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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윤 대통령, '해봐서 아는데 병' 도졌다

이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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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영수회담이 길어진 뒷얘기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거론됐다. 윤 대통령이 "내가 검사를 해봐서 잘 안다"며 자신이 맡았던 대형참사 사건 경험을 장황하게 언급했다고 한다. 특별법으로 수사를 해도 새로운 사실이 나올 게 없고 직권남용 처벌이 어렵다고 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 발생 때도 "책임은 있는 사람에게 딱딱 물어야 한다"는 논리로 윗선을 봐줬다. 그때의 후유증이 여태껏 이어져 특별법까지 왔다. 그런데도 아직도 협량한 법 조문에 갇혀 있다. 법을 들먹이기 이전에 어이없는 죽음을 당한 희생자에 대한 공감과 책임감을 느끼는 게 국가 지도자의 자세 아닌가.

그렇다고 윤 대통령이 법의 사실관계를 제대로 아는 것 같지도 않다. 영수회담에서 특별법 독소조항으로 진상조사위의 영장청구권을 꼽았는데, 조사위에 있는 권한은 '영장청구 의뢰권'이다. 조사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최소한의 수단이다.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세월호 등 대형 참사를 거치며 우리 사회가 만들고 정착시킨 모델이다. 대통령의 한마디에 이 조항이 삭제된 게 두고두고 조사위의 발목을 잡을 것 같다.

해병대 채 상병 수사 외압 사건도 따지고보면 윤 대통령의 '해봐서 병'이 화근이다. 윤 대통령이 참모들에게 "이런 일로 사단장까지 처벌하는 게 말이 되냐"며 격노한 게 사태의 발단으로 알려져 있다. 윤 대통령은 수사 담당자가 아니다. 상황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외관만으로 사건을 단정짓는 건 검사 시절의 잘못된 습성이다. 검찰총장 때 조국 전 장관 수사 이유로 내세운 사모펀드 혐의가 모두 무죄 나온 사실을 벌써 잊은 모양이다.

영수회담서도 "내가 해봐서 아는데" 타령
채 상병 외압, 김 여사 의혹서도 같은 태도
MB 전매특허 따라하기 국정 실패도 답습 

제1야당 대표와 회동을 극구 꺼렸던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윤 대통령의 '해봐서 아는데' 논리에 따르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벌써 구속됐어야 할 사람이다. 전문성이 요구되는 요직에 해당 분야를 '수사해 봐서 잘 아는' 검사 출신을 대거 기용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윤 대통령의 '해봐서 아는데'는 남의 허물을 들추는 데는 추상같고, 자신과 가족의 잘못에는 관대하다는 게 치명적 결함이다. 윤 대통령의 경험칙은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각종 의혹에는 굴곡되게 적용된다. 명품백 수수는 '몰카 공작'이고,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은 김 여사가 되레 손실을 본 피해자라는 논리를 편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말은 이명박 전 대통령(MB)의 전매특허다. 기업을 운영해 본 경험을 모든 국정에 적용하려다 배가 산으로 갔다. 윤석열 정부는 유독 MB 정부와 접점이 많다. 대통령 주변에 MB 정권 사람들이 다수 포진되어서만은 아니다. 미래비전이 없고, 철학이 없고, 오만과 불통의 이미지도 비슷하다. MB의 '기업 만능주의'가 그를 실패로 이끈 것처럼, 윤 대통령의 '검찰 지상주의'도 정권의 실패를 예고하고 있다.

우연찮게도 박노해 시인의 시 가운데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제목의 짧지만 강렬한 시가 있다. <내가 해 봐서 아는데/ 큰소리치는 사람이 있지// 당연히 해봤겠지/ 그때 거기서 그들과// 오늘 여기는 다르다는 것/ 이젠 그들도 당신도 다르다는 것> '검사 윤석열'과 '대통령 윤석열'이 같을 수는 없다. 검사 시절 윤석열을 바라보던 국민의 시선과 지금 대통령을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도 다르다. 윤 대통령의 가장 큰 문제는 그 차이를 모른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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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전 주필. 1987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사회부장, 편집국장, 수석논설위원, 주필을 역임했습니다. 만 35년 간의 기자 생활을 마치고 2022년 12월 퇴사했습니다. 오랜 기자 경험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우리 사회 현안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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