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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윤 대통령 '빈손' 회담 어떻게 책임질 건가

이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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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분 걸림 -

예상대로 한일 정상회담에서 반쯤 남은 물 컵에 나머지 물은 채워지지 않았다. 애초 일본은 물을 채울 생각이 없었다. 기시다 일본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통절한 반성'도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과거 정부에서의 선언 계승 입장을 표명하면서도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의 핵심 문구는 의도적으로 뺐다. 되레 윤 대통령은 기시다 총리로부터 사문화 된 2015년 위안부 합의를 이행하라는 독촉까지 받았다. 혹을 떼기는커녕 붙인 꼴이다.

일본에서의 윤 대통령 표정은 밝았다. "일본에 간 것만 해도 성과"라고 말했던 그다. 가는 곳마다 극진한 환대가 쏟아졌고, 한 끼에 밥을 두 번이나 먹는, 듣도 보도 못한 대접까지 받았다. 일본으로부터 기필코 무언가 받아내겠다는 절박함이라고는 없었다. 가슴 졸이며 지켜보는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었던 것 아닌가.  

윤 대통령은 일본 언론과 인터뷰에서 모든 구상을 자기가 했다고 밝혔다. 정치를 시작하기 전부터 '제3자 변제' 방식을 염두에 뒀다고 했다. 그렇다면 아마 검찰총장에 재직할 시기일 것이다. 검사만 해온 그의 이력으로 볼 때 한일 관계에 대한 관심은 호기심 차원을 넘기 어렵다. 그런데도 70년 넘도록 역대 어느 정부에서도 풀지 못한 난제를 해결하겠다는 발상을 한 것 자체가 놀랍다. 게다가 그 것을 대통령이 됐다고 밀어붙이는 오만과 독선은 더 기막히다.

이런 과정을 지켜보면서 윤 대통령이 왜 이렇게까지 하는가를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누군가는 "정신세계가 극우 판타지에 사로잡혀 있다"고 했지만 소영웅주의가 더 가까워 보인다. 자신만이 위기에 놓인 국가를 구할 수 있다는 일종의 메시아적 환상이다. "대승적 결단"이란 말에서 그런 냄새가 물씬 풍긴다. 기자회견에서 "나중에 구상권 행사로 어어지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언급에서는 초법적, 초정권적 우월의식이 느껴진다.

보다 현실적인 접근법은 정치적 이익을 위한 노림수일 가능성이다. 성과야 어떻든 4년 만의 한국 대통령의 일본 방문은 외신의 주목을 받았다. 다음달에는 한일 화해를 원하는 미국의 환호 속에 윤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이 예정돼 있고, 5월에는 G7 회의에 일본의 초청을 받아 참석할 모양이다. 연이은 대형 국제행사 참석으로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고 여론 지지율도 상승곡선을 그릴 거라는 게 윤 대통령의 속내일 것이다.  

우려했던대로 일본 사죄도 배상 의지도 없었던 한일 정상회담
검찰 때부터 했다는 '제3자 변제' 밀어붙이기, 소영웅주의 발로
한일회담 이은 訪美, G7 등 잇단 국제행사, 총선 겨냥한 노림수
"모든 책임 지겠다"는 말 뒤에 숨어 책임 회피할 생각 말아야 

이런 셈법은 내년 총선을 겨냥한 것일 수 있다. 강제동원 해법을 미래세대를 위한 결단으로 포장한 것은 현 정부의 주요 지지층인 MZ세대를 향한 구애의 몸짓으로 보인다. 한일 교류와 경제협력이 늘어나게 되면 분위기가 지지세로 돌아설 거라는 낙관적인 전망이 여권에 쏟아진다고 한다. 모든 것을 총선에 걸다시피 하는 윤 대통령을 떠올리면 능히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문제는 윤 대통령의 계산에 국익에 대한 실존적 고민과 철학이 없다는 점이다. 반북 대결주의와 친미 일색 정책은 필연적으로 한반도 안보불안 지수를 높인다. 일본 자국내에서도 논란인 '반격능력' 용인은 한국 대통령이 일본에 사실상 한반도 개입을 허용한 것이나 다름없다. "누구도 대한민국의 동의 없이 한반도의 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다"(문재인 대통령 2017년 8·15 경축사)는 한국 정부의 확고한 입장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몰리게 됐다.

정작 동맹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올가미를 씌우는 미국에는 제대로 말도 못하고 있다. 미국이 한국 수출의 명줄인 반도체 산업의 팔을 비틀고 있지만 변변한 항변조차 없다. 지난해 인플레이션감축법(IRA)으로 뒤통수를 맞고도 또 그모양이다. '신냉전 구도'의 현실적 한계가 있지만, 이전 정부들에선 '안미경중(安美經中, 안보는 미국·경제는 중국)'이라는 실용주의적 고민이라도 했는데 지금은 그런 논쟁조차 사라졌다.

윤 대통령은 강제동원 해법을 놓고 사회적 논란이 커지자 "대통령으로서 수행해야 할 모든 정책의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참모들에게 말했다고 한다. 그의 말대로 외교와 안보, 국방에 관한 전적인 책임은 대통령이 져야 한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책임을 지겠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이 없다. 오히려 "책임지겠다"는 수사(修辭) 뒤에 숨어 책임을 회피하려는 게 아닌가 싶다.

국가를 책임진 대통령은 닥쳐오는 국가적 위기를 예측하고, 대응책을 선제적으로 마련해 국민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얻어야 한다. 윤 대통령은 이 모든 것을 생략했다. 올바른 대책을 세우지 않았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무시했으며, 국민을 설득하지도 않았다. 윤 대통령은 대선 때 손바닥에 '왕(王)'을 써서 많은 국민을 놀라게 했다. 이제 와서 보면 윤 대통령은 스스로를 전제군주제 시대의 제왕으로 단단히 착각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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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한국일보 전 주필. 1987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사회부장, 편집국장, 수석논설위원, 주필을 역임했습니다. 만 35년 간의 기자 생활을 마치고 2022년 12월 퇴사했습니다. 오랜 기자 경험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우리 사회 현안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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