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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재명은 왜 '자충수'를 뒀을까

이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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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분 걸림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은 의외의 결과지만 누구를 탓할 것도 아니다. 당초 부결 전망이 우세함에도 이 대표는 국회 표결 이틀 전에 부결 투표를 호소하는 글을 띄웠다. 자신은 화룡점정을 하겠다는 심정이었겠지만 불과 석 달 전 모든 국민 앞에서 한 불체포특권 포기 선언을 뒤집는 발언이었다. 정치인으로서 국민과의 약속이 얼마나 큰 무게를 갖는 것인지를 간과한 게 패착이다.

민주당 의원들에게 부결표를 던져달라는 글에서 "검찰의 강압수사에 당당히 맞서겠다"던 이재명의 기개는 자취를 감췄다. 사실 친명 의원들 조차도 내심 이 대표가 "가결을 찍어달라"며 '이재명스러움'을 보여주길 바랬다. 하지만 이 대표는 '방탄정당'의 혐의를 덜어내긴커녕 오명에 쐐기를 박았다. 가결과 부결 사이에서 고민하던 몇몇 의원들에게 불을 지펴준 것이다. 굳이 이 대표는 그 글을 써야 했을까는 의문이 든다. 개인의 안위에 눈이 어두워 정치인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정무적 감각마저 사라져 버린 걸까.

이 대표가 잃은 것은 실리뿐이 아니다. 20일 간의 단식의 명분도 송두리째 사라졌다. 단식을 시작할 때 이 대표의 심정을 폄훼할 수는 없다. 폭주하는 윤석열 정부에 맞서 야당으로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인식은 국민 사이에도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무엇보다 단식이라는 행위 자체가 순수성을 따지기에 앞서 사람의 정서를 잡아끄는 힘이 있다. 이 대표 단식 장소에 적잖은 비명계 의원들이 방문해 위로를 건넨데서도 인지상정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 대표는 이런 유리한 상황을 한 순간에 날려버렸다.  

그렇다고 이 대표 명운이 아직 끝난 건 아니다. 얼마든지 기사회생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우선 이 대표가 해야 할 것은 국민과 당원 앞에 사과하는 일이다. 자신과 민주당이 연이어 한 불체포 포기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부터 소상히 해명하기 바란다. 대국민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한 데 대한 유권자들의 분노는 거의 임계점에 도달해있다. 자신의 생각이 짧았다고 솔직히 밝혀야 한다.

이 대표의 '부결표 호소' 글이 자충수 돼
현실화된 '사법 리스크' 당당하게 임해야
당 분열 막고, 개혁체제 전환 앞장서길

더 걱정되는 건 민주당의 분열이다. 이미 강성지지자들은  '끝까지 부결 표를 던진 이들을 찾아내 정치 생명을 끊어놓을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자칫 민주당으로선 최악의 사태까지 치달을지도 모른다. 당의 분열은 내년의 총선 패배로 직결될 게 명확하다. 이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이 대표밖에 없다. 지지자들에게 단합을 촉구하고 다독여야 하는 것은 오롯이 이 대표 몫이다.

검찰 수사가 이재명을 어떻게든 옭아매려 한다는 목표를 갖고 움직인다는 것을 이제 웬만한 국민은 다 알고 있다. 그 것이 정의의 실현보다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라는 것도 모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 대표에게 전혀 흠결이 없다고 보는 사람은 드물다. 국민이 알고 싶은 건 그 흠결의 정도가 정치적 탄압 차원에서 부풀려지고 가공된 진실을 뛰어넘는 수준인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대표의 당당한 모습을 원했던 거 아닌가.  

이 대표는 영장 심사에서 당당하게 입장을 밝히면 된다. 사실 그대로를 솔직하게 진술하는 게 최선의 방책이다. 만일 이 대표가 살아돌아온다면 리더십과 정치적 위상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검찰의 수사가 정당한 수사가 아니라 '정적 죽이기'라는 것을 모든 사람에게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는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최근 검찰 간부 인사에서 이 대표 수사 검사들을 전진 배치한 데서 드러나듯 윤석열 정부는 수사를 멈출 생각이 없다. 이 대표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도 줄줄이 남아 있다. 이 대표는 자신 앞에서 놓인 가시덤불부터 헤쳐나가야 한다.  

위기에 놓인 당을 일으키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이 대표는 적당한 시기에 당권을 내려놓고 새롭고 개혁적인 체제로 민주당을 재편해야 한다. 총선은 이 대표 없이도 안 되지만, 이 대표 체제로는 안 된다는 건 민주당 지지자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바다. 온 몸에 상처를 입은 이 대표 얼굴로 총선을 치르는 것은 섶을 지고 불로 뛰어드는 격이다. 차기 대선이 목표인 이 대표로서도 총선에서 지면 앞날을 기약하기 어렵다. 모든 게 이재명에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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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한국일보 전 주필. 1987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사회부장, 편집국장, 수석논설위원, 주필을 역임했습니다. 만 35년 간의 기자 생활을 마치고 2022년 12월 퇴사했습니다. 오랜 기자 경험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우리 사회 현안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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