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훈 낙마, 끝난 게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각종 논란에 휩싸인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의 지명을 25일 철회했지만, 이번 사태가 남긴 후유증이 적지 않습니다. 의혹을 걸러내지 못한 청와대의 허술한 검증 시스템과 형식적인 국회의원 공천 기준, 관행처럼 돼버린 자료 제출 거부 등 숱한 과제가 불거졌습니다. 수십억원대 아파트 부정 청약을 잡아내지 못한 국토부의 '직무 유기'와 석연찮은 연세대 특별전형도 규명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무엇보다 보수, 진보를 가리지 않고 인재풀을 넓히려는 노력은 지속하되, 엄격하고 세밀한 검증으로 국민 눈높이에 부합하는 인사를 선발해야 한다는 지적이 시민사회에서 나옵니다.
낙마한 이 후보자에게 제기된 의혹 가운데 가장 심각한 건 막판에 돌출된 장남 대입 논란입니다. 당초 이 후보자는 2010년 장남이 연세대에 입학한 것과 관련, 다자녀 전형이라고 했다가 사회기여자 전형으로 말을 바꿨습니다. 내무부 장관을 지낸 할아버지가 받은 훈장이 이 전형 기준에 해당했다고 해명한 건데, 전형 요강에는 가족이 받은 훈장이 특별전형 자격조건이라는 내용이 제시돼 있지 않다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당시 아버지가 장남이 입학한 경제학부의 교수이자, 교무처 부처장으로 재직 중이었다는 점에서 부정입학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이 후보자의 서울 서초구 아파트 부정 청약 의혹은 당국의 아파트 청약 시스템에 근본적인 허점이 드러났다는 점에서 제도 보완이 시급합니다. 이 후보자가 장남이 결혼하지 않은 것처럼 속여 부당하게 부풀린 가점으로 당첨됐다는 게 논란의 핵심인데, 국토교통부는 전수조사를 하고서도 이를 적발하지 못했습니다. 국토부는 그간 '위장 미혼'을 부정 청약 유형으로 분류해온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게다가 국토부는 부정 청약 정황이 확인되면 곧바로 경찰에 수사 의뢰하는 게 그간 해온 관행인데도 이 후보자의 경우는 뒷짐을 지고 있어 눈치보기라는 비판도 나왔습니다. 국토부는 23일 이 후보자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서야 "부정 청약 소지가 있다"고 시인했습니다.
더 큰 논란은 실정법 위반 가능성이 큰 이런 문제가 왜 청와대의 검증 과정에서 걸러지지 않았느냐는 점입니다. 이 대통령은 지난 21일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그분이 보좌관에게 갑질했는지 안 했는지 우리가 어떻게 아느냐"며 검증의 어려움을 호소했지만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이 후보자의 보좌관 갑질은 이미 여의도에서 파다했던 사실이었을뿐 아니라, 아파트 부정 청약과 영종도 투기 의혹, 아들들의 병역 특혜 등은 검증 소홀 논란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이재명 정부가 신설한 국회예산처는 한해 700조원이 넘는 예산을 편성운용하는 핵심 부처로 이 후보자가 그 수장을 맡을 자질과 도덕성을 갖췄는지 철저히 검증했어야 마땅합니다.
이번 사태로 국회의원 공천 과정에서 검증이 통과의례에 불과했다는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이 후보자가 2020년 총선 낙선으로 4선에 실패하기 전까지 3선 의원을 할 수 있게 공천해준 건 국민의힘의 전신인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이었습니다. 현재 제기된 의혹의 상당수는 당시 일어난 일입니다. 정치인이 장관에 지명되면 물밑에 가라앉아 있던 의원 재직 중 의혹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공천은 물론 의원 재직 중에 당과 국회 차원의 공직윤리 감시 체계가 제대로 작동될 수 있도록 정치권의 노력이 절실합니다.
이 후보자 거취 문제가 오랜 끈 것은 해묵은 청문회 자료 제출 논란 때문입니다. 이 후보자는 의혹들이 잇따르는데도 국회의 자료 제출 요구를 뭉개려 해 청문회가 무산될 위기에 놓이기도 했습니다. 언제부턴가 인사청문 대상자가 야당이 요구하는 자료 제출을 거부하는 사례가 너무 잦아 사실상 '뉴노멀'이 됐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입니다. 청문회 당일 야당의 공세만 견뎌내면 청문보고서 채택과 무관하게 대통령 임명이 가능하다는 안이한 인식에서입니다. 더 이상 이런 무책임한 태도를 정부와 여당이 용납해선 안된다는 게 정치권의 시각입니다.
이 후보자 지명 때부터 12·3 내란 옹호 전력 인물을 내란 극복과 청산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짊어진 이재명 정부의 핵심 직책에 기용하는 게 맞느냐는 논란이 적지 않았습니다. 물론 진영을 가리지 않으려는 '탕평 인사'의 취지는 평가받아야 하지만, 그러려면 한층 뛰어난 능력과 도덕성을 보이는 인물이었어야 합니다. 청와대도 강조했듯이 어떤 경우에도 '같은 편만 쓰지 않겠다'는 이 대통령의 인사 원칙이 지켜지려면 사전에 충분한 검증을 통해 최소한의 원칙에 맞는 인물을 발탁해야 한다는 게 다수 국민의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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