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윤 대통령, '이동관 후폭풍' 감당할 수 있나
윤석열 대통령이 결국 이동관 대외협력특보를 신임 방송통신위원장에 지명할 모양이다. 근 한 달가량 내정설을 띄워놓고 여론을 살폈는데 별 문제가 없었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이 특보 아들의 학교폭력 의혹이나 과거 이명박 정부에서의 '방송 장악' 논란은 귓등으로 들었다는 얘기다. 보수 진영에서조차 제기되는 우려를 무시하고도 민심을 살폈다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지금 윤 대통령 머릿 속은 어떻게하면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으로 가득차 보인다. 그 중 하나가 방송 길들이기다. 자신의 지지율이 낮은 것은 지상파의 기울어진 운동장이 원인이니, 이를 바로잡으면 지지율도 오르고 총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확고해 보인다. 이런 막중한 임무를 수행할 사람은 이동관밖에 없다고 윤 대통령은 진작 마음을 굳힌 것 같다.
임기 두 달 남은 방통위원장을 쫓아내고 이 특보를 서둘러 임명하려는 것도 총선을 겨냥한 포석일 것이다. 총선을 D데이로 놓고, 그 전에 공영방송 경영진 교체와 좌파 패널 교체 등 산적한 과제를 처리하려면 시간이 빠듯하다고 판단하지 않았을까. 방송 장악이라는 목표를 정해놓고 인물과 일정까지 정교하게 짠 시나리오를 보는 듯하다. 몸에 맞는 옷을 입는 게 아니라 마음에 드는 옷을 정해놓고 신체를 욱여넣는 격이다.
당사자도 이런 속내를 숨기지 않는다. 이 특보가 최근 아들 학폭과 관련해 낸 입장문은 섬뜩하다. 그는 의혹을 보도한 언론 가운데 유독 MBC를 콕 집어 "실체가 불분명한 이른바 '진술서'를 어떤 동의 과정도 없이 공영방송에서 보도한 무책임한 행태를 개탄하며 방송의 자정능력 제고가 시급한 것을 절감하는 계기였다"고 말했다. 자신이 방통위원장이 되면 '날리면-바이든' 파문을 빚은 MBC를 가만두지 않겠다는 겁박을 노골화한 셈이다.
오로지 총선 앞두고 공영방송 길들이려는 생각뿐
尹의 '오기 인사' 국정 운영에 심각한 후유증 초래
언론자유 후퇴, 민주주의 퇴행 어떻게 책임질 건가
방송을 손볼 적임자로 이 특보 낙점을 결심한 윤 대통령에게 국회 인사청문회는 요식절차에 불과하다. 지난 1년 동안 10여 명의 고위공직자를 인사청문보고서 없이 임명했으니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다. 이 특보 아들 학폭과 관련한 새로운 의혹이 쏟아져도 소 귀에 경읽기 일 것이다. 이미 여당에선 학교폭력이 아니라 '동급생 간 다툼'이라고 프레임을 전환했다. 엄연한 사실을 정치적 공방으로 물타기해 본질을 흐리는 수법은 여권의 단골 메뉴다.
자신이 점찍은 인물은 어떤 논란에도 시키고야 마는 윤 대통령의 '오기 인사'는 정평이 나 있다. 지난해 1기 내각 구성 때 여론의 질타로 낙마한 인사들 대부분이 검증 과정에서 문제가 됐는데도 윤 대통령이 밀어붙였다는 얘기가 파다했다. 문제가 된 사안들이 검증에서 확인돼 보고까지 이뤄졌지만 최종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괜찮다고 했다는 것이다. 현 정부 인사 정책의 가장 큰 문제가 윤 대통령의 인사 고집이라는 비판이 내부에서도 나온다.
윤 대통령의 마음대로 인사는 심각한 후유증을 낳고 있다. 새 대법관 임명과 관련해 정치적 성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임명 거부를 시사해 당초 거론되던 인사들이 제외된 것은 사법부 독립성과 삼권분립을 훼손한 위헌 행위다. 윤 대통령의 오른팔로 불리는 이상민 행안부 장관도 각종 논란에도 임명시키더니 결국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을 낳았다. 그런데도 끝끝내 자리를 보전해주려다 헌정사상 첫 국무위원 탄핵 소추라는 오명을 안겼다.
이 특보 임명이 가져올 후폭풍도 예상하기 어렵지 않다. 14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공개된 이명박 정부 '언론장악 문건'은 조만간 방송가에서 벌어질 사태의 예고편 같다. 문건에는 당시 지방선거를 앞두고 각 방송사 내부 동향을 파악해 블랙리스트를 작성, 비판적 언론인을 배제하는 구체적 실행 계획이 담겨 있다. 이 문건은 홍보수석실 요청으로 국정원이 생산했는데, 당시 홍보수석이 이 특보였다. 내년 4월 총선 때 이런 장면이 재연되지 말란 법이 없다.
이 특보가 '대통령의 입'이자 핵심 참모로 일했던 이명박 정부에서 한국의 언론자유 지수는 날개없이 추락했다. 수많은 언론인이 해직되거나 기소됐고, 다른 작업장으로 유배됐다. 한국 언론의 흑역사로 기록된 시기다. 윤 대통령은 이제 그 암흑의 역사를 다시 쓰겠다고 한다. 조연은 칼을 한 번 휘둘러 봤던 이 특보에게 맡기려 한다. 언론 자유 후퇴와 민주주의 퇴행의 후과를 어떻게 감당하려 하는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