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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조국 수사했으니 교육전문가" 발언, 원조는 윤 대통령

이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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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분 걸림 -

윤석열 대통령의 느닷없는 수능 난이도 발언으로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분노지수는 높아졌지만 한 줄기 웃음을 선사한 장면도 있다. "윤 대통령이 조국 일가 수사를 지휘했으니 교육전문가"라는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 말과 "윤 대통령이 수사하면서 입시에 대해 깊이있게 연구해 저도 정말 많이 배운다"는 이주호 교육부장관의 언급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낚시하다 방구를 뀌자 옆에 있던 장관이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고 했다는 그 전설적인 아부 못지 않다. 아첨을 하려면 이 정도는 돼야 한다는 전범(典範)으로 길이 남을 만하다.

의아한 건 두 사람이 함께 아부 발언을 했다는 점이다. 미리 짠 게 아니라면 둘 다 비슷한 생각을 했다는 건데, 발단은 윤 대통령 특유의 장광설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실 주변에서 떠도는 '59분 대통령'이라는 말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회의를 1시간 하면 59분은 윤 대통령이 혼자 말한다"는 의미로 붙여졌다고 한다. 짐작컨데 어느 회의 석상에서 윤 대통령이 과거 수사 경험을 얘기하면서 입시와 교육 문제를 잘 안다고 자랑한 게 계기인 듯 싶다.

이런 추측이 설득력을 갖는 건 윤 대통령이 "검사는 수사를 하기 때문에 금방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지론을 갖고 있어서다. 그는 대선 후보 때 검사 경험만으로 복잡한 국정을 운영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응수했다. 수세적이기는커녕 오히려 자신감에 가득 차서 한 말이었다. 실제 윤 대통령의 이런 확신은 국정 운영의 상당 부분에 그대로 투영된 채 나타나고 있다.  

정권 출범 때 장관과 참모 상당수를 검찰 출신으로 채운 것부터가 이를 웅변한다. '손바닥만한' 검찰 인사를 잘했다고 국가 인사를 맡겨놓고, 금융부패 수사를 잘했으니 금융감독 업무를 떼줬다. 노동개혁, 교육개혁이 안 된 것도 부정부패 세력을 솎아내지 못해서라며 검사를 노동부와 교육부에 보냈다. 정치인들을 탈탈 털어본 검사만큼 정치를 잘 아는 사람이 없으니 이젠 여당에도 검사들을 꽂겠다고 한다.

박대출, 이주호 아부 발언, 윤 대통령 인식이 발단
'검사 만능주의', 인사 등 국정 운영 전반에 투영
졸속 결정 책임 안 지고 아래로 넘기는게 더 문제
MB "해봐서 아는데" 재판되지 않도록 자성해야

윤 대통령의 '검사 전문가론'은 국정을 너무 쉽게 여기는 태도에서 나타난다. 국가의 모든 현안을 수사의 관점에서 바라보니 크게 고민할 일이 없다. 검사가 법 위반 여부를 따지기만 하듯이 매사를 간단하게 정리하려 든다. 대선 때 구호로 나온 "좋아, 빠르게"가 정책 이슈에서도 거침없이 적용된다.  

이번 수능 난이도 발언도 이런 단선적인 접근이 화근이 됐다. '킬러 문항'만 없애면 골치 아픈 대학 입시도, 사교육비 문제도 풀릴 거라고 단순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 결정이 맞든, 틀리든 상관할 건 없다. 잡음이 생기고, 반발이 커지면 감사와 수사, 면직으로 윽박지르면 된다. 당사자들이 공포에 질려 조용해지면 문제가 해결됐다고 착각하고 득의만만 할 것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사태도 따지고보면 윤 대통령의 과도한 자신감에서 비롯됐다. "과학적 검증을 거치면 문제 없다"는 발상은 언뜻 보면 전문가적 시각 같지만 실은 검사적 사고방식이다. 인류사에서 처음 겪는 오염수 방류에 대한 자료가 축적되지 않은 상황에서 과학에만 의존하는 건 단견이다. 국민이 원하는 건 법적 잘잘못을 따지는 태도가 아니라 미래에 닥칠지도 모를 불안을 덜어달라는 것이다.

고도의 전략적 사고가 요구되는 외교의 영역에서 윤 대통령의 전문가연하는 태도는 더욱 위험하다. 일제 강제동원 '3자 변제' 방식은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 대법원 판결문을 읽어보고 내린 해법으로 알려졌다. 당시 생각에 꽂혀 외교 전문가들 판단도 무시하고 밀어붙였다는 얘기다. 미일 편향 외교도 이분법적 진영 논리에서 배태된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지정학에 대한 고민이 결여된 일도양단식 외교가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 생각이나 해봤는지 의문이다.    

윤 대통령이 가진 더 큰 문제는 졸속 결정의 책임을 자신이 지지 않고 남에게 돌리려는 데 있다. '만5세 입학' 때도, '주69시간노동' 때도 책임은 아랫사람에게 돌아갔다. '바이든-날리면' 발언 때는 또 어땠나. 이번 수능 발언 파문도 결국 교육부가 덤터기 쓸 거라는 전망이 많다. 이러니 관가에 "위에서 시키지 않은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는 생존수칙이 도는 게 당연하다. 머잖아 윤 정부에서 남아 나는 관료가 거의 없을 것이라는 자조섞인 말도 들린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말로 국정을 밀어붙이다 추락했다. 지금 윤 대통령도 딱 그런 모습이다. 주변 인물도, 정책도, 국정 방향도 차이가 없고, "해봤더니"나 "해봤으니"나 거기서 거기다. 지금 윤 대통령에게 가장 필요한 건 국민 앞에 한 없는 겸손함이다. MB의 길을 걷지 않으려면 하루빨리 태도와 사고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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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한국일보 전 주필. 1987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사회부장, 편집국장, 수석논설위원, 주필을 역임했습니다. 만 35년 간의 기자 생활을 마치고 2022년 12월 퇴사했습니다. 오랜 기자 경험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우리 사회 현안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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