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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후쿠시마 시찰단, 대통령에게 '노'라고 말하라

이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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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분 걸림 -

후쿠시마 시찰단의 5박6일 일정을 지켜보면서 드는 생각은 굳이 일본에 간 이유가 뭐냐는 것이다. 시찰단장은 "보려고 했던 장비를 다봤다"며 목표를 달성한 듯 말했지만 그저 육안으로 장비가 잘 작동하는지 지켜봤다는 말에 불과하다. '보고 살핀다'는 시찰의 사전적 의미로만 따진다면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다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거꾸로 정부가 언급한 '과학적 검증'과는 거리가 멀다는 걸 실토한 셈이다.

애초 한계가 분명할 수밖에 없는 시찰단이 만들어진 책임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있다. 스가 요시히데 전 일본 총리는 최근 "지난 3월 일본을 방문한 윤 대통령을 면담한 자리에서 오염수 시찰단 파견을 제안했다"고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공개했다. 당시 일본 언론에는 윤 대통령이 스가 전 총리를 접견하면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출과 관련해 시간이 걸려도 한국 국민의 이해를 구하겠다고 말했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그리고 지난 5일 서울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후쿠시마 시찰단 합의가 발표됐다.  

조각을 맞춰보면 시찰단이 어떤 배경에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얼개가 그려진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적극적인 스가 전 총리가 한국의 양해를 얻기 위해 일본 정부를 대신해 시찰단을 제안했고, 이에 동조한 윤 대통령이 시찰단을 보내 국민의 동의를 이끌어내려 했다는 그림이다. 한국 정부가 시료를 직접 채취해 안전성을 검증한다는 생각 자체가 윤 대통령에겐 없었던 것 같다. 원전 오염수가 미칠 한국민의 건강과 안전에는 아예 무관심했던 게 아닌가.

윤 대통령은 처음부터 솔직하지 않았다. 스가 전 총리 제안을 받은 사실도, 그 제안이 검증이 아닌 단순한 '설명회'에 불과하다는 것도 말하지 않았다. 양국 정상이 시찰단 합의를 발표한 기자회견에서 윤 대통령은 "과학에 기반한 객관적 검증이 이뤄져야 한다는 우리 국민의 요구를 고려한 조치"라고 밝혔다. 하지만 기시다 총리는 회견에서 "일본은 과학적 근거에 바탕을 둔 성의 있는 설명을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검증'이라고 했지만 기시다 총리는 '설명'이라고 했다. 그런데 결과는 일본 주장대로 '설명회'였다.    

예상대로 '빈 손'으로 돌아온 후쿠시마 시찰단
윤 대통령이 스가 전 총리 제안 받아들인 게 화근
일본 다음수는 한국 수산물 수입 규제 해제 요구
대통령∙여당, 일본 들러리 말고 국민 우려 들어야

일본의 계산은 윤 대통령의 단순함 그 너머를 보고 있었다. 시찰단이 도착하기 무섭게 일본의 각료는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제한 해제를 언급했다. 시찰단 방문으로 오염수 방류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한국이 취해온 수산물 수입중지 해제를 적극 요구하겠다는 속내를 노골화한 것이다. 정부는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은 없다"는 입장이지만 일본이 세계무역기구(WTO)에 다시 제소하면 버텨낼 명분이 있을지 의문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인간에 미칠 영향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최종보고서가 임박했지만 원자력 관련 전문가와 과학자들조차 검증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지금 당장은 문제가 없다 하더라도 일본이 계획하는 30년에 걸친 오염수 방류의 결과는 예측이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 끝없는 오염수 방출이 방사능 폐수의 퇴적으로 이어지고, 다시 해양생태계에 축적될 위험에 대해선 아무리 비관적으로 봐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시찰단이 '빈손'으로 돌아왔다고 해서 아직 판이 끝난 것은 아니다. 이번 시찰에서 검증의 한계를 분명하게 밝히고 일본에 문제를 제기하면 된다. 유국희 시찰단장도 "이번 시찰로 일본 정부의 오염수 방류에 대한 정부의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내세운 '한일 관계 결단' 같은 정치 논리에 흔들리지 말고, 아닌 것은 단호하게 '노'라고 얘기해야 한다.

국제법 전문가들은 일본이 한국에 상황평가와 예측에 필요한 정보와 자료를 지속적으로 제공할 의무(조기통지협약)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그게 아니더라도 일본과 가장 인접한 국가로서 독자적인 안전성 평가에 필요한 시료 채취와 자료 수집은 당연한 권리다. 시찰단은 일본 정부에 추가 자료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일본이 한국의 독자적 검증이 가능한 수준의 자료를 제공할 때까지 결론을 유보하는 게 옳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대통령과 여당이 일본의 들러리를 서는 행태를 멈추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오염수 방류에 대한 국민의 당연한 우려를 '반일몰이' '괴담'이라고 몰아붙이고 있다. "원전 오염수 처리수는 하루 10리터씩 마셔도 안전하다"는 극단적인 전문가를 국민의힘에서 초청한 것이야말로 괴담이다. 현 정권은 4년 후면 끝나지만 잘못된 결정의 피해는 오랫동안 모든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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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한국일보 전 주필. 1987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사회부장, 편집국장, 수석논설위원, 주필을 역임했습니다. 만 35년 간의 기자 생활을 마치고 2022년 12월 퇴사했습니다. 오랜 기자 경험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우리 사회 현안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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