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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명품백' 사과를 애걸하는 나라

이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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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분 걸림 -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을 둘러싼 요즘의 상황은 초현실적이다. 온 국민이 윤석열 대통령의 입만 쳐다보는 형국이 지리하게 어어져서다. 마치 제발 '사과'만이라도 해달라고 안달하는 듯한 풍경이다.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정작 물의를 일으킨 당사자는 아무 거리낌이 없는데 왜 국민이 불편하고 불안해야 하는가.

명품백과 관련한 윤 대통령의 입장 표명 여부는 더 황당하다. 처음엔 신년 기자회견 개최를 검토한다고 했다가 기자들 질문받기가 곤란해 다른 형식을 고려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러다 한 방송사와 대담을 갖는 것으로 결정했으나 명품백 발언수위를 놓고 다시 장고에 들어갔다. 입장 설명에 그칠지, 유감 또는 사과를 할지 고민했다고 한다. 결국은 4일날 사전 녹화해 7일 방송하는 것으로 결론내린 모양이다. 민감한 부분을 거를 시간을 충분히 둔다는 얘기다.  

대통령 배우자가 사인(私人)으로부터 청탁성 금품을 받았다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당사자는 '정치 공세'라며 직접 나서지 않고 대통령은 총선 유불리만 따지며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이 정부들어 비정상적인 일이 많다보니 국민들 감각이 무뎌져서 그렇지 기막힐 노릇이다. 벌써 이러기가 한 달이 지났다.

대통령실만 이상한 게 아니다. 국민의힘에서도 명품백 얘기는 쑥들어갔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윤 대통령과 일합을 겨룬 뒤 명품백 논란에 입을 닫았다. 기자들이 아무리 물어도 "제 입장은 변화가 없다"는 말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한다. 한 위원장이 "제가 언제 사과를 요구한 적 있느냐"고 말한 것을 떠올리면 그의 입장이 뭐였는지 아리송하지만, 명품백 문제를 다시는 거론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듯하다.

김 여사를 마리 앙투아네트에 비유하며 목소리를 높였던 김경율 비대위원은 돌연 야당으로 칼끝을 돌렸다. 명품백 논란이 전혀 해소되지 않았는데도 입에 자물쇠를 굳게 채웠다. 역시 명품백 사과를 주장했던 국민의힘 영입인재 1호인 이수정 경기대 교수는 김 여사를 "덫에 걸린 피해자"라고 말을 뒤집었다. 대통령실이 사과 불가로 가닥이 잡히는 듯하자 돌연 태세 전환에 나선 것이다. '김건희 리스크'라는 여섯글자가 다시 여당의 금기어가 됐다.

한달째 윤 대통령 입만 주시하는 명품백 의혹
외신에선 이슈 됐는데 국내선 되레 언급 실종
'김건희 리스크'는 다시 국민의힘 금기어 됐나

명품백이라는 '뜨거운 감자'를 떠안은 기관들도 안절부절이다. 청탁금지법 주무기관인 권익위원장은 "사실상 권익위가 관여할 권한이 없다"고 시치미를 뗐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응급헬기 탑승 의혹 조사는 빠르게 착수한 것과 비교쯤은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다. 검찰도 명품백 고발 사건을 배당만 해놓고 사실상 수사에 손을 놓고 있다.

대통령실도 여당도, 수사기관도 하나같이 침묵 모드로 돌아선 사이 명품백 논란은 외국에서도 주목하는 뉴스가 됐다. 김 여사의 표절·학력 위조·탈세 및 주가조작 등 그간 쌓인 의혹을 집중 보도하는가 하면 윤 대통령을 '심한 권력병 환자'라는 비판 기사도 싣고 있다. 만약 다른 나라 대통령 부부에 대해 이런 보도가 나왔다면 우리가 어떤 평가를 내렸을지 생각하면 아찔하다. 앞으로 윤 대통령과 김 여사가 외국을 방문할 때 그 나라 국민이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지 걱정스럽다. 대통령뿐 아니라 국가의 품격도 함께 실추됐다.  

때마침 전해진 한국의 부패인식지수 순위 하락 소식은 명품백 수수 의혹과 연결돼 더 혼란스럽다. 7년 만의 순위 하락이라는 점도 놀랍지만 검찰총장 출신의 대통령이 나온 뒤 부패가 늘어났다는 게 더 충격적이다. 윤 대통령이 강하게 밀어붙인 '부패카르텔 척결'의 허구성이 드러난 셈이다. 정작 카르텔의 핵심인 검찰∙법조 카르텔에 눈 감은 당연한 결과다.    

윤 대통령은 유독 사과에 인색하다. 대선 후보 당시 이른바 '개 사과' 논란때부터 알아봤지만 설마 이 정도일지는 몰랐다. 참사 책임이든, 정책 실패든, 인사 난맥이든 그 어느 것도 제대로 사과한 적이 없다. 어떤 잘못에도 고개를 숙여본 적 없는 검찰 시절의 오만한 태도가 몸에 밴 탓이기도 하고, 실제 자신이 잘못한 게 없다고 굳게 믿어서일 수도 있다. 어느 경우든 사과하지 않는 대통령 모습이 국민에게 어떻게 비칠지 생각이나 해봤나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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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전 주필. 1987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사회부장, 편집국장, 수석논설위원, 주필을 역임했습니다. 만 35년 간의 기자 생활을 마치고 2022년 12월 퇴사했습니다. 오랜 기자 경험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우리 사회 현안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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