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누가 MB를 부활시켰나
지난달 특별사면으로 풀려난 이명박 전 대통령(MB)이 화려하게 부활했다. 국민의힘 당 대표 출마자들은 최근 잇달아 사저를 방문해 눈도장을 찍고 있다. 당권 주자들의 사저 예방은 MB가 여전히 보수 지지층에 영향력을 미치는 인물이라는 판단을 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MB에 대해 싸늘한 국민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다.
윤석열 대통령은 UAE 순방 직후 MB에게 전화를 걸었다. 투자 유치 등 순방외교 성과를 공유하고 중동외교와 관련한 관심과 역할도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선 MB의 중동 특사 역할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이 UAE와 인연이 깊기는 하지만 중대한 부패 혐의로 수감된 이력이 있는 이에게 외교사절을 맡긴다는 건 터무니 없다. 오히려 UAE에 결례가 되는 건 아닌가 싶다.
윤석열 정부의 모습에서 MB정부가 어른거린다는 지적은 취임 초부터 쏟아졌다. 실제 국정운영의 기조와 방향에서 유사점이 적지 않다. 철지난 신자유주의와 외교안보에서의 극단적 대결주의, 진영 논리 강화 등이 그렇다. 퇴행적이고 고루하다는 인상을 준다. 십수 년 전 실패한 정권을 답습한들 그 결과가 어떨지는 자명하다.
이런 양상은 윤 대통령 주변에 MB때 사람들이 다수 포진한 것과 무관치 않다. '정치 문외한'인 윤 대통령으로선 그들과 손잡을 필요가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MB계가 주축인 이른바 '윤핵관'은 보수 정치권에서도 거의 존재감이 없었던 이들이다. 경제와 외교분야 주축을 이루는 관료들도 MB정권 때 성과를 내지 못했던 인사들이다. 윤 대통령은 '일류 내각'이라고 자랑했지만 국민들도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의문이다.
유독 현 정부에 많은 경제통 대부분은 MB정부 경제관료다. 그래서인지 윤석열 정부의 경제 정책인 'Y노믹스'는 이명박 정부의 'MB노믹스'와 판박이다. 세금을 내리고 규제를 풀어 투자를 활성화한다는 내용 그대로다. 지금의 글로벌 환경이 경제 블록화, 공급망 충격, 기조적 인플레이션 등으로 크게 달라졌는데, 낡은 인물과 낡은 정책으로 대응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윤 대통령이 부처 업무보고에서 "국가는 소멸해도 시장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한 황당한 발언에서 시장만능주의자 MB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윤석열 정부 국정기조∙ 방향 MB 정부 모습 어른거려
색깔론과 사정정국 조성으로 보수 지지층 결집 의도
나쁜 역사 반복 않도록 권력 절제하고 민심 들어야
노골화된 권력기관 개혁 역주행은 MB정부에서의 색깔론을 연상시킨다. 국정원의 대대적인 간첩단 수사와 수사권 존치 시도는 당시 시민단체 불법사찰의 망령을 소환한다. 과거 국정원의 국내 정보 수집과 대공수사권은 민간인 감시와 국내 정치 공작에 악용된 핵심 권한이었다. 전직 국정원장들에 대한 단죄와 정치·사회적 합의로 마침표를 찍은 국정원 개혁을 되돌리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윤 대통령 집권 이후 검찰권 강화는 최근의 사정정국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 전 정권과 야당 대표를 겨냥한 수사가 일정 부분 정당성을 갖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검찰 조직 전체가 매달리다시피 하는 모습은 과도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로 보수를 결집시키고 지지율 추락을 버티려 한 MB정부와 무엇이 다른가. 권력기관 개혁 역행은 시대정신에 맞지 않을뿐더러 더 큰 부작용과 저항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윤 대통령과 MB는 성격과 태도에서도 닮은 점이 많다. 두 사람 모두 "내가 옳다"는 자기 확신이 강하다. 독단적, 독선적이라는 비판이 뒤따르는 게 당연하다. 2008년 광우병 사태는 MB가 "내가 미국에서 많이 먹어봐서 잘 안다"는 식의 독단적 결정이 화근이 됐다. 윤 대통령도 지지율 조사에서 부정적 평가 이유로 맨 먼저 꼽히는 게 '독단적이고 일방적'이라는 응답이다. 취임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예외가 없었다.
MB는 2007년 12월 대선 승리 직후 "5년이 금방 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괜히 폼 잡다가 망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윤 대통령도 후보 시절 문재인 정권을 향해 "대통령 임기 5년이 뭐가 대단하다고, 너무 겁이 없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5년이 짧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얘기다. MB의 초라한 모습에서 권력이 무한하지 않다는 것을 윤 대통령이 깨달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