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현지, 이렇게 커질 일이었나
김현지 대통령 제1부속실장이 졸지에 '전국구 인사'로 등극했다. 이제 국민 가운데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다. 좋은 의미로 유명세를 탄 게 아니다. 그렇다고 특별한 잘못이나 비위에 연루되지도 않았다. 전개된 과정이 상식적이지 않기에 들여다봐야 할 구석도 많다.
지난 며칠 간의 상황을 보면 사태가 이렇게까지 커질 일이었느냐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민주당이 발동을 걸고, 대통령실이 맞장구를 치면서 논란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지난달 24일 국회 운영위 국감 증인 협의 과정에서 민주당이 김 실장 출석을 반대한 게 단초다. 이전 국감에서 거의 빠진 적 없던 총무비서관 출석을 유독 안 된다고 하니 탈이 난 것이다. 하다 못해 역대 정부에서 국감 출석 사례가 드문 민정수석도 이번에 증인으로 채택된 마당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꼬투리라도 잡으려 눈에 불을 켜고 있는 국민의힘으로선 왠 떡이냐 싶었을 거다. '만사현통(모든 것은 김현지를 통한다)' '실세 현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속셈은 뻔하다. '문고리 권력'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이 대통령을 공격하려는 의도다. 김건희 국정 농단으로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으로선 역공을 취하기에 안성맞춤이라 여겼을 것이다.
대통령실은 사태를 진정시키기는커녕 되레 불을 붙였다. 김 비서관을 제1부속실장으로 이동하는 인사를 해서 의혹을 부채질했다. 전후 사정을 들어보면 이번 참모들 인사는 대변인실 강화에 목적이 있었고, 김 비서관 이동은 부수적으로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의 김 비서관 증인 채택 반대도 이런 인사를 염두에 둔 대통령실의 요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같은 맥락을 이해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나.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매지 않는 게 아니라 아예 드러내놓고 광고를 한 격이다.
냉철히 보면 이번 논란은 언제든 발화할 수 있는 예견된 것이었다. 김 실장에게 '그림자 실세'라는 말이 씌워진 건 꽤 오래 전부터다. 이 대통령과 수십 년전 성남 지역의 시민모임부터 인연을 맺어온 최측근 참모로 대외 노출을 극도로 꺼린다는 점이 알려진 전부다. 이 대통령이 지자체장이나 당대표에 머물렀다면 김 실장의 존재가 크게 문제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국정 최고 책임자와 참모 신분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국민이 가장 싫어하는 게 권력 막후 음습함
당당하게 나가 이 대통령 국정철학 설명을
박근혜 국정 농단 이후 국민이 가장 싫어하는 게 권력 막후의 음습함이다. 행여, 자격이나 권한이 없는 누군가가 위세를 부려 나라를 수렁에 빠뜨리지 않을까 하는 트라우마가 있다. 김 실장이 대통령 살림살이 전반을 담당하는 핵심 보직을 맡는 순간, 그의 신상이 공개됐어야 했다. 개인정보를 침해하지 않는 최소한의 신상 내역을 밝혔어야 했다. 당사자가 대외 노출을 꺼리는 성향이라는 것과 핵심 공직자가 커튼 뒤에 가려져 있는 것은 별개 문제다.
여태껏 나온 걸 보면 김 실장이 국감에 나온다고 해서 구설에 휘말릴 것 같지는 않다. '인사 전횡'이라는 공세도 인수위 없이 출범해 조직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대통령실 행정관 인사를 주도한 것이라 문제될 리 없다. 그 정도는 총무비서관 권한에 속한 데다 얼마 전부터는 비서실장 체제로 다 정리됐다고 한다. 막상 김 실장이 국감에 출석하면 국민의힘에서 질의할 게 없어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일 수 있다. 무턱대고 김 실장을 몰아붙이면 되레 역풍을 맞는 상황이 연출될 지도 모른다.
이 대통령은 취임 후 국정 운영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강조해왔다. 국무회의를 국정 현안 토론장으로 변모시킨 TV생중계와 대통령실 브리핑 쌍방향 생중계를 도입했다. 역대 정부가 '깜깜이 예산'으로 숨겨왔던 대통령실 특수활동비 집행내역도 처음으로 공개했다. 그렇다면 김 실장 국감 출석도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본인도 국회 출석에 적극적이라고 하고, 대통령실에서도 같은 입장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당당하게 증인 채택에 합의하면 문제는 자연스레 풀린다. 가뜩이나 쉽지 않은 정국 상황에 굳이 야당에 빌미를 줄 이유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