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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윤 대통령 권력, 쇠퇴하는 징후들

이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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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분 걸림 -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여당 참패를 보고 문득 든 생각은 윤석열 대통령은 정말 선거에서 질 줄 몰랐을까 하는 것이다. 용산에서 보궐선거 원인제공자인 김태우 전 구청장을 사면하고, 국민의힘이 그를 공천했을 때부터 선거 패배는 예정된 길이었다.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이런 사실을 최고권력자가 몰랐다면 그 자체로 국정 운영에 큰 구멍이 뚫려있다는 얘기밖엔 안 된다.

윤 대통령은 사면권은 헌법상 보장된 대통령의 권한이고, 김태우는 문재인 정권의 비위를 폭로하다 억울하게 당한 피해자인데 뭐가 문제냐는 인식을 가졌을 것이다. 다수의 국민이 자신의 생각과 같을 것이라 여기고 선거에서도 당연히 이길 것으로 믿었을 터다. 주변의 누구도 만류하는 사람이 없으니 확신은 커졌을 게다. 백성은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는데 혼자만 망상에 사로잡힌 모습이 '벌거벗은 임금님'을 떠올리게 한다.

자신의 생각과 달리 선거에서 패한 윤 대통령의 충격은 적지 않을 것이다. 이번 선거는 대선과 지방선거 등에서 승승장구하던 윤 대통령에게 처음으로 패배의 쓰라림을 안겼다. 그 것도 일방적이고 압도적인 참패다. 아무리 의미를 축소하려해도 민심이 윤 대통령에게서 등을 돌렸다는 사실을 이보다 확실하게 드러낼 수는 없다.  

비단 선거뿐이 아니다. 근래들어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은 거대한 벽에 부닥친 형국이다.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영장이 기각된 데 이어, 대법원장 임명동의안 부결, 부적격 장관 임명 강행 등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경제∙민생은 악화일로고 '가치동맹' 외교전략도 먹구름이 끼고 있다. 난국을 돌파할 뚜렷한 묘안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승승장구하던 윤 대통령, 첫 패배 맛 봐
대법원장 부결, 김행 사태 등 총체적 위기
냉엄한 현실 인정하고 국정 기조 바꾸길

사실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 방향은 1년반이 지나도록 손에 잡히는 게 없다. 오로지 반 문재인 정서에 기반한 정책 뒤집기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공권력을 동원해 언론과 시민단체 등 비판세력을 손보거나 야당 흠집내기에 다걸기를 하고 있다. 이로인해 국가와 제도는 수십 년 전으로 퇴행했고 미래는 실종됐다. 이번 선거를 불통과 독주로 일관하는 윤석열 정부 국정 운영에 대한 준엄한 심판으로 보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안타까운 건 이런 냉엄한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대통령실의 태도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12일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와 관련해 "정부는 어떠한 선거 결과든지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짧게 말했다. 자성과 성찰의 메시지는 고사하고 마치 남의 일인 것처럼 취급하고 있다. 보수진영에서조차 "대통령이 달라져야 한다"고 채찍질인데 대수롭지 않다는 투다.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자진사퇴도 보선 패배에 대비해 남겨놓은 카드라는 얘기가 많았다.

윤 대통령은 지금 고비를 맞고 있다. 권력이 계속 확장되느냐 아니면 약화하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은 '미국 정치론'에서 "대통령이 지나치게 강력하다고 사람들이 믿는다면, 이는 대통령이 그 정도로 강력하지 않거나 그의 권력이 퇴조하고 있는 증거"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권력이 실제 강하면 여론은 지나치게 강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거꾸로 윤 대통령이 권한을 과도하게 행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건 그만큼 권력이 쇠퇴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번 선거 결과는 대통령이 독선과 폭주를 멈추라는 국민의 명령이다. 윤 대통령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내년 총선에서 더 가혹한 국민 평가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그게 걱정되는 게 아니라 그때까지 계속될 비합리와 비상식을 감내해야 하는 국민들의 고통이 안타까워서다. 나라를 위해서, 국민을 위해서 윤 대통령이 달라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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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전 주필. 1987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사회부장, 편집국장, 수석논설위원, 주필을 역임했습니다. 만 35년 간의 기자 생활을 마치고 2022년 12월 퇴사했습니다. 오랜 기자 경험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우리 사회 현안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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