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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박근혜의 오판

이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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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의 부산 지원 유세는 여러모로 의아하다. 박 전 대통령은 27일 부산 시민들에게 "박민식 후보에게 봉사할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 북구갑 국회의원 보궐선거 판세는 하정우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한동훈 무소속 후보가 치열하게 각축하고, 박 후보는 한참 뒤쳐진 양상이다. 박 후보가 1위로 올라설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런데 박 전 대통령은 박 후보에게 표를 달라고 했다. 박 후보를 찍으면 한동훈 표를 잠식해 민주당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건 쉬운 계산 아닌가.  

박 전 대통령이 선거 막판에 지원 유세에 나선 명분은 '보수 결집'이다. 지방선거가 국민의힘에 불리하게 돌아가니 보수 출신 전직 대통령으로서 힘을 보태자는 차원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보수 진영의 상황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국민의힘은 주류 기득권 세력인 장동혁계와 보수 재건을 주장하는 한동훈계가 생사를 걸다시피 맞선 형국이다. 한동훈이 낙마하면 장 대표 체제는 더 굳건해지고 국민의힘의 퇴행은 가속화될 게 뻔하다.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지원 유세가 보수를 결집시키기는커녕 갈등의 골을 더 깊게 할 거라는 사실을 모르는 걸까.

더 이해하기 어려운 건 한 후보의 태도다. 한동훈은 박 전 대통령의 부산 방문에 "그의 인품과 그동안의 삶을 존경하고 존중한다"고 말했다. 한 후보는 서울중앙지검 3차장 시절 박 전 대통령 국정농단 사건 수사를 지휘했고, 1심 결심공판에서 징역 30년을 구형한 바 있다. 국정을 파탄내고 범법을 저지른 행위에 수사 검사로서 마땅히 해야할 일을 한 것이다. 그랬던 이가 지금은 보수 표를 얻자고 박 전 대통령의 과거 잘못을 감싸고 있다. 검사로서 자신의 정당성을 스스로 부인하는 꼴이다.

상황이 이렇듯 꼬인 건 박 전 대통령의 유세가 즉흥적으로 이뤄졌다는 방증이다. 박 전 대통령은 울산을 찾아 김두겸 국민의힘 후보 지지를 호소했고, 진주에 가서는 한경호 진주시장 후보를 밀어달라고 했다. 이들 지역은 국민의힘 경선 잡음으로 여러 후보가 출마해 단일화 요구가 높은 곳이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부산 북구갑처럼 보수 후보 간 단일화는 관심 없고, 그냥 지원을 요청한 후보를 찾아가 표를 달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보수 결집' 내걸곤 박민식 지지, 자가당착
친한계 부글부글, 보수 진영 갈등만 키워
사면 취지 새기며 자숙·성찰하는 게 도리 

보수 지지층이 박 전 대통령의 등판을 마냥 반기는 것도 아니다. 강성 지지층과 달리 친한계에선 속으로 부글부글 끓고 있다고 한다. 퇴진 위기에 내몰린 장 대표를 구하기 위해 사실상의 선대본부장을 자처하고 있다는 불만이다. 장동혁 지도부와의 교감하에 선거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도 있고, 선거 이후 보수 재편 과정에서 모종의 역할을 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장 대표가 박 전 대통령 공개 행보에 "가슴이 뭉클하다"고 한 것을 보면 괜한 말은 아닌 것 같다. 앞서 장 대표도 단식 때 박 전 대통령이 찾아와 중단을 권유하자 바로 그만두지 않았나.

박 전 대통령은 징역 2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4년 9개월만 수감된 뒤 풀려났다. 사면받지 않았다면 지금도 교도소에서 수형 생활을 해야 할 처지다. 당시 사면의 공식 명분은 '보수 결집'이 아니라 '국민 대화합'이었다. 사면 직후 박 전 대통령은 "많은 심려를 끼쳐드려 국민께 송구스럽다"고 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벌써 자신이 한 말을 까맣게 잊은 모양이다. 그 발언에 진정성이 있었다면 현실정치에 개입하는 일은 상상도 하지 말았어야 한다. 자신의 행동이 새로운 분열과 갈등을 불러올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나.

박 전 대통령은 국민의 신뢰를 배신해 파면당했다. 그런데도 국민은 사면의 은덕을 베풀었다. 그렇다면 남은 생애는 자숙하고 성찰하며 사는 게 전직 대통령의 도리다. 사면됐다고 해서 그의 범죄 사실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국민의힘 선거 지원에 나선 그의 행보는 사회적 통합과 화합에 기여하기는커녕 지역주의를 자극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다. 국민의힘에선 벌써부터 "박 전 대통령 탄핵이 정당했는지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망언이 나왔다. '윤어게인'에 이어 '박어게인'을 꿈꾼다는 말이 괜한 게 아니다. 박 전 대통령이나 국민의힘이나 무슨 낯으로 주권자들에게 표를 달라고 호소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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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전 주필. 1987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사회부장, 편집국장, 수석논설위원, 주필을 역임했습니다. 만 35년 간의 기자 생활을 마치고 2022년 12월 퇴사했습니다. 오랜 기자 경험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우리 사회 현안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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