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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이 가장 무섭다

이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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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때 머릿속에 그렸던 국정은 지금 같은 모습은 아니었을 게다. 힘 있는 정책 추진과 속도감 있는 변화로 국민 다수가 정권 교체의 효능을 느끼는 장면을 상상했을 것이다. 반문(反文) 정서를 자양분 삼아 당선된 그로선 문재인 정부 정책 뒤집기가 최우선 과제였다. 시장주도, 친원전, 한미동맹 강화 등 주요 정책 방향을 전환했고, 노동ㆍ교육ㆍ연금 등 3대 개혁도 내놨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간과한 것이 있다. 여소야대라는 엄연한 현실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을 세우고 실행하려 해도 법을 바꾸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구슬이 서 말이면 뭐하나. 법을 대신해 시행령으로 우회하는 것도 한두 번이다. 윤 정부가 발의한 핵심 법안들이 국회에 기약 없이 묶여 있는 현실이 이를 보여준다.

이런 상황이 예상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윤 대통령 당선 직후부터 여당 원로들뿐 아니라 정치권 안팎의 인사들은 이구동성으로 협치를 강조했다. ‘협치’라는 게 그냥 듣기 좋은 말이 아니고 국정 운영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정치에 처음 발을 들인 윤 대통령은 이를 한 귀로 흘려들었다. 대통령 권력이 거대야당의 발목잡기쯤은 쉽게 누를 것이라 여긴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아직 최악의 상황은 오지 않았다. 내후년 총선이 더 문제다. 만약 여당이 과반을 얻지 못하면 윤 대통령은 내리막길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지금은 그래도 권력이 한창일 때라 여소야대의 불리함을 지탱하고 있지만 그때는 다르다. 박근혜 정부가 2016년 총선 패배 후 기울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국회 지형을 바꾸지 못한 윤 정부의 남은 3년의 모습이 어떠할지를 짐작하게 한다.

여당의 총선 전망은 먹구름이 가득하다. 국민의힘에선 일찌감치 총선 패배를 우려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오죽하면 수도권 의원들 중심으로 벌써부터 대통령 탈당 얘기가 나오겠나. 임기 중반 치러지는 총선은 대통령 지지율이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치는데 도움은커녕 악영향을 미칠 거라는 우려가 가득하다.

총선이든, 대선이든 선거 승패는 중도층이 좌우한다. 어차피 보수·진보 열성 지지층은 하늘이 두 쪽 나도 지지 정당을 보고 찍는다. 그렇지 않은 중도층과 무당파가 이른바 ‘스윙보터’로서 열쇠를 쥐고 있다. 결국 중원을 누가 확보하느냐가 관건인데, 여권은 지지층 결집에만 관심있는 모양새다. 여론조사에서 중도층의 대통령 지지율이 평균보다 낮은 수준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태원 참사’만 해도 그렇다. 중도층은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낸 국가적 참사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막말을 쏟아내는 주무 장관을 감싸고, 일선 경찰만 혼내는 대통령에게 지지를 보내지 않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윤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하던 공정과 상식은 언제부터인가 연설문에서 자취를 감췄다.

무엇보다 걱정되는 것은 윤 대통령의 독선적 태도다. 윤석열 개인의 인식과 스타일, 언행이 모든 국정의 중심에 있는 양상이 우려스러운 것이다. 대통령실을 직언은커녕 최소한의 소통도 이뤄지지 않는 조직으로 만들고, 여당을 민심보다는 대통령의 심기경호가 우선인 당으로 전락시킨 건 바로 윤 대통령이다. MBC 전용기 배제도 언론을 길들일 수 있다는 대통령의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됐다. 이제는 자신이 자랑하던 도어스테핑도 중단할 모양이다.

대통령이 되면 국정을 자신이 가장 잘 안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오만과 독선이 싹트기 마련이다. 미국 트루먼 대통령이 오로지 군인만 하다 대통령에 당선된 아이젠하워를 두고 했다는 말이 있다. “불쌍한 아이크, 이 자리에 앉아 이래라저래라 하고 명령을 내리겠지만 아무것도 되지 않을 거야.” 여전히 검사스러운 윤 대통령도 오만한 자세를 버리지 못하는 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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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한국일보 전 주필. 1987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사회부장, 편집국장, 수석논설위원, 주필을 역임했습니다. 만 35년 간의 기자 생활을 마치고 2022년 12월 퇴사했습니다. 오랜 기자 경험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우리 사회 현안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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