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윤석열, 배신당할 일만 남았다
예상 외로 쉽게 끝난 윤석열 체포에서 눈길을 끈 것 중 하나는 국민의힘 의원들의 태도다. 새벽부터 관저 앞에 모인 이들의 표정에는 결연함이 가득했지만 막상 행동은 달랐다. '시비가 안 생기게 뒷짐을 지고, 몸싸움도 욕도 하면 안 된다'는 판사 출신 김기현 의원의 가이드라인을 일사불란하게 따랐다. 자신들의 주군이 끌려가는 것을 막기보다는 자칫 경찰에 맞서다 현행범으로 체포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먼저였다.
관저 앞에서 윤석열을 지키겠다며 몇 날 며칠 밤을 지새우다시피 한 극렬 지지자들도 의외의 모습을 보였다. 윤석열 체포 직전 석동현 변호사가 극우 유튜버를 통해 "도와달라"고 호소했지만 별다른 호응은 없었다. 일부가 바닥에 누워 저항했지만 잠시뿐이었다. 경찰이 불상사를 우려해 병력 수천 명을 동원한 게 호들갑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마지막까지 기를 쓰고 버티던 윤석열이 결국 영장 집행에 응한 데는 경호처의 이반이 컸다. 경호처 간부들을 여러 차례 불러 밥을 먹이고 "총이 아니면 칼로라도 막으라"고 했지만 경호원들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윤석열이 공수처를 향하는 승용차 안에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아마 권력의 무상함이 아닐까. 끝까지 지켜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이들에 대한 실망감에 속이 쓰렸을 게다.
윤석열 체포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국면을 예고한다. 아무리 버티고 지연전략을 써도 구속과 기소, 대통령직 파면은 피할 수 없을 거라는 인식을 국민 다수가 갖게 됐다. 보수든 진보든, 강성 지지층이든 아니든 이를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을 도리가 없다.
가장 빠른 '현타'는 집권여당에서 감지될 것이다. 윤석열이 파면되면 닥칠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정권을 민주당에 빼앗기지 않는 게 목표인 국민의힘으로선 언제까지 윤석열을 신줏단지처럼 붙들고 있을 수 없는 노릇이다. 윤석열을 결사옹위하는 강성 지지층만으론 정권재창출이 불가능하다는 건 누구보다 그들이 잘 안다. '맹윤'이니 '찐윤'이니 하는 말은 눈녹듯 사라지고 너도나도 윤석열과 선을 그으려 할 게 뻔하다.
윤석열 파면시 지지층, 대선 후보로 눈 돌릴 것
구속되면 술, 유튜브 끊고 비극적 사태 반성하길
윤석열도 그랬다. 지금은 죽고 못살지만 '친윤계'가 만들어진 게 불과 2년 여 전이다. 윤석열이 유력 대선 주자로 떠오르자 권력을 좇아 구름같이 몰려들지 않았나. 윤석열의 안하무인적 행태를 몰라서 고개를 조아렸겠는가. 그들이 원하는 건 권력의 단맛이지 윤석열 개인이 아니다. 홍준표가 됐듯, 오세훈이 됐든 대선 승리 가능성만 있으면 그들은 만사제쳐놓고 달려갈 태세가 돼있다.
극우 진영의 윤석열 지지도 시한부다. 이 땅의 극우 보수세력이 지향하는 건 '반공'과 '친미'다. 이들은 이런 이데올로기를 충실히 이행할 권력자라면 누가됐든 강력한 지지와 애정을 발신한다. 감옥에 갇히고 대통령에서 쫓겨난 윤석열이 이 같은 요구를 충족시켜 줄 리가 만무하다. 잠깐은 윤석열의 호소에 응답하겠지만 헛껍데기임이 확인되면 머잖아 등을 돌릴 것이다.
윤석열은 정치와 권력의 생리를 너무도 몰랐다. 그에게는 대중을 이끌만한 사상도 이념도 비전도 없다. 대통령이 된 이후의 행적을 보면 그는 그저 맹렬한 '사익추구자'일 뿐이다. 윤석열은 체포직전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탄핵소추가 되고 보니 이제서야 제가 대통령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대통령으로서 권력을 휘두를줄만 알았지 국가 지도자로서 의무와 헌신, 책임감이 없었음을 자인한 셈이다.
윤석열은 수감되면 모처럼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된다. 술도 끊고 유튜브도 끊을 수 있을 것이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됐는지 깊이 생각할 좋은 기회다. 왜 헌정 사상 가장 짧은 기간에, 비극적인 사태를 맞게 됐는지 깨닫기 바란다. 세상을 원망하고, 누구를 탓할 필요도 없다. 아무리 안 좋은 일도 교훈을 얻을 수 있다면 나쁘기만 하지는 않은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