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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윤 대통령의 두 가지 생존술

이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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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분 걸림 -

한국에서 발생한 주요 아파트 붕괴 사고를 떠올렸다. 서울 와우아파트, 청주 우암상가 아파트, 광주 현대산업개발 아파트,  검단신도시 아파트 등이 생각난다. 이들 사고를 보며 느껴지는 것은 시대가 바뀌어도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 한국 건설업의 민낯이다. 각각의 사고가 어느 정권에서 일어났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안전과 품질보다는 이윤 극대화를 앞세우고, 이를 위해 적당주의를 용인하는 '부실 문화'가 정권에 관계 없이 뿌리 깊게 박혀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달랐다. 윤 대통령은 1일 국무회의에서 "아파트의 무량판 공법 지하주차장은 모두 우리 정부 출범 전에 설계오류, 부실시공, 부실 감리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아파트 부실 공사 책임이 문재인 정부에 있다는 취지다. 대통령의 이 발언을 신호탄으로 이전 정부에 대한 여권의 공세가 불을 뿜었다. 북치고 장구치는 모습이 잘 짜진 한 편의 시나리오 같다.

윤 대통령이 꽃힌 대목은 문 정부가 들어선 2017년부터 무량판 구조가 보편화됐다는 점일 것이다. 여기에 '철근 누락' 아파트들을 발주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2년 전에도 직원들의 땅 투기로 물의를 빚은 일이 겹쳐졌을 것이다. 당시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터진 LH 투기 의혹은 더불어민주당의 참패로 이어졌고, 이후 치러진 대선과 지방선거까지 영향을 미쳤다. 윤 대통령의 머릿 속에는 이번 사태를 내년 총선의 호재로 활용하고픈 생각이 가득하지 않았을까 싶다.

발주·설계·시공·감리 등이 연결된 아파트 공사의 부실은 어느 한 단계의 잘못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특정 정권의 책임을 따지는 식으로는 문제의 본질을 놓치기 쉽다. 당장 철근 누락 아파트 15개 단지 중 13곳이 윤석열 정부 출범이후 시공이 진행됐거나 준공이 완료됐다는 반론이 나온다. '순살 아파트' 붕괴 사고가 발생한 시점이 지난 4월이니 현 정부도 책임을 면할 길이 없다. LH 퇴직자들이 근무하는 '전관 업체'에는 낙하산 임원들이 전·현 정부 가릴 것 없이 수두룩하다.  

무량판 공법 아파트 文정부 탓이라는 윤 대통령
집권 1년 지나도 여전한 전 정부 책임 떠넘기기
정작 대통령 본인과 현 정부 잘못에는 입 닫아
윤 대통령, 속보이는 전략 언제까지 계속할 건가

윤 대통령의 전 정부 탓은 새삼스럽지 않다. 집권 1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외교안보, 경제, 노동, 교육 등을 포함해 대부분의 분야에서 전 정부를 비난해왔다. 국민들 사이에서도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심지어 총체적 난국에 빠진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를 문재인 정부 때인 2017년 유치했으니 이 것도 전 정부 탓이라고 우길 거라는 비아냥이 나온다. 사회 갈등을 해소하고 새로운 정책과 목표를 제시해야 할 대통령이 언제까지 남 탓을 앞세우며 진영 간 대립을 키울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전 정부 책임 떠넘기기에 진심인 윤 대통령은 유독 자신과 현 정부의 잘못에는 관대하다. 가장 큰 물난리 피해를 겪은 오송 지하차도 참사에 대해선 아직 한 마디 사과도 없다. 이태원 참사 때처럼 이번 수해에서도 윗사람들은 정치적·도의적 책임의 그물망을 유유히 빠져 나가는 모습이다. "책임은 있는 사람에게 딱딱 물어야 한다"는 윤 대통령의 말이 공직자의 무한책무를 무너뜨린 결과다.

남을 책망할 때는 격한 말을 쏟아내면서도 불리한 일에는 입을 다무는 윤 대통령의 모습도 관행처럼 굳어졌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의 장모가 구속됐는데도 평소 깨알같은 지시를 쏟아내는 윤 대통령은 모르쇠다. 영부인이 공무 수행 중 명품숍을 들렸는데도 "나 몰라라" 이고, 처가 일가 땅 보유 논란으로 인한 고속도로 노선 변경 의혹이 전 국민적 관심사인데도 침묵하고 있다.

다행인 것은 영리한 국민들도 이제 윤 대통령의 생존법을 알아채렸다는 거다. 정책 잘못은 전 정권과 야당에게 떠넘기고, 변명하기 곤란한 일은 입을 열지 않는 전략 말이다. 그러나 이런 뻔한 수법이 언제까지 통할 수는 없다. 끊임없이 과거만 캐는 윤석열 정부에서 비전과 목표를 찾아볼 수 없다는 여론의 지적을 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윤 대통령은 대선 때 대장동 개발특혜 의혹을 비판하면서 링컨 대통령의 말을 인용해 "국민을 짧게 속일 수 있지만 영원히 속일 수 없다"고 말했다. 이제 그 말은 윤 대통령에게 고스란히 돌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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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전 주필. 1987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사회부장, 편집국장, 수석논설위원, 주필을 역임했습니다. 만 35년 간의 기자 생활을 마치고 2022년 12월 퇴사했습니다. 오랜 기자 경험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우리 사회 현안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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