거라는 믿음에 사로잡혀 있는 것도 이런 맥락일 것이다. "너희들은 잘 모르겠지만"이라는 식의 근거없는 자신감이 윤 대통령을 지배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국가적 현안에서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를 자주 언급한다. 지난 국무회의에선 "만약 우리가 현재와 과거를 서로 경쟁시킨다면 반드시 미래를 놓치게 될 것이다"라는 처칠의 말을 인용해 비판 여론을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처칠이 소통과 관련해서도 명언을 남겼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일어나 자신 의견을 말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지만, 앉아서 상대방 말을 듣기 위해서도 용기가 필요하다."

지금 윤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다변이 아닌 '경청(傾聽)'이다. 지도자의 덕목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듣는 능력이다. 언론을 기피하고 국민 여론에 귀닫는 것은 대통령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윤 대통령은 "역사가 평가할 것"이라고 했지만, 지금은 역사와 대화할 때가 아니라 국민과 마주할 때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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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한국일보 전 주필. 1987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사회부장, 편집국장, 수석논설위원, 주필을 역임했습니다. 만 35년 간의 기자 생활을 마치고 2022년 12월 퇴사했습니다. 오랜 기자 경험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우리 사회 현안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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