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법꾸라지' 대통령
용산에서 윤석열 대통령 기자회견 형식을 '끝장토론'으로 규정할 때부터 이상하다 했다. 시간과 의제 제한을 두지 않겠다는 '끝장'과 상호 간의 생각을 털어놓는 '토론'이 의미하는 게 뭔가. 윤 대통령이 하고 싶은 얘기를 마음껏 쏟아내겠다는 선언으로 들렸다. '불길한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
'명태균 게이트'로 지금 윤 대통령은 법적∙정치적 심판대에 올라 있다. 탄핵 등 중도하차 위기에 내몰린 윤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셀프 변호'의 무대로 활용했다. 빳빳하던 고개를 숙이고 "365일 24시간 노심초사하며 몸이 부서져라 일했다"고 읍소했다. 변호사가 피고인의 어려운 처지를 하소연하며 선처를 호소하는 전략을 쓴 것이다. 윤 대통령의 실정으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수많은 국민 앞에서 가장 권력이 센 대통령이 할 소린가.
검사 출신의 윤 대통령은 읍소만으로는 국면을 돌파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았다. 그동안 쌓아온 법률적 지식을 총동원하며 방어에 안간힘을 썼다. 김영선 전 의원 '공천 개입' 질문에 "개입의 정의를 따져봐야 한다"는 희한한 논리로 빠져나갔다. 특정인을 지목한 게 아니라 공천에 관한 일반적이고 원칙적인 얘기를 했으니 개입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온 국민이 "김영선 해주라"는 윤 대통령의 육성을 생생하게 들었는데 딴소리다.
'김건희 특검법' 거부권 행사 이유는 귀를 의심케 한다. 윤 대통령은 특검법이 "명백히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삼권분립 체계에 위반된다"고 주장했는데, 허무맹랑한 말이다. 헌법재판소는 특검법이 권력기관 사이의 삼권분립에 따른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따라 검사의 수사권 기소독점주의를 보완할 제도라는 취지로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법률의 위헌 여부는 대통령이 아닌 헌재가 결정한다는 건 상식이다. 말끝마다 헌법과 법률을 강조해온 게 윤 대통령 아니었나.
명태균과 김건희 모든 의혹에 모르쇠
"임기 채우겠다"는 말 지켜질지 의문
기억이 없다고 잡아떼거나 엄연한 사실을 무턱대고 부인하는 것도 대통령 답지 않다. "명태균씨한테 여론조사를해달라고 이야기한 적이 없다"고 했는데 명씨는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전화했는데 궁금해한다"고 녹취록에서 밝혔다. 공천 얘기는 한 기억이 없고 김 여사의 국정농단은 조언이라고 둘러댔다. 시중에 명단까지 돌아다니는 '김건희 라인'도 터무니 없다고 했다. 모든 게 '부덕의 소치'라면서도 어느 것 하나 책임을 인정하는 게 없다.
윤 대통령의 '거짓말'은 고질이 됐다. 대선 후보 때는 "제 아내는 도이치모터스에 투자했다 손해만 보고 절연했다"고 했고, "내 장모는 남에게 십원짜리 피해 준 적이 없다"고 했다. 전국민을 상대로 듣기평가 테스트를 하게 만든 '바이든-날리면' 발언도 있었다. 이번엔 명씨와 김 여사 의혹에서 똑같은 일을 반복했다.
대개의 사람은 거짓말을 하면 부끄러워하는 기색이라도 있는데 윤 대통령은 다르다. 금새 들통나 망신을 당하고서도 얼마 안 가 태연스레 되풀이한다. 대통령이 앞장서니 대통령실과 각 부 장관들도 아무렇지 않게 상습적으로 거짓말을 한다. 이번 국감에서 위증 혐의로 고발이 검토되는 장관이 한 둘이 아니다. 가히 거짓의 모래성으로 일군 정부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윤 대통령은 국민에게 적당히 사과만 하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믿고 있다. 하지만 진실을 가리고 진정성이 실리지 않은 사과는 기만에 불과하다. '59분 대통령'이란 별명처럼 윤 대통령은 1분만 사과하고 59분을 본인과 배우자 변명에 쏟았다. 그마저도 "잘못을 딱 짚어주면 사과하겠다"고 버텼다. 오로지 한줌의 법 지식으로 법망을 빠져나가려는 '법꾸라지'나 진배없다.
국민의힘 내에서도 윤 대통령의 이번 회견이 마지막 기회라는 말이 나왔다. 윤 대통령은 그 실낱 같은 기회도 변명과 거짓말로 걷어찼다. 그 후과는 오로지 윤 대통령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윤 대통령은 유독 "2027년 5월9일, 저의 임기를 마치는 그날까지 모든 힘을 쏟아 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렇게 될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