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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의 선택적인 '국민 눈높이'

이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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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는 '국민 눈높이'가 자의적이고 선택적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한 대표가 여당 비대위원장 때부터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 등 민감한 현안에 자주 '국민 눈높이'를 언급했지만 구체성이 결여돼있고 후속 대응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정치권에선 한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 차별화라는 정략적 의도로 '국민 눈높이'라는 말을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합니다. 전문가들은 '눈높이'는 어떤 상황이나 사물을 판단하는 수준을 뜻하는 말인데, '국민'이란 말과 결합되면 정치적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는 견해를 나타냅니다.  

한 대표는 취임 뒤 처음 주재한 25일 최고위원회의에서도 '국민 눈높이'를 여러 차례 언급했습니다. "민심과 한편이 돼 당이 국민 눈높이에 맞춰 더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했고, 국민의힘의 '3대 변화 방향'중 하나로 '국민 눈높이에 맞는 정당'을 제시했습니다. 한 대표는 앞서 당 대표 선출 뒤 언론들과 문답에선 검찰의 김 여사 조사와 관련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국민 눈높이'라는 단어가 한 대표의 상징어가 된 양상입니다.

하지만 한 대표의 '국민 눈높이'는 모호할 뿐 아니라 편의적이라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김 여사 명품백 의혹만 해도 한 대표는 검찰의 조사 방식이 '국민 눈높이'에 미치지 못했다고 했지만 구체적으로 뭐가 어떻게 문제가 있다는 건지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영부인이 결단해 직접 대면조사가 이뤄졌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덧붙였습니다. 김 여사가 일방적으로 조사 장소를 대통령실 경호처 관할 장소로 택한 건 잘했다는 건지 아리송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 대표는 비대위원장 시절에도 명품백 의혹에 대해 수시로 말을 바꿨습니다. 처음엔 '저열한 몰카공작'이라고 분개하다가 '국민 눈높이에서 걱정할만한 사안'으로 뒤집었습니다. '국민 눈높이'에서 본다면 명품백 논란은 당연히 진실 규명이 필요하고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할 사안입니다. 그러나 한 대표는 진실 규명보다는 적당한 선긋기에 그친다는 인상이 짙습니다. 특히 명품백보다 사안이 중대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규명을 위한 특검법은 '악법'이라고 규정한 것을 보면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입장을 정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정국 최대 현안인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한 한 대표의 미묘한 입장 변화는 '국민 눈높이'의 진정성을 의심케 합니다. 한 대표가 '제 3자 추천 특검법'을 제시한 명분은 '민심을 거스를 수 없다'는 취지였습니다. 전당대회 내내 이런 입장을 고수했고, 당 대표 선출 후에도 '제 입장은 달라진 게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실제 기류는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한 대표 본인부터 법안 발의에 소극적인데다 측근들은 아예 없던 일로 치부하는 분위깁니다. 당 내부의 거센 반발을 의식한 전략적 후퇴라고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습니다.

한 대표의 '국민 눈높이'가 자의적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또다른 사례는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문제입니다. 한 대표는 민생에서 가장 시급한 정책으로 금투세 폐지를 언급하면서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했습니다. 금투세 내년 시행에 찬성 34.6%, 반대 43.2%를 들면서 '국민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이처럼 여론조사 결과를 '국민 눈높이'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찬성 여론이 높은 '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특검법', 심지어 '한동훈 특검법'도 통과시키는 게 옳다는 모순에 부닥치게 됩니다.  

집권여당 대표의 말의 무게감은 그 어떤 정치인보다 큽니다. '국민 눈높이'라는 한 마디로 난마처럼 얽힌 현안을 풀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만저만한 착각이 아닙니다.  '정치인 한동훈'의 이미지에 타격이 불가피할 뿐 아니라, 유력 정치 지도자의 자질과 신뢰에도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국민 다수는 한 대표가 책임 있게 발언하고, 실행할 수 있는 정치인인지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시선] '재난의 치안화' 시행령 정치

정부가 노조 쟁위행위를 '사회재난'에 신설해 논란입니다.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은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이 국무회의 의결로 가능한 시행령 수준에서 부정된 것은 터무니없다고 말합니다. 한쪽에선 재난에 대한 정부 책임을 묻는 발언에 '재난의 정쟁화'라며 부정하고, 다른 한쪽에선 노동자 파업을 '재난'으로 통제하고 있다는 비판입니다. 👉 칼럼 보기

[양성희의 시시각각] '뒷것' 김민기

문화계의 큰 별 김민기의 죽음이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합니다.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는 김민기는 모두가 세상의 중심을 탐할 때 무대 뒤 낮은 자리를 고수한 큰 스승이었다고 회고합니다. 스스로 충분히 빛나는 사람이고 어쩌면 세상의 중심에서 더 많은 권력과 영광을 누릴 수 있었지만, 극구 무대 뒤에서 낮은 자리를 고집했던 사람이라는 겁니다. 👉 칼럼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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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전 주필. 1987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사회부장, 편집국장, 수석논설위원, 주필을 역임했습니다. 만 35년 간의 기자 생활을 마치고 2022년 12월 퇴사했습니다. 오랜 기자 경험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우리 사회 현안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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