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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대, '서면주의'에 발목 잡혔다

이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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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대 대법원장이 법왜곡 혐의 1호 대상으로 고발됨에 따라 실제 처벌이 가능할 지에 관심이 쏠립니다. 고발장을 각각 접수받은 경찰과 공수처는 조만간 수사 관할권을 판단한 뒤 본격적인 수사에 나설 것으로 관측됩니다. 법조계에서는 수사 기관의 적극적 의지 여부와 법원의 압수수색 영장 발부 비협조, 소급 적용 논란 등 현실적 난관은 많지만 법리만 따져볼 때는 충분히 해볼 만하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수사 상황에 따라서는 현직 대법원장이 피고발인 신분으로 수사 기관의 포토라인에 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사법부 전체에 미치는 영향도 상당할 것으로 보입니다.

조 대법원장이 고발된 혐의는 '서면주의' 원칙 위배입니다. 서면주의는 소송에서 변론과 증거조사 등 모든 절차를 서면으로 진행한다는 원칙으로 대법원 판례로 형성돼 있습니다. 고발인인 이병철 변호사는 대법원이 지난해 4월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상고심을 진행하면서 서면주의 원칙을 적용하지 않은 채 종이 기록에 따른 기록 검토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행위는 '법관이 타인의 권익을 해할 목적으로 법령을 의도적으로 적용하지 않은 경우'로 규정된 형법상 법왜곡 혐의에 해당된다는 게 이 변호사의 고발 취지입니다.

그간 대법원은 서면주의를 엄격하게 고수했습니다. 법원의 심판 대상을 명확히 하고 피고인의 방어권을 충분히 보장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댔지만 디지털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퇴행적 행태라는 비판이 많았습니다. 대표적 사례가 2017년 대법원의 전자문서 증거 불인정 판결입니다. 당시 대법원은 개인정보 14억 건을 불법 유통한 사건에서 검찰이 공소사실을 엑셀파일로 작성해 제출하자 이를 인정하지 않고 파기환송 결정을 내렸습니다. 대법원은 "공소사실을 전자문서 형태로 작성한 후 종이문서로 출력하지 않은 것은 허용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 때문에 검찰이 대형 사건에서 수십만 장의 공소장을 트럭에 실어 법원에 보내는 일도 빚어졌습니다.

대법원의 이런 전근대적 행태가 논란이 되자 이른바 '형사절차 전자문서법'이 제정돼 지난해 12월부터 시행에 들어갔습니다. 수사와 기소, 공판까지 모든 형사사건에서 종이기록이 아니라 전자기록이 표준으로 바뀌게 됐습니다. 문제는 이재명 대선 후보의 파기 환송 판결이 내려질 당시엔, 이 법이 적용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만약 대법원이 판결 당시 서면으로 사건 기록을 심사하지 않았다면 불법 논란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대법원이 그토록 고집하던 서면주의가 스스로의 발목을 잡는 상황이 펼쳐질 수 있습니다.

이재명 후보 사건에서 대법원의 서면주의 위배는 2025년 국정감사에서도 논란이 됐습니다. 당시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전자문서 형태로 기록을 읽고 판결했다면 그 자체로 불법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천대엽 당시 법원행정처장은 처음엔 스캔본으로 봐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가, 법적 효력은 종이기록에만 있다고 말하는 등 오락가락했습니다. 더 큰 논란은 당시 두 명의 대법관이 해외출장 중이었는데 "출장중에도 자료를 받아 검토했다"는 답변이었습니다. 파일 형태로 기록을 검토했다고 시인한 셈입니다.

대법원의 이재명 파기환송 판결 당시 가장 큰 의문은 대법관들이 불과 며칠 만에 6만쪽에 이르는 기록을 읽을 수 있느냐는 점이었습니다. 방대한 기록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미리 짜여진 결론을 서둘러 냈다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만약 전자문서를 통해 기록을 심의했다면 서면주의를 위반한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졸속 심리로 정치적 판결을 했다는 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조 대법원장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가 이번 법왜곡죄 수사를 통해 명확히 규명돼야 합니다.

일각에선 법왜곡죄가 '형사불소급의 원칙'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애초 조 대법원장 수사가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현재 고발장을 접수한 경찰과 공수처에서도 이 부분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집니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당시 판결이 끝난 게 아니라 현재 서울고법에 계류된 상태여서 소급적용이 가능하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습니다. 법익 침해가 계속되는 동안에는 범죄 행위가 종료되지 않고 계속된다는 형법상 '계속범'에 해당한다는 주장입니다. 어느 경우든 유력 대선 후보의 피선거권을 박탈할 정도의 중대한 판결 과정에서 절차상 하자가 있었다면 경위를 명백히 밝히는 게 합당해 보입니다.

[정동칼럼] 왕사남과 흔들리는 사법 신뢰

영화 '왕과 함께 사는 남자'가 천만 영화로 등극한 것은 지금의 시대정신을 투영했기 때문이라는 평이 많습니다. 류영재 의정부지법 남양주지원 판사는 최근 사법개혁 3법 입법 과정에서 사법부가 시대정신을 읽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지적합니다. 법원이 현재의 사법불신을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재판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면 큰 착각이라는 주장입니다. 👉 칼럼 보기

[세계의 창] 폭정의 시대

미국의 이란 공격에 대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반응이 일본 안팎에서 논란입니다. 야마구치 지로 일본 호세이대 교수는 이번 공격은 국제법을 무시한 채 부당하게 폭력을 행사한 것인데 다카이치 총리는 걸프 국가들을 공격한 이란의 행위만 비난했다고 지적합니다. 그가 이달 미일 정상회담을 할 때 트럼프 대통령 요구에 따라 자위대 중동 파견을 약속할 지 우려된다고 말합니다. 👉 칼럼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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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한국일보 전 주필. 1987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사회부장, 편집국장, 수석논설위원, 주필을 역임했습니다. 만 35년 간의 기자 생활을 마치고 2022년 12월 퇴사했습니다. 오랜 기자 경험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우리 사회 현안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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