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윤석열 대통령, 왕이 되려는가
두 동강 난 광복절 기념식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의 심정은 어땠을까. 보수, 진보 가릴 것 없이 함께 기리는 광복절은 정부 행사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기념식을 대표하는 윤 대통령으로선 역대 어느 정부에서도 없었던 사태에 부끄러움을 느껴야 마땅하다. 모두가 하나돼 경축해야 할 광복절을 갈등과 분열로 퇴색시킨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뉴라이트 인사를 독립기념관장으로 임명해 사태를 촉발시킨 윤 대통령은 "건국절 논란이 먹고살기 힘든 국민들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라고 푸념했다. 윤 대통령의 유체이탈 화법이 더는 놀랍지도 않지만 건국절을 주장하는 사이비 학자를 독립기념관장에 앉혀 논란을 부른 당사자가 그런 말을 하는 건 자가당착이다. 독립기념관장이란 자리가 갖는 상징적 의미를 무시한 채 저지른 인사임을 자인하는 셈이다.
윤 대통령이 며칠 전 단행한 외교안보팀 인사는 모든 게 안갯속이다. 미국 대선 등 요동치는 국제정세로 외교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시점에 왜 군 출신 인사를 전면에 배치했는지, 채 상병 순직 사건 관련자를 왜 국방 책임자로 앉혔는지, 안보사령탑은 왜 자꾸 교체하는지 등 어느 것 하나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 한치의 공백없는 안보를 강조하면서 당분간 국방장관이 안보실장을 겸한다든지, 경호처장은 공석으로 놔두는 건 형용모순이다.
주요 공직에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가 반복되는 건 대통령의 인사권이 올바로 사용되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다. 능력과 자질이 아닌 대통령의 개인적 친분이나 정략적 의도가 개입됐다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시중에 떠도는 김건희 여사 인사 개입설도 단순한 소문이 아닐 개연성이 높다. 용산에서 '김건희 라인'으로 분류되는 인물의 공기업 사장행은 하나의 단초다. 이런 게 바로 인사권 남용이 아니면 뭔가.
사면권과 거부권 잇단 행사도 권력 남용
국민 위임한 대통령 권한 막 써도 되나
윤 대통령은 헌법에서 부여된 대통령이 쓸 수 있는 권한을 최대한으로 행사하고 있다. 대통령에게 주어진 과도한 권한으로 '제왕적 대통령제'란 비판이 많지만 윤 대통령에겐 소 귀에 경읽기다. 윤 대통령은 취임 2년 여만에 벌써 5차례 사면권을 행사했다. 주요 기념일마다 한 번도 거르지 않았다. 그 새 이명박∙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인사들이 죄다 풀려났다. '국민통합'을 하라고 준 권한을 온전히 '내 편 챙기기'에 이용한 것이다. 국민이 위임한 사면권을 이렇게 남용해도 되나.
거부권은 또 어떤가. 윤 대통령은 수일 내로 21번째 법안 거부권 행사를 예고했다. 이렇게 되면 이승만 대통령을 제외한 나머지 대통령이 행사한 것보다도 많다. 이승만의 경우도 재임 12년 동안 45차례니 윤 대통령은 이를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고 대안을 제시하거나 국회 다수의석을 점한 야당과 절충하는 시늉조차 하지 않는다. 국회 입법권을 무용지물로 만들고 삼권분립을 훼손한 권력 남용으로 규정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을 제왕적으로 만드는 건 헌법이나 법률을 통해 대통령에게 주어진 권한 자체라기보다는 그 권한의 오남용에 달려 있다. 검찰∙경찰 등 사정 권한의 남용과 인사권, 사면권, 거부권의 자의적 행사가 그것이다. 대통령의 명예훼손을 수사한다며 권력 감시 역할을 수행하는 언론을 무차별적으로 수사하는 것은 법이 허용한 대통령의 권한을 뛰어넘는 행위다. 절제돼야 할 거부권과 사면권 남용도 엄연한 헌법 가치 훼손이다.
지난 대선 TV토론에서 윤석열 후보의 손바닥에 '왕(王)'자가 그려져 있어 한바탕 논란이 됐다. 당시는 무속에 빠진 윤석열 부부의 돌출행동으로 여겨졌으나 지금와서 보니 진심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지 않고서는 윤 대통령의 기이한 통치행태를 설명할 수 없다. 윤 대통령은 정말 전제군주 시대의 제왕이 되려고 하는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