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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그들만의 '왕 놀음'

이충재
이충재
- 6분 걸림 -

어설픈 봉합으로 끝난 권력 1,2인자 간의 대결에서 가장 충격을 받은 사람은 윤석열 대통령이 아닌가 싶다. '영원한 부하'로 여겼던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들이받기에도 놀랐겠지만, 권력이 확연히 기울어진 현실을 깨달은 그의 심정이 어땠을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오죽하면 애착을 갖고 진행하던 생중계 민생토론회 참석을 직전에 취소했겠는가.  

냉정히 말해 두 사람이 갈등을 빠르게 얽어맬 수 있었던 것은 총선 영향보다는 윤 대통령의 역부족이 작용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이전에 윤 대통령이 멀쩡한 당 대표를 내쫓고, 전당대회 후보들을 주저앉히던 모습을 떠올려보라. 파문(破門)을 알리는 문자 한 줄 보내거나 사람을 시켜 의중을 전하기만 해도 당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러나 이번엔 한 위원장에 대한 인간적 분노와 배신감을 표출하며 '지지 철회'를 공언했는데도 호응이 없었다. 쫓아내려는 마음은 굴뚝같으나 그럴만한 실탄도 병력도 없었던 셈이다.

한 위원장도 예전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던" 그 한동훈이 아니었다. 비서실장을 시켜 사퇴를 종용하자 바로 언론에 이 사실을 흘린 건 한 위원장 측이었다. 다음날에는 아예 대놓고 "사퇴를 거절했다"고 폭로했다. 김경율 비대위원 '사천' 문제를 거론하자 친윤 인사들과도 상의한 것이라고 되받아쳤다. 기세로 볼때 대통령이 당무에 개입하고 공천에 관여했다고 동네방네 떠들어 대고도 남을 판이다.

사실 한 위원장의 이런 행태의 상당부분은 윤 대통령에게 배운 것이다. 이전 정권에서 대통령에 들이받아 권력을 키운 게 윤 대통령 아닌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과를 따내는 것은 특수부 검사때부터 익힌 생존방식이다. 언론을 최대한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는 수법도 똑같다. 이번에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은 서로를 상처내기 위해 현란한 언론플레이를 펼쳤다. 덕분에 전 국민이 이들의 기상천외한 활극을 생생이 지켜볼 수 있었다.

힘자랑하다 레임덕 자초한 윤 대통령
한동훈도 '홀로서기' 못하면 가시밭길
교훈도 감동도 없는 그들만의 궁중암투

어쨌든 윤 대통령으로선 섣불리 근육자랑을 하다 되레 허약함만 드러냈다. 스스로 레임덕의 길을 앞당긴 셈이다. 그 징후는 곳곳에서 나타나게 돼있다. 공직사회가 흐트러지고 굼뜨는 모습이 표면화되는 게 신호탄이다. 지시에 무게가 실리지 않고, 정책 추진력도 떨어졌다는 사실을 실감할 것이다. 여당내에선 친윤 세력의 목소리가 약해지는 대신 점차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나올 공산이 크다. 총선에서 패하면 추락에 가속도가 실려 통제불능 상태가 올지 모른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패배가 곧장 한 위원장의 승리로 직결되는 건 이니다. 윤 대통령의 '뒤끝'은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를 몰아내는 과정을 통해 익히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이 결정적으로 갈라진 사건이 전해진다. 대선 때 갈등을 빚던 두 사람이 국회 의총장에서 극적으로 포옹한 뒤 함께 순직 소방관 조문에 동행했다. 당시 차를 몰던 이 전 대표가 "내가 정치선배"라며 내내 '훈수'를 하자 윤 대통령이 듣기 싫어 잠자는 척하면서 "이준석을 쳐내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끈질기게 괴롭히다 결국 쳐냈다.

윤 대통령이 지금은 물러선 듯 보이지만 자신에게 대든 한 위원장을 그대로 놔두지는 않을 것이다. "가장 아끼는 사람에게 뒤통수를 맞은 바보"라는 소리까지 듣고 가만히 있을 윤 대통령이 아니다. 조금의 틈만 보이면 집요하게 파고들어 공격할 것이다. 공천이든, 당무든, 아니면 이른바 '캐비닛'을 꺼내서라도 보복하리라 본다. 한동훈은 너무 빠르게, 그 것도 어설프게 윤 대통령을 건드렸다.  

한 위원장이 버티려면 국민적 지지를 받아야 하지만 과연 그럴지는 의문이다. 그는 국민 다수가 원하는 '김건희 특검법'을 악법이라 했고, 명품백 의혹엔 겨우 "국민 눈높이"라는 말만 꺼냈을뿐이다. 이태원특별법도 거부권을 행사하라고 건의했다. 그렇다고 민생을 살릴 특단의 대책을 내놓은 기억도 없다. 그는 애초 살아있는 권력의 곁불을 쬐며 정치적 존재감을 넓힐 생각은 있었을지언정 차별화할 의지도, 신념도 없었다.  

민주화이후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세 번의 사례에서 확인된 공통점은 같은 진영이지만 완전히 이질적인 성향일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김영삼과 노무현, 박근혜가 그랬다. 윤석열과 한동훈은 성장과정이나 배경, 세력 등 다른 점이 거의 없다. 20년을 검찰에서 상명하복과 검사동일체 원칙에서 형님과 동생으로 살아온 그들이다. 그렇기에 두 사람 대결은 감동도, 교훈도 없는 치졸한 '궁중암투'에 불과하다. 국민도 '동료시민'도 빠진 '왕 놀음'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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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전 주필. 1987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사회부장, 편집국장, 수석논설위원, 주필을 역임했습니다. 만 35년 간의 기자 생활을 마치고 2022년 12월 퇴사했습니다. 오랜 기자 경험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우리 사회 현안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