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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윤 대통령, 국민에 '굴복' 좀 하라

이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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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분 걸림 -

윤석열 대통령의 29일 국정브리핑을 겸한 기자회견은 예상과 한치도 어긋나지 않았다. 자화자찬과 억지 주장, 동문서답으로 일관한 장황한 '독백'의 자리였다. 국민이 듣고 싶은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거침없이 쏟아냈다. 윤 대통령은 '개혁 저항'에 대한 정면돌파라고 생각하겠지만, 국민 가운데는 '벽창호'를 떠올린 사람이 적지 않았을 게다.  

윤 대통령은 온 국민이 불안해하는 '의료대란'을 의대 증원 반대세력의 과장으로 치부했다. 상당수 국민은 의대 증원에 찬성하지만 지금처럼 막무가내식 정책 처리는 잘못됐다고 여긴다. 난데없이 튀어나온 2000명 증원의 불합리와 졸속 결정의 문제를 지적하는데 윤 대통령은 딴소리를 하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굳이 '의대 증원 반대세력'이란 말을 꺼낸 건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를 겨냥한 듯하다. 대통령실이 하루 두 차례씩이나 한 대표의 내후년 의대 증원 보류안에 쌍심지를 돋운 것도, 국민의힘 지도부와 만찬을 취소한 것도 한동훈에게는 결단코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출일 것이다. 심지어 대통령실은 "국민 생명 직결 사안에 굴복하면 정상적 나라가 아니다"는 말까지 했다. 대통령의 '외골수' 태도는 정상의 범위를 벗어났다.    

언론을 향해 "의료 현장을 가보라"고 훈계하는 장면은 더 황당하다. 언론이 매일같이 응급실 '뺑뺑이'와 수술 중단 등 의료 현장에서 벌어지는 심각한 상황을 전하는데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가. 윤 대통령이야말로 복지부 공무원들의 말만 듣고 사태를 잘못 판단하고 있다. 지난 총선 직전의 '대파 875원 사건'을 벌써 잊은 모양이다.

윤 대통령은 의대 증원 사태에 물러설 생각이 추호도 없어 보인다. 자신이 앞장선 의대 증원이 역사적 평가를 받을 거란 확신에 찬 모습이다. 하지만 그 평가가 나오기도 전에 다수 국민의 생명이 위협 받는 현실엔 눈감고 있다. 병원에서 외면당한 환자들이 발을 동동 구르는데 이를 "개혁에 따른 고통"이라며 감내하라는 건 지도자의 자세가 아니다. 허깨비 풍차를 보고 돌진하는 돈키호테와 뭐가 다른가.

'의료대란'에 문제없다는 안이한 인식
채 상병 수사외압 의혹에도 나몰라라
양보없는 윤 대통령 앞날 우려스러워

다른 정국 현안에서도 윤 대통령은 고집을 꺾으려 하지 않는다. 채 상병 특검법과 관련해 "국회 청문회에서 외압의 실체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했고 경찰의 임성근 전 사단장 무혐의 결정에 대해선 "아주 꼼꼼하게 수사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대통령실 외압 의혹이 속속 드러나면서 특검법 찬성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은 사실은 애써 무시하고 있다. 검찰의 김건희 여사 '출장 조사' 논란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식이고, 제2부속실 설치는 "장소가 마땅한 곳이 없다"고 했다. 본인과 배우자 문제에는 겹겹이 방어막을 친 형국이다.

윤 대통령은 국민연금 개혁안을 제시하면서 이전 정부가 하지 못한 일이라고 생색을 냈다. 몇 달 전 야당 양보로 가까스로 타결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를 걷어찬 당사자가 윤 대통령이 아닌가. 국회 입법을 위해선 야당에 협조를 부탁해도 될까말까인데 국회에 공을 떠넘기면서 "이런 국회는 처음 본다"고 고춧가루를 뿌렸다. 영수회담 가능성엔 "국회 정상화가 우선"이라면서도 국회를 전쟁터로 만든 책임에 정작 자신은 뺐다.  

대통령실은 이번 기자회견이 임기 3년차를 맞은 윤 대통령의 국정 청사진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개혁이란 임기 초반에 권력이 가장 강력할 때 추진해도 쉽지 않은 법이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국정 동력이 현저히 떨어진 지금 '개혁'을 다시 꺼냈다. 그동안 귀에 못이 박히도록 외친 '3대 개혁'이 진척이 없자 리모델링해 내놓은 것이다. 그런 재고품이 얼마나 잘 팔릴지는 의문이다.

윤 대통령은 "개혁은 필연적으로 저항을 불러온다"며 "쉬운 길을 가지 않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개혁은 대통령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가능한 많은 사람들의 협조와 이해가 요구되고, 그러려면 때론 한 발 물러서거나 과감히 거둬들이는 것도 필요하다. 지금의 윤 대통령은 그럴 의사가 조금도 없다. 국민에게 '굴복'하지 않는 윤 대통령의 앞날이 심히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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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한국일보 전 주필. 1987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사회부장, 편집국장, 수석논설위원, 주필을 역임했습니다. 만 35년 간의 기자 생활을 마치고 2022년 12월 퇴사했습니다. 오랜 기자 경험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우리 사회 현안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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