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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농락당한 대통령 부부

이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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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분 걸림 -

대통령실은 강하게 부인하고 있지만 명태균씨가 단순한 정치 컨설턴트가 아닌 건 분명하다. 그러지 않고서는 아직 기세등등한 윤석열 대통령에게 하야와 탄핵을 언급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어느 간 큰 컨설턴트가 거리낌 없이 '내가 만든 정권' 운운할 수 있는지 따져볼 필요도 없을 것이다.  

명씨가 대선기간에 한 역할을 보면 그의 말을 허장성세로 치부할 것도 아니다. 당시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였던 윤 대통령은 명씨를 여러 차례 만났다. 그 자리에는 김건희 여사도 동석했다. 당 대표와 거물 정치인을 만나는 자리에 명씨를 배석시킨 건 어지간한 신뢰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명씨는 대선 막판에 선거 판도를 뒤흔들 수 있는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에도 일정 역할을 했다. 이 정도면 자신이 윤석열 정권 탄생에 지분을 갖고 있다고 떠들만도 하지 않나.

모르긴 몰라도 윤 대통령은 명씨에게 단단히 코가 꿰인 듯하다. 명씨는 지난 대선때 윤 대통령에게 수억 원 상당의 여론조사를 무상으로 제공했지만 돈은 받지 못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이 그만큼의 불법정치 자금을 받은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게다가 그 대가로 김영선 전 의원에게 공천을 준 게 사실이라면 뇌물 혐의도 적용될 소지가 크다. 명씨가 구체적인 증거를 들이대면 윤 대통령 부부가 법망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명씨가 연일 언론을 통해 폭로성 발언을 이어가는 것은 윤대통령 부부가 두려워할 추가적인 내용을 쥐고있다는 협박이나 다름 없다. 그런데도 대통령실은 명씨에게 엄정 대응 의지를 보이기는커녕 회피하는 듯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범죄를 저지른 뒤 공범의 협박에 전전긍긍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명씨의 입만 쳐다보며 농락당하는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명태균에게 단단히 코 꿰인 尹 부부
김대남의 폄하발언에도 유구무언
단호한 대응 못하면 사실 인정하는 것

그나마 명씨는 외부 인사라지만 윤 대통령 부부에게 험담을 쏟아내는 김대남 전 대통령실 선임행정관은 내부 인사다. 그는 윤 대통령을 향해 '꼴통'이라 하고 김 여사에겐 "십상시 같은 어린애들을 쥐락펴락한다"고 했다. 야당 의원도 입에 올리기 꺼리는 말을 가장 충직하다는 사람들로 포진했다는 대통령실에서, 그것도 간부급 인사가 서슴없이 내뱉었다. 그런 치욕스런 말은 들은 윤 대통령 부부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윤 대통령이 뼈아프게 여겨야 할 것은 김 전 행정관이 쏟아낸 말이 용산 대통령실에 퍼져있는 정서를 짐작케 한다는 점이다. 김 전 행정관은 윤 대통령이 회의 때 혼자 떠들고, 벽창호처럼 고집을 부리고, 극우 유튜브를 주로 보고, 참모들 말을 안 듣는다고 털어놨다. 대통령실 말대로 윤 대통령 부부와 전혀 친분이 없는 인물이 자신이 모시는 대통령에 대해 가감없이 내린 평이다. 유독 그만이 그런 인식을 가진 건 아닐 것이다.    

김 전 행정관의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공격 사주' 언급으로 윤 대통령의 처지는 더 곤혹스러워졌다. 윤 대통령이 한사코 뿌리치던 한 대표의 '독대' 요청을 슬그머니 받아들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당에서 배후조사에 나서면 어떤 망신을 당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컸을 터다.  

윤 대통령이 명태균과 김대남으로부터 농락을 당한 게 아니라면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지금이라도 명씨를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면 된다. 윤 대통령이 강하게 의지를 표명하면 수사기관이 득달같이 달려들지 않겠나. 지난해 선관위 고발을 받고도 늑장 수사에 나선 검찰에 신속하고 엄정한 수사를 촉구하는 것도 하나의 카드다. 김 전 행정관 문제도 국민의힘이 진상을 명확히 규명하고 김씨도 당 조사에 적극 협력하라고 말하면 될 일이다. 이들이 '허풍쟁이'에 불과하다면 윤 대통령이 당하고만 있는 이유가 뭔지 궁금하기에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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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한국일보 전 주필. 1987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사회부장, 편집국장, 수석논설위원, 주필을 역임했습니다. 만 35년 간의 기자 생활을 마치고 2022년 12월 퇴사했습니다. 오랜 기자 경험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우리 사회 현안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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