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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대통령실 졸속 이전' 후유증 도청뿐일까

이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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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분 걸림 -

대통령실의 미 정보기관 도청 의혹 대응을 보면 안쓰럽다는 생각이 든다. 도청의 사실여부나 미국에 대한 항의보다 대통령실 용산 졸속 이전 논란 차단에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서다. 오죽하면 도청당한 장소가 대통령실이 아닌 '제3의 장소' 가능성까지 쥐어짰을까 싶다. 국가안보실장과 외교비서관이 길거리나 카페에서 중요 기밀을 논의했다고 둘러대는 발상 자체가 코미디다.

도청 의혹이 대통령실 주장대로 "터무니 없는 거짓말"이라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도청이 없었다면 대통령실의 누군가가 미국 측에 정보를 유출했다는 말이 된다. 국가안보 심장부에 미국의 스파이가 암약한다면 이 자체가 경악할 일이다. 당장 정보 제공자 색출 작업에 착수해야 하는 것 아닌가. 본질을 흐리는 엉뚱한 해명이 제 발등을 찍은 격이다.

대통령실 용산 이전을 급하게 몰아칠 때부터 가장 우려된 것이 안보 문제였다. 북악산 자락에 위치해 요새나 다름없는 청와대보다 주변에 고층건물이 밀집한 용산이 안보에 취약하다는 건 상식에 가깝다. 북한의 핵∙ 미사일 공격에 대비한 방공망 구축과 무기 배치는 필수다. 담벼락 하나 사이로 정보 탐지 능력이 세계 최고인 미군을 경계한 조치도 당연히 진행됐어야 한다. 이런데도 대통령실 이전에 단 53일이 소요됐으니 사달이 생기지 않았으면 오히려 이상하다. 지난 1월 북한의 무인기에 용산 하늘이 뚫린 게 차라리 다행이다 싶다.

더 걱정인 건 대통령실 이전 작업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거다. 최근 국방부는 대통령실 역내 합참 이전 비용으로 2,390억 원이 소요된다고 국회에 보고했다. 지난해 말 국회보고 당시에 비해 무려 500억 가량 늘었다. 대통령인수위 시절 추산한 1,200억 원에 비하면 두 배 가까이 증가한 규모다. 지금도 관련 시설 정비, 청사·공관 연쇄 이동이 진행 중이니 비용은 계속 늘어날 게 뻔하다. '496억 원이면 된다' '추가 비용은 없다'던 윤석열 대통령의 호언장담은 빈 말이 됐다. 이대로라면 야당이 추산하는 대통령실 이전 비용 1조 원이 터무니 없지 않다.

대통령실, 도청 의혹 터지자 용산 이전 논란 차단 급급
북한 무인기 침입 이어 합참 이전 등 비용도 눈덩이
청와대 이전 명분 내건 도어스테핑 중단, 취지 퇴색
왜 서둘렀는지 의사결정 불법 여부 반드시 규명돼야

대통령실 이전의 '나비 효과'는 우려했던 것 이상이다. '10∙ 29 이태원 참사' 관련자 공소장 곳곳에는 대통령실 용산 이전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정보보고서 삭제 의혹을 받는 서울경찰청 간부는 참사 다음날 카톡방에 "대규모 집회시위 대응으로 경찰력 부족이 부각되면 대통령실 용산 이전이 근본적 문제로 비화될 소지가 크다"는 글을 올렸다. 사고 당일 경찰력은 대통령실이 인접한 전쟁기념관 집회에 집중됐다. 당시 경찰들 사이에선 "대통령실 용산 이전이 참사와 관계가 없다고 보는 게 오히려 부자연스럽다"는 얘기가 나왔다.

용산으로의 대통령실 이전 명분과 취지도 상당히 퇴색됐다. 당초 윤 대통령은 '국민과의 소통 강화'를 내세웠으나 형해화된지 오래다. 언론과의 '도어스테핑'은 5개월째 중단됐고, 언제 재개될지 기약이 없다. 청와대가 구중궁궐이라고 비난하더니 윤 대통령은 기자들은 피하고 국무회의를 통해서만 혼잣말을 한다.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주겠고 했지만 청와대 개방 열기는 싸늘하게 식었다. 국빈 만찬 장소로 호텔 등을 전전하다 결국 청와대 영빈관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 됐다. "이럴 거면 대통령실을 왜 옮겼느냐"는 비판이 안 나올 수 없다.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대통령실 이전은 서두를 일이 아니었다. 청와대를 옮기는데 많은 국민이 공감하고 있던 터라 시간을 두고 면밀하게 따져 결정해야 했다. 그러지 못해 발생한 유무형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앞으로 또 어떤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지지 알 수 없다. 대통령실이 용산 이전 얘기만 나오면 화들짝 놀라는 것도 졸속의 후유증을 알고 있기 때문 아닌가.  

대통령실 이전은 국가적 과제다. 이전 과정과 절차에 문제가 있다면 경위를 파악하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현 정권에서 제대로 조사가 이뤄질지 의구심이 든다. 지난해 참여연대의 국민감사청구로 대통령실과 관저 이전 의사결정 불법여부를 감사하기로 가까스로 결정됐지만 먹구름이 가득하다. 대통령실이 자료 제출에 협조하지 않는다고 하고, 감사중단 압력설도 제기되고 있다. 분명한 건 정권은 유한하고, 권력이 스러지면 숨겨진 진실이 속살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이뤄진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얽힌 의혹은 반드시 풀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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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전 주필. 1987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사회부장, 편집국장, 수석논설위원, 주필을 역임했습니다. 만 35년 간의 기자 생활을 마치고 2022년 12월 퇴사했습니다. 오랜 기자 경험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우리 사회 현안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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