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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피습당했어도 그리 수사했겠나

이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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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분 걸림 -

경찰이 10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피습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했지만 반쪽짜리 수사라는 논란이 거셉니다. 당적을 공개하지 않은데다 신상공개 등 피의자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밝히지 않아 범행에 이르게 된 과정과 동기가 불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공범 여부와 범행 자금 등 수사할 게 많은데도 서둘러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한 것도 의문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경찰이 정치적인 고려로 수사를 축소∙은폐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경찰은 피의자 김모씨의 범행 동기에 대해 "주관적인 정치적 신념으로 극단적인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혔습니다. 김씨가 남긴 '변명문'에는 "이 대표가 대통령이 되고 나라가 좌파세력에 넘어갈 것을 저지하려 했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겼다"고도 했습니다. 발표대로라면 비뚤어진 극우 이념에 사로잡힌 명백한 정치 테러입니다. 하지만 경찰은 김씨가 왜곡된 정치적 신념을 갖게 된 과정과 배경은 밝히지 않았습니다.

전문가들은 김씨의 범행 동기를 제대로 규명하려면 당적은 절대적 요건이라고 주장합니다. 범인의 정치적 성향과 당내 활동, 극우 집회 참석 여부 등이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데 필요하다는 얘깁니다. 그런데도 경찰은 정당법에 규정된 누설금지 조항을 근거로 당적을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전문가들 다수는 현행법과 관계없이 여야가 동의한다면 공익적 목적의 당적 공개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경찰은 이미 당적을 파악하겠다며 국민의힘과 민주당에 대해 압수수색까지 마쳤습니다.  

경찰 안팎에선 사건 초기부터 김씨가 오랜 기간 국민의힘 계열 정당 당원이었지만 이 대표를 공격하기 위해 최근 민주당에 입당했다는 얘기가 퍼졌습니다. 태극기 집회에도 자주 참석했고 극우 성향의 유튜브에 빠져 있었다는 주변 인물들의 전언도 잇따랐습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 성향의 김씨가 이 대표를 살해하기 위해 민주당에 위장 입당했다는 추론을 가능케합니다.  

경찰이 김씨의 신상정보를 공개하지 않은 것도 의문입니다. 신상정보공개위원회에서 내린 결정이라면서도 이유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현행 법에 따르면 잔인성, 중대한 피해, 충분한 증거, 공공의 이익, 국민 알권리 등의 요건을 충족하면 얼굴, 성명, 나이 등 피의자 정보를 공개할 수 있도록 돼있습니다. 김씨의 경우는 범행 수법이나 피해 정도, 제1야당 대표 겨냥 등 요건을 대부분 충족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뉴욕타임스(NYT)가 김씨의 이름과 나이, 직업 등 신상정보를 공개해 경찰의 입장은 더욱 난처해졌습니다.

일각에선 경찰이 신상정보가 공개되면 김씨를 잘 아는 사람들이 그의 평소 행적과 언행, 정치적 성향 등에 대해 증언이 쏟아질 것을 우려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합니다. 그가 쓴 '변명문' 전문을 공개하지 않고 일부만 선택적으로 밝힌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입니다. 경찰의 이런 선택적 수사는 총선을 앞두고 여당에 불리한 내용을 축소하고 파장을 최소화하려는 의도로로밖에 보기 어렵습니다.

경찰이 사건 발생 일주일만에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하는 것에서도 의구심이 남습니다. 통상 중대 사건이 발생하면 수사기관은 어느 정도 진상 규명이 되면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수사가 완료되는 시점에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하는 게 관례입니다. 이번처럼 야당 대표를 살해하려 한 대형 사건에서 이처럼 짧은 시간에 수사를 끝내는 것은 매우 이례적입니다.

실제 경찰의 단독범 발표에도 김씨의 공범 여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경찰은 지난 7일 살인미수 방조 혐의로 70대 남성을 긴급체포했다가 가담 정도가 약하다는 이유로 석방했습니다. 이 남성은 김씨가 범행 전 자신의 범행 동기 등을 담은 '변명문'을 우편 발송키로 약속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김씨의 자금 출처에 대해서도 밝혀진 게 없습니다. 김씨는 지난해 6월이후 5차례 이대표 일정을 사전에 파악해 행사현장을 찾아갔다고 진술했습니다. 숙박비와 외식비 등을 고려하면 한 번 동행에만도 수십 만원이 소요됐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김씨는 자신이 운영하던 부동산사무실 월세도 여러 달 밀려있을만큼 자금난을 겪고 있었는데 범행관련 자금을 어떻게 마련했는지 의문이 해소되지 않고 있습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지난 8일 국회에서 "당적과 피의자가 쓴 '남기는 말' 두 가지는 범행 동기를 밝히는 데 핵심"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경찰은 수사 초기부터 선택적으로 수사 정보를 공개한다는 지적을 받아왔습니다. 경찰이 "모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사 결과를 내놓겠다고 했지만 의혹이 속시원하게 풀렸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피습됐어도 경찰이 이처럼 수사를 축소했을지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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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한국일보 전 주필. 1987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사회부장, 편집국장, 수석논설위원, 주필을 역임했습니다. 만 35년 간의 기자 생활을 마치고 2022년 12월 퇴사했습니다. 오랜 기자 경험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우리 사회 현안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