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진보 부동산 무능', 이 대통령이 끊자
이재명 정부의 '10·15 부동산 대책'에서 정작 눈여겨본 건 규제 시효다. 거래를 제한하고 대출을 죄는 시한을 내년 12월까지로 못박았다. 통상 부동산 규제책을 내놓을 때 무기한으로 했던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그때까지 시장 상황을 지켜본 뒤 연장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겠지만,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의식한 조처라는 게 더 타당해 보인다.
이번 대책이 수요 억제에 방점이 찍힌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선거가 치러질 때까지 부동산 수요가 꿈틀거리지 않고 잠잠해지기를 바라는 기대가 깔려 있다. 그러면 규제 지역을 풀고 대출도 다시 완화하겠다는 메시지가 담겼으리라 본다. 한껏 치솟은 집값을 잡기보다는 현상 유지만 하자는 속내가 읽힌다.
더 높은 수익을 좇아 움직이는 부동산 시장은 당국의 의도를 간파했을 것이다. 세제는 건드리지 않은 채 운만 띄우고 공급 대책은 내놓지 않는 데서 패가 읽혔다. 그렇기에 효과가 얼마나 갈지는 두고볼 일이다.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심리로 잠시 숨죽이고 있겠지만 시장은 언제든 튀어오를 태세가 돼있다.
이미 시장은 정부를 저만치 앞서가고 있다. 집값이 올랐다고 사람들이 아우성치면 당국의 대책이 나올 거라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직후 나온 '6·27 대책'이 효과를 냈던 건 기습적이어서였다. 이 대통령이 선거 때 가급적 부동산을 건들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자 시장이 넋놓고 있다 당한 것이다. 하지만 주택 공급 중심의 '9·7 대책'은 집값이 다시 오르자 억지춘향격으로 내놓아 실패했고, 이번 세 번째 대책도 실기한 측면이 크다.
'집값 안정'과 '선거전략' 사이 줄타기
보유세 강화 등 더 강한 대책 내놔야
'센 대책'이 나올 거라는 소문은 진작부터 퍼졌고, 시나리오도 돌았다. 서울·수도권 거래가 급증하고, 최고가 거래 기록을 갈아치우는 사례도 속출했다. 오히려 추가 대책이 나오기 전에 서둘러 사둬야 한다는 '패닉 바잉' 심리까지 더해져 호가 상승을 부채질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그런 터라 벌써부터 시장 전문가들은 '똘똘한 한 채' 선호 현상 심화로 이번 대책이 반짝 효과에 그칠 거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새 정부 출범 넉달만에 벌써 세 번째 대책을 내놓는 과정도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지금 집값을 잡지 않으면 나중에 더 어려워진다는 대통령실과 선거를 앞두고 서울과 수도권 표심을 우려한 여당 간에 진통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대책의 내용을 보면 '집값 안정'과 '선거 전략'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줄타기를 한 모양새다. 진정 집값을 잡을 요량이었다면 당정대가 한 목소리를 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정부와 여당이 착각하는 게 있다. 부동산을 지나치게 억누르면 선거에 불리하다는 잘못된 인식이 팽배해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집값 상승을 방관하다시피하고 대책 하나 내놓지 못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서울 격전지가 몰려 있는 '한강벨트' 표심을 잡겠다고 부동산 규제 강화에 뒷짐지는 모습은 집권당으로의 존재감마저 의심케 한다.
실제 선거에 더 영향을 미치는 건 집값이 급등했을 때다. 지난 20대 대선에서 문재인 정부의 집값 폭등은 정권 재창출 실패의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무주택자뿐 아니라 집을 소유한 이들도 상대적 박탈감에 사로잡혀 분노 투표로 이어졌다. 어차피 고소득층을 중심으로 한 보수층은 진보정부가 어떤 부동산 정책을 내놔도 흔쾌히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국민 다수가 원하는 '집값 안정'이 정책의 지향점이 돼야 한다는 사실이 명확해진다.
이재명 정부 성공을 위해서도 부동산 문제 해결은 중요하다. 한국 사회는 부동산에 워낙 많은 돈이 몰려 투자와 소비를 제약하는 짐이 되고 있다. 이 대통령도 부동산보다는 증시로 돈이 옮겨가야 한다는 바램을 표명했지만 그러기 위해선 보유세 강화 등 더 과감한 부동산 대책을 내놔야 한다. 주택을 벽돌처럼 찍어내기 어려우니 공급을 늘리려면 세금을 높여 집을 내놓게 만들어야 한다.
지지층 가운데서도 이재명 정부 부동산 대책의 목표가 뭔지 모르겠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집값이 오르면 뒤따라가는 임기응변적 대책이 아니라 부동산 정책의 목표와 방향을 뚜렷이 제시할 필요가 있다. '진보정부는 부동산에 무능하다'는 속설을 이 대통령은 꼭 끊어내야 할 책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