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 대통령, '야당 복'도 따른다
요즘 보수 언론들의 칼럼은 이재명 대통령 비판보다는 국민의힘 때리기가 주를 이룬다. 딱히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탓할 게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우호 세력인 국민의힘이 워낙 맥을 못추는 게 못마땅한 것이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이 힘을 내서 이재명 정부 실정을 공격해야 이를 근거 삼아 보수 언론도 존재감을 살릴 수 있을 터다.
그도 그럴 것이 정권 교체 후 국민의힘은 지리멸렬이다. 대선에서 진 정당은 먼저 패인을 분석하고, 반성문을 쓰고, 대국민사과를 해서 동력을 만든 뒤 대여 투쟁에 나서는 게 일반적 공식이다. 국민의힘은 첫 단계부터 머뭇거리고 있다. 내란 수괴 윤석열이 두 번이나 구속됐는데도 잘라내지도 못하고, 반성도 한다는 건지 아닌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비대위원장 겸 원내대표란 사람이 기껏 한다는 말이 "전직 대통령이 구속수감되는 불행한 사태에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게 생각한다"는 거다. 감히 '윤석열' 이름 석자도 부르지 못하고, 무엇이 어떻게 송구하다는 건지 구체적 설명도 없다.
자신들의 '원죄'도 해결하지 못하니 외부를 향한 공격에 힘이 모아질 리가 없다. 정권 출범 직후 조각(組閣) 인사는 야당엔 좋은 먹잇감이다. 문제가 있는 인물을 집중 공략해 낙마시키면 기세등등한 정권에 타격을 주고, 야당은 이를 자양분으로 떨어진 사기를 끌어올릴 수 있다. 김민석 총리 의혹 제기 때 지원군이 없어 혼자서 쩔쩔 매던 모 의원의 모습이 단적인 예다. 지금도 인사 청문회 정국이 펼쳐지고 있지만 야당의 공세는 도무지 타격감이 없다. 의혹을 제기해도 "윤석열 때 너희는 더했지 않느냐"는 역공만 돌아오는 판이다.
국민의힘의 관심은 정작 차기 당권을 누가 잡느냐에 쏠려 있다. 대선에서 패배한 후보는 최소환의 자숙 기간도 없이 당권이라도 잡으려고 기웃거리고, 또다른 유력 주자는 내년 지방선거 패배 시 다시 축출당하지 않을까 걱정하며 득실을 저울질하고 있다. 무턱대고 혁신위원장을 수락했다 며칠만에 걷어찬 사람은 애초 당권을 염두에 뒀다는 얘기가 나오는 마당이다. 그저 하는 거라곤 당권을 차지하기 위한 집안싸움으로 날을 지새는 것뿐이다.
총선 3년 남아 혁신 않고 당권 싸움만
이 대통령, '야당 복' 오판하지 않도록
국민의힘이 절박하지 않은 건 '웰빙 정당'의 체질적 한계 탓이다. 나경원의 '바캉스 농성'은 단식이나 삭발 농성을 해본 경험이 별로 없는 국민의힘에선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인적 청산은 없다"고 선을 그은 새 혁신위원장은 애초 당을 뜯어고칠 마음이라곤 전혀 없어 보인다. 친윤 주류뿐 아니라 대다수 의원들은 총선이 3년이나 남아 당장 의원직을 뺏길 처지도 아닌데 무엇이 아쉬워 그 고통스런 혁신을 하느냐고 생각할 것이다. 윤상현 말대로 어차피 1년 지나면 국민이 다 잊고 다시 찍어줄 텐데 말이다.
상당수 국민의힘 의원들은 열심히 희망회로를 돌리고 있는 듯하다. 이재명 정부가 잘 나가는 듯 보여도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정책 혼선도 나오고, 실책도 쏟아지기 마련이다. 정권 내부에 잡음이 불거지고, 균열도 생기는 게 모든 권력의 이치다. 그 때가 되면 이재명 정부 지지율은 떨어지고, 보수 지지층이 다시 결집힐 것이다. 그 분위기를 잘 타면 총선 승리를 거머쥘 수도 있다.
하지만 착각하는 게 있다. 그 시기가 도래하기도 전에 국민의힘이 고사 상태가 될 수 있다는 거다. 특검 수사망은 시시각각 국민의힘 의원들을 죄어오고 있다. 수사를 통해 '내란 정당' 낙인이 찍히면 회생은커녕 현상 유지조차 어려울지 모른다. 그렇게되면 중도 보수뿐 아니라 강성 지지층도 등을 돌릴 수 있다. 최근 여론조사 흐름을 보면 보수 세력이 이탈해 민주당으로 옮겨가는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보수는 무조건 국민의힘'이라는 등식이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 대통령과 민주당으로선 가만히 앉아서 득을 보는 셈이다. 윤석열의 급발진으로 정권 탈환이 빨라지더니 이젠 국민의힘이 스스로 주저앉는 바람에 발목잡히지 않고 국정을 펴나갈 수 있게 된 셈이다. 이 대통령에겐 '야당 복'도 있다는 말이 절로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허약한 야당이 이 대통령에게 복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 이재명 정부가 잘 해서 국민들이 지지하는 것과 야당이 형편없어서 반사 이익을 얻는 것은 구분돼야 한다.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 선대위원장을 맡았던 보수 원로 윤여준 전 장관은 이 대통령을 향해 "자신감이 지나치면 실수하고 오판하기 쉽다"며 경계를 당부했다. 이 대통령의 뇌리에서 '야당 복'은 아예 잊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