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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은 왜 '빠루 사건'을 소환했나

이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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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분 걸림 -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 당 대표 선거 출마 선언을 앞두고 이른바 '빠루(쇠지렛대) 사건'을 소환해 관심이 쏠립니다. 나 의원은 17일 "우리 당이 '살아있는 야당'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던 계기가 바로 패스트트랙 투쟁 그리고 조국 사태 투쟁"이라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적었습니다.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시절 자신이 문재인 정권에 맞서 싸웠다는 점을 강조하며 당원과 보수층 지지를 호소하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하지만 당시 패스트트랙 충돌로 '동물 국회'를 만든 핵심 당사자가 이를 자랑스럽게 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정치권에서 나옵니다. 더구나 이 사건의 피의자로 기소돼 재판의 장기간 공전에 책임이 없지 않다는 점에서 논란이 제기됩니다.

일명 '빠루 사건'은 2019년 4월 더불어민주당이 주요 개혁법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려던 과정에서 자유한국당이 '육탄저지'에 나서면서 벌어졌습니다. 회의장 점거를 시도하던 한국당 의원들과 민주당 의원들 간에 폭행·감금 등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는데, 당시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가 이 과정에서 '빠루'를 집어드는 장면이 연출됐습니다. 나 대표는 "민주당 관계자가 문을 부수려고 하는 것을 뺏은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국민들에게는 국회의 폭력성과 후진성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장면으로 각인됐습니다.

당시 검찰은 국회선진화법 위반 혐의로 여야 국회의원과 보좌관 등 총 37명을 재판에 넘겼습니다. 한국당측 피고인은 황교안 전 대표와 나 전 원내대표 등 27명, 민주당측 피고인은 박범계 의원을 포함해 10명에 달합니다. 애초 법조계와 정치권에선 충돌 당시 상황이 담긴 폐쇄회로(CC)TV 등 다수의 증거물이 남아있어 혐의 규명이 어렵지 않을 거란 전망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패스트트랙 재판은 4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언제 결심(심리종결)이 될지 기약할 수도 없습니다.  

재판이 본격적으로 시작된이후 여야 의원들이 정치활동 등을 이유로 기일변경과 불출석을 반복하면서 일정이 수시로 지연됐기 때문입니다. 신청된 증인이 많아 공판 때마다 증인신문이 이뤄지는데다 영상자료의 증거 효력 등을 놓고도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어쨌든 나 의원을 비롯한 관련 여야 의원들은 22대 국회에서도 패스트트랙발(發) 사법리스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입니다. 재판 결과에 따라 의원직을 상실하고 향후 5년간은 피선거권을 박탈당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 의원이 정치권과 국회의 수치스러운 사건을 영예로운 일처럼 미화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나 의원은 17일에도 패스트트랙 재판에 출석하면서 "의회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한 몸부림조차 재판 받아야 하는 현실이 참담하지만 그럼에도 그때의 열정, 진심을 기억하기에 버틸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이 과연 의회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행동이었는지, 그리고 그것을 열정과 진심으로 포장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정치권에선 나 의원의 이런 언급이 전당대회 출마와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당 대표 당선이 유력한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을 견제하기 위해 자신이 '보수의 후예'라는 점을 당원과 지지층에 알리기 위해서라는 분석입니다. 여권에선 세가 부족한 나 의원이 친윤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한 전 위원장 대항마 역할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파다합니다. 나 의원은 항간의 '친윤지원설'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지만 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나 의원은 늘 권력에 저항하기보다는 고개를 숙여왔습니다. 이명박과 박근혜, 윤석열 정권에서 권력의 핵심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반대편에 서지도 않았습니다. 나 의원은 19일 "제가 지금껏 걸어온 정치에는 친(親)도 반(反)도 없었다. 저는 오직 '친국민, 친대한민국'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야당과 협치를 경시하고 윤석열 대통령과 거리두기도 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수렁에 빠진 국민의힘을 구하겠다는 건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해묵은 '빠루 사건' 소환으로 회의감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뉴스룸에서] 법률가의 말장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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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전 주필. 1987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사회부장, 편집국장, 수석논설위원, 주필을 역임했습니다. 만 35년 간의 기자 생활을 마치고 2022년 12월 퇴사했습니다. 오랜 기자 경험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우리 사회 현안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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