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지귀연스러웠던 윤석열 선고
윤석열 내란 우두머리 1심 선고는 한마디로 요약하면 '지귀연스럽다'는 것이다. 사형이 아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고 탓하는 게 아니다. 비상계엄 선포의 배경과 실행 등에 대한 판단이 논리적이지 않은 데다 윤석열 쪽에 경도돼 있다는 점에서다. 황당한 이유로 윤석열을 풀어주고 내란 재판을 희화화했던 모습 그대로다.
이날 선고에서는 12·3 비상계엄을 바라보는 지 판사의 '어설픈 계엄' 논리가 여실히 확인됐다. 지귀연은 내란 계획이 치밀하지 않았고, 장기간 끌고 나갈 생각이 없었으며, 직접적 물리력이 행사되지 않았다고 거듭 말했다. 비상계엄의 실체적, 절차적 요건 미비만으로 위헌·위법을 판단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과는 결이 한참 달랐다. 유혈 사태가 일어나지 않은 게 현장 지휘관들의 소극적 대응과 시민들의 강력한 저항 때문이었다는 사실은 애써 눈감았다.
국회·정당을 해산하고, 시민의 집회·결사를 금지하고, 신문·방송을 통제하려다 미수에 그친 게 비상계엄 사태였다. 정치인과 언론인, 사회단체 인사들을 '수거'하려 하고 북한을 자극해 전쟁 일보 직전까지 치달았다. 탄핵과 체포, 구속기소와 재판 등 내란 이후 진행된 일련의 과정에서 윤석열이 비정상적 사고를 가졌다는 사실 또한 또렷이 확인됐다. 그러나 지 판사의 판단을 보면 그가 이런 행태를 의도적으로 무시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지귀연이 서구의 상하원 양원제 등 정치 제도를 거론한 것은 비상계엄이 여야 갈등에서 초래된 우발적 사태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 군을 동원해 국회 기능을 정지시키지 않았으면 비상계엄이 대통령의 통치 행위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도 비쳤다. '성경을 읽기 위해 촛불을 훔쳤다'는 비유는 비상계엄의 불가피성을 앞장서 설파하는 듯했다. 윤석열 선고를 관통하는 지 판사의 일관된 기조는 대통령 지위의 인정과 존중이었다.
민주주의와 헌정 질서 수호가 존립 목적인 사법 관료의 의식 구조가 얼마나 왜곡돼 있는지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권력에 대한 순응적 태도는 지 판사뿐 아니라 내란 가담자 구속영장을 줄줄이 기각한 영장전담 판사와 터무니 없는 이유로 윤석열 국정농단 관련자들을 무죄 판결한 판사들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이 기를 쓰고 헌법소원과 법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에 반대하는 이유가 뭐겠는가.
사법 엘리트의 순응적 태도 드러나
'빛의 혁명' 완성까지는 갈 길 멀어
이번 사태에서 군 장성과 국무위원, 경찰 지휘부 등이 내란의 조력자였다면 법원과 검찰, 극우 정치세력은 사태를 축소하고 은폐한 공범이었다. 이들 엘리트는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인식이 없어 시민 위에 군림해도 된다는 잘못된 생각에 빠졌고, 결국 내란에 가담했다. 내란 사태에서 드러난 건 윤석열의 독재자 본성뿐 아니라 권력의 중추를 형성하는 엘리트 집단의 저열함과 탐욕이었다.
군경 등 무력 기관과 관료 엘리트들에 단죄는 그나마 진행중이지만 법을 수호하고 집행해야 할 사법 엘리트들에 대한 징치(懲治)는 아직 요원하다. 윤석열 부부 범죄를 눈감아준 검사들은 여전히 버젓하게 활동하고 있다. 수사·기소 분리에 반발해 태업하고 항명하는 검사들도 여전히 전세를 뒤집을 기회만 노리는 모습이다.
정치 엘리트 집단인 국민의힘은 스스로 자멸의 길로 향하고 있다. 윤석열 탄핵에 반대하고, 체포를 막아서고, 내란이 아니라고 옹호한 그들이야말로 한국 정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윤석열을 대통령에 오르게 한 것도, 독재자로 만든 것도 국민의힘이고, 아직까지 윤석열과 절연하지 못한 채 극우 세력에 기생하는 것도 국민의힘 다수 의원이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내란 유죄 판결에도 바로 입장을 내지 못한 채 이들 눈치만 보고 있다.
민주주의가 발전한 국가 가운데 전례없는 '친위 쿠데타'가 발생한 것은 이런 국가 엘리트의 합세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특정 이념과 사상이 아니라 그릇된 출세욕과 특권의식, 맹목적 복종이 내란을 만든 것이다. 시민이 갖춘 민주적 의식과 역량을, 엘리트 집단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고 대신 우리 민주주의가 얼마나 허약하고 쉽게 허물어질 수 있는지만 두드러졌다.
내란의 종식은 단순히 윤석열과 내란 가담자들을 처벌하는 데 있지 않다. 기형적이고 부패한 엘리트들이 국민과 유리된 특권 세력이 될 수 있는 구조를 바꾸고 깨트려야 한다. 그러자면 먼저 민주 헌정 질서를 훼손하고 공격하는 세력을 단호하게 응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법개혁과 검찰청 폐지는 아직 미완의 과제고, 극우 정치세력에 대한 심판도 이뤄지지 않았다.
다행히 윤석열이 심판받은 날 대한민국 국민이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됐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헌법적 위기를 시민들의 힘으로 되살린 것은 전 세계적인 민주주의 후퇴 현상을 볼 때 자랑스런 일이다. 하지만 '빛의 혁명'을 마무리하기에는 갈 길이 아직 멀다. 그 엄연한 사실을 윤석열 1심 선고가 웅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