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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듣지도 않았다

이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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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29일 영수회담이 사실상 '빈손'으로 끝나면서 윤 대통령의 협치 의지에 의문이 제기됩니다. 정치적 궁지에 몰려 불가피하게 영수회담을 제안했지만 애초 협치할 마음이 없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대통령이 그동안 안 만나던 야당 대표와도 만나 소통에 애를 쓴다는 걸 보여주려는 정치적 의도였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영수회담을 대하는 윤 대통령의 무성의한 자세는 의전에서부터 드러납니다. 이전 정부에서 영수회담이 열리면 거의 예외없이 대통령이 1층 현관 앞에까지 마중나오는 게 관례였습니다. 하지만 이날 회담에서 윤 대통령은 2층 대통령실에서 이 대표를 맞았습니다. 회담 테이블도 영수회담을 하기에는 협소해 보였습니다. 처음부터 윤 대통령이 이 대표를 예우를 할 생각이 없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됩니다. 당초 영수회담을 만찬이나 오찬보다 격이 낮은 '차담회'를 갖자고 한 것도 대통령실이었습니다.  

윤 대통령의 태도와 자세에서 변화가 없다는 것은 그의 발언 행태에서도 확인됩니다. 윤 대통령은 회담이 비공개로 전환된 후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이 대표 요구 거부 이유를 설명하는데 할애했습니다. 민생회복지원금과 이태원 참사 특별법 등 몇 가지 주제에 대해서만 장황하게 답변을 이어갔습니다. 이런 태도는 윤 대통령의 총선 참패 국무회의 모두발언과 그에 앞선 의정갈등 대국민담화에서도 여실히 나타났습니다. 야권에선 '59분 대통령'의 모습이 영수회담에서도 재연됐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윤 대통령은 곤란한 질문에 대해서는 아예 답변을 피했습니다. 이 대표가 모두발언에서 제안한 의제만 12개에 달했지만 윤 대통령은 선별적으로 답했습니다. 민감한 주제인 김건희 여사 특검법, 해병대 채 상병 특검법, 국정기조 전환 등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입에 올리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실은 의료개혁 필요성에 이 대표가 공감했다고 했지만 민주당의 방침이 의대증원 불가피였던 터라 실제론 아무런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셈입니다.  

이번 회담은 대통령 지지율 하락이 없었다면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란 분석이 많습니다. 당초 윤 대통령은 총선 참패에도 별다른 입장 발표가 없다 일주일 가까이 지나서야 대국민담화를 발표했습니다. 그것도 자신이 추진하는 정책의 정당성 강조에 비중을 둬 '억지 사과'라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그러던 중 윤 대통령 지지율이 20%대로 폭락하자 부랴부랴 영수회담 카드를 꺼냈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관측입니다.

윤 대통령이 회담에 진정성이 없다는 건 이미 사전 조율 과정에서 나타났습니다. 대통령실이 의제를 미리 정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난색을 표한 것은 민주당의 요구를 들어줄 생각이 없다는 얘기였습니다. 윤 대통령은 회담에 앞서 "얘기를 많이 듣겠다"고 여러차례 말했는데, 실제 듣는 시늉에 그쳤습니다. 대통령실이 연일 '민생' 키워드를 강조했던 것도 '특검' 등 국민적 의혹 관련 의제에 방어막을 치려는 속셈이었음이 드러났습니다.

대통령실의 이런 입장은 강경 보수층의 부정적 기류를 의식한 것이란 해석도 나옵니다. 보수층에선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회담을 제안한 데 대해 강한 거부감을 표출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 대표의 요구를 들어줄 경우 강성 지지층 이탈이 가속화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핵심 지지층인 TK지역에서의 지지율 급락을 우려스럽게 바라보는 용산으로선 이런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지지층은 챙겼을지 모르지만 민심과는 더 멀어졌습니다. 국민적 심판을 받고도 변하려 하지 않는 윤 대통령의 부정적 이미지만 강화됐습니다. 윤 대통령이 입만 열면 강조하는 '민생'도 당장의 곤경을 면하기 위한 '가짜 민생'이라는 점이 드러났습니다. 총선 민의에 대한 윤 대통령이 성찰 없이는 산적한 경제·민생 위기를 타개하기 어렵습니다. 윤 대통령 앞에는 무능과 무책임에 대한 더 혹독한 평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김희원 칼럼] 윤 대통령, 병역의무 청년들에 답하라

윤석열 대통령이 영수회담에서 '채 상병 특검법'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일보 김희원 뉴스스탠다드실장은 윤 대통령이 신성한 의무로 군복무를 수행하는 이 땅의 청년들에게 채 상병의 죽음을 끝까지 규명하고 잘못에 책임지겠다고 말해야 했다고 지적합니다. 이토록 일을 키운 게 윤 대통령이니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겁니다. 👉 칼럼 보기

[오늘과 내일] 법률수석이 민정수석처럼 안 되려면

대통령실에 법률수석 신설이 추진 중이어서 논란입니다. 동아일보 정원수 부국장은 민심 전달에 방점이 찍혀있다고 하지만 거론되는 면면을 보면 믿기 어렵다고 합니다. 대부분 대통령과 직간접적으로 인연이 있는 고검장과 검사장 출신 고위 전관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법률수석의 유일한 생존법은 대통령에게 직언을 줄기차게 하는 것 외에는 없다고 단언합니다. 👉 칼럼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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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전 주필. 1987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사회부장, 편집국장, 수석논설위원, 주필을 역임했습니다. 만 35년 간의 기자 생활을 마치고 2022년 12월 퇴사했습니다. 오랜 기자 경험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우리 사회 현안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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