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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윤 대통령은 '오판'하고 있다

이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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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분 걸림 -

윤석열 대통령이 총선 불출마 대신 대표직 사퇴를 선택한 김기현 전 국민의힘 대표에게 격노한 것은 사실로 보인다. 김 대표를 '바지사장'으로 두고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앉혀 실권을 행사토록 하는 총선 구상이 엉클어져서일 것이다. 윤 대통령으로선 총선 승리를 향한 첫 스텝부터 꼬인 셈이다.

예기치 않는 난관에 부닥친 윤 대통령이 비상책으로 꺼낸 게 '한동훈 비대위원장' 카드다. 결심이 서는 것과 동시에 김기현 사퇴 후 난립하던 후보군은 일거에 한동훈 추대론으로 정리됐다. 당 전체가 원해서라는 그림을 만들기 위해 요 며칠간 요식적인 절차가 진행됐고, 한 장관은 마침내 비대위원장을 '수락'했다. 얼떨결의 조기등판이다.  

윤 대통령이 총선을 자신의 얼굴로 치르려면 공천권 장악이 우선이다. 얼마 전 공개된 대선후보 시절 통화 녹취록에서 윤 대통령이 "여차하면 뽀개버리겠다"고 말한 대상은 국민의힘 당뿐 아니라 의원들이다. 기득권에 찌든 이들을 도려내고 새 인물을 꽂으면 총선 승리는 따논 당상이라고 윤 대통령은 굳게 믿고 있을 것이다. 이런 일을 실행에 옮기기에는 가장 믿을만한 한동훈을 앉히는 게 최선이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

점점 죄어오는 윤 대통령 부부의 '사법 리스크'도 그에겐 골치거리다. 권력이 약해지면 굽신거리던 이들도 등을 돌리는게 정치의 비정함이다. 박근혜 탄핵 발의안에 수십 명의 여당 의원이 찬성했던 장면을 윤 대통령은 떠올렸을지 모른다. 이를 막아줄 사람은 검사 시절 형님, 동생하며 동고동락한 한동훈밖에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윤 대통령의 이런 기대를 한 전 장관은 저버리지 않았다. 비대위원장 수락 연설 같은 기자회견에서 그는 김건희 특검법은 '악법', 김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은 '몰카 공작'이라고 규정했다. 대놓고 김 여사의 호위무사를 자처한 셈이다. 여당 대표 될 사람이 여론은 무시하고 노골적으로 대통령 편을 든 것이다.  

한동훈 비대위원장 카드는 '도박'
대통령에 쓴소리 할 생각 없는 韓
尹 달라지지 않으면 두사람 다 공멸

당내에서 한동훈 비대위원장에 찬성한 이들은 "대통령과 가깝기 때문에 더 쓴소리를 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하지만 한 전 장관의 발언은 이런 기대가 부질없다는 걸 여실히 보여줬다. 윤 대통령과의 '차별화'는 수십 년을 상하관계에서 살아온 한동훈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단어다. 대통령에게 한 몸이 되겠다는 사람에게 직언을 기대하는 건 연목구어나 다름없다.  

윤 대통령이 '한동훈 비대위원장'에게 바라는 것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대결 구도일 것이다. 선거 국면을 '범죄자'와 '정의로운 검사' 프레임으로 만들면 정권심판론을 무력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행동대장을 시켜 반대편의 적장을 상대케 하고 자신은 빠지는 전략이다. 그러나 중대한 오류가 있다. 국민의 시선은 윤 대통령을 향해 있지 한동훈이나 이재명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드러난 민심은 윤 대통령이 달라지라는 거였다. 퇴행적 국정운영 기조를 바꾸고 오만과 독선적 태도에서 벗어나라는 요구였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자신은 변화하지 않고 대리자를 내세워 바뀌는 시늉만 하고 있다. 이를 모를 거라고 생각한다면 국민을 바보로 여기는 것이다.

한 전 장관도 착각에 빠져있다. 윤 대통령을 뒷배로, 하던대로 민주당만 공격하면 지지를 받을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정치 초짜의 무능이 드러나면 당내에서 발톱을 세우고 달려드는 건 시간문제다. 비슷한 예가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다. 한 전 장관과 같은 검사 출신으로 정치권에 입문한 그는 한때 여론조사에서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로 꼽혔다. 하지만 금새 밑천이 드러나 21대 총선에서 패배한 뒤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윤 대통령과 한 전 장관의 현재 모습은 모든 것을 건 도박사를 보는 듯하다. 총선에서 이기면 '대박'이고 지면 파멸을 불사하는 형국이다. 구속 아니면 무혐의라는 일도양단식의 검사 기질이 도드라진다. 나라의 미래가 달린 선거를 자신들의 운을 시험하는 기회로 삼는게 가당키나 한가. 100여 일 후면 이들의 오판 여부가 판가름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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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한국일보 전 주필. 1987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사회부장, 편집국장, 수석논설위원, 주필을 역임했습니다. 만 35년 간의 기자 생활을 마치고 2022년 12월 퇴사했습니다. 오랜 기자 경험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우리 사회 현안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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