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윤 대통령, 유체이탈 화법은 변하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의 1일 시민들과의 만남이 소통 행보 강화로 눈길을 끌었지만 정작 주목된 것은 그의 변하지 않은 유체이탈 화법이다. 윤 대통령은 긴축재정 기조를 설명하면서 "선거를 위한 정치가 아니라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서민과 취약계층을 위한 정부의 역할을 선거용으로 치부한 것도 놀랍지만, 대통령 자신은 총선 행보를 하지 않는다고 시치미를 떼는 게 어이없다.
요즘 윤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은 선거와 관련되지 않은 게 없다시피 하다. 국회를 찾아 야당 대표와 악수를 하고 마포의 카페에서 시민들과 만난 것부터가 총선을 겨냥한 행보다. 박정희 전 대통령 추도식 참석, 안동 유림 방문 등이 보수층 결집을 노린 전략이라는 사실을 모를 국민은 없다. "지지율이 떨어져도 할 건 한다"던 윤 대통령이 국민연금 개혁안을 '맹탕'으로 내놓은 것도 내년 총선 말고는 설명이 안 된다.
시민들 만남에서 윤 대통령이 보인 또다른 유체이탈 발언은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한 것이다. "누구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대통령과 정부의 책임이라는 확고한 인식을 갖겠다"고 했다. 정작 책임을 져야할 때는 침묵하다가 시일이 흐르자 책임을 언급하니 황당하다. 그간 윤 대통령은 국가재난과 인사 문제에서 책임을 인정하거나 제대로 사과한 적이 없다. 번번이 참모들 뒤에 숨거나 하급자만 치도곤을 낸 것을 국민은 잊지 않고 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고, 손발이 따로 노는 현상은 정부여당에까지 옮겨간 모습이다. 대통령직속 지방시대위원회는 1일 '지방시대 종합계획'이라는 거창한 플랜을 발표했다. 파격적 지원으로 소멸돼 가는 지방을 살리겠다는 취지다. 비슷한 시각 국민의힘에선 '김포 서울 편입'의 신속한 추진을 위해 특별법 제정 방침을 밝혔다. 한편에선 서울의 몸집을 불리겠다고 하고 다른 쪽에선 지방을 살찌우겠다니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다.
유체이탈 화법에 퇴행적 인식도 변화 없어
내년 총선 의식한 몸 낮추기 전략 아닌가
실제 국정 운영도 달라진 게 없다.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작업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언론 장악 시도는 멈출 줄을 모른다. 전 정부를 향한 감사와 수사는 되레 확대되는 양상이다. 이태원참사 특별법은 여당 반대로 멈춰선 상태고, 노란봉투법과 방송법 개정안은 통과도 되기 전에 대통령의 거부권이 예고돼있다. 기자회견을 재개한다거나 민주당이 제안한 윤 대통령과 여야 대표 3자 회동은 감감 무소식이다.
대통령의 메시지 역시 기존 틀을 벗어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 민생현장의 목소리라며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을 내국인과 동등하게 지급해야 한다는 국제노동기구(ILO) 조항 탈퇴를 언급했다. 50인 이하 소규모 사업장에서는 내년부터 적용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을 두려워하는 목소리가 있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의 인식이 1980년대 시절에 머물러 있다는 우려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윤 대통령은 최근 참모들에게 "지난 대선 때처럼 절박한 마음으로 민심만 바라보고 뭐든 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대선 후보 시절 윤 대통령은 잇단 실언과 당 내분으로 지지율이 추락하자 "초심으로 돌아가 국민이 듣고 싶어하는 말씀을 드리겠다"고 엎드렸다. 그러나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는 오만과 독선, 무책임으로 태도가 달라졌다. 그러니 항간에선 윤 대통령이 총선만 끝나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거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별도로 가진 이태원 참사 1주기 추도예배에서 "지난해 오늘은 제가 살면서 가장 슬픔을 가진 날"이라고 말했다. 이틀 뒤 국회에서 가진 상임위원장단과의 오찬에선 "취임 이후 가장 기쁘고 편안한 날"이라고 했다. 1일 시민들과의 만남에선 "(반대 측에서) 탄핵시킨다는 이야기까지 막 나온다. (탄핵) 하려면 하하라"는 말도 했다. 대통령의 말이 극단을 오가는 건 그만큼 총선을 의식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더 심한 말과 해괴한 일들이 많아질 것이란 불길한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