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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주술'에 빠진 대통령 부부

이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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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분 걸림 -

온갖 의혹이 난무하는 '김건희 국감'에서 가장 놀라웠던 건 증인으로 출석한 강혜경씨의 주술 관련 발언이다. 명태균씨가 윤 대통령을 '장님 무사', 김건희 여사를 '앉은뱅이 주술사'로 칭하며 장님의 어깨에서 주술을 부리라고 얘기했다는 대목에서 소름이 돋았다. 명씨와 김 여사가 첫 만남에서 이런 '영적 대화'를 나눴다는 것도 황당하지만, 김 여사가 배후에서 국정에 관여하고 있다는 의혹을 뒷받침한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더 기가 막힌 건 대통령 해외순방 일정이 명씨의 '꿈'으로 인해 바뀌었다는 의혹이다. 강씨 증언에 이은 언론 보도에 따르면 2022년 윤 대통령 부부의 캄보디아 순방 당시 명씨가 "비행기가 떨어지는 꿈을 꿨다"고 김 여사에게 말하고 난 뒤 당초 예정된 앙코르와트 방문이 취소됐다는 것이다. 당시 앙코르와트 사원 방문은 아세안 정상회의에 참석한 각국 정상의 배우자 프로그램으로 마련된 자리였다. 한갓 사적 인물의 꿈 얘기를 듣고 외교 활동을 정상적으로 수행하지 않았다는 건 듣도 보도 못한 일이다. 여태껏 풀리지 않는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조문 취소의혹은 명씨의 어떤 꿈을 듣고 저지른 것인가.

윤 대통령 부부가 무속에 심취해있다는 사실은 대선 후보 때부터 꾸준히 제기돼왔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김 여사는 대선 당시 공개된 '7시간 녹취록'에서 스스로를 비범한 무속인으로 자처하면서 "남편에게도 영적인 기가 있어 인연이 됐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토론에서 손바닥에 왕(王)자를 쓰고 나와 국민을 놀라게 했고, 김 여사는 사주와 관상 등 점술을 소재로 박사학위 논문까지 썼다. 여기까지는 '참 희한한 부부'라고 치부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대통령에 오른 뒤 국정에도 영향을 줬다면 차원이 다른 문제다.

'영적대화' '장님무사' '주술사' 해괴한 말 난무
명씨 꿈으로 해외순방 일정 바꿨다는 증언 속출
용산 집무실, 관저 이전 무속인 개입 의혹도 여전

대표적인 게 용산 대통령실 이전이다. 윤 대통령은 용산에 채 집무실이 마련되지 않았는데도 하루도 청와대에 머물 수 없다며 부리나케 옮겼다. "청와대는 터가 좋지 않아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녹취록에서 했던 김 여사 말 그대로다. 당시 무속인 누군가가 그런 주장을 했다는 설이 파다했다. 용산 졸속 이전으로 인한 막대한 예산 낭비 등 숱한 혼란과 폐해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육군참모총장 공관에서 돌연 외교부장관 공관으로 바뀐 관저 이전은 또 어떤가. 무속인 천공 개입설이 돌자 조사에 나선 당국은 '무속인이 아닌 풍수전문가가 동행한 것'이라고 되레 큰 소리를 쳤다.

이게 끝이 아니다. 윤 대통령이 석연찮은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무속인 관여 의혹이 어김없이 뒤따랐다. '의료대란'의 발단인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은 역술인 천공의 본명인 '이천공'에서 왔다는 말이 돌았고, '대왕고래 프로젝트'는 천공의 "우리도 산유국이 된다"는 발언에서 비롯됐다는 음모론에 가까운 설이 난무했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져도 납득할 만한 설명없이 지나가는 사례가 많기에 나타나는 자연스런 현상이다.

명씨는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 부부와 자신의 관계와 관련해 "내가 (천공보다) 더 좋으니까 (천공이) 날아갔겠지"라고 주장했다. 명씨가 공개한 '오빠' 카톡에서 김 여사는 명씨를 '선생님'으로 지칭하고 식견이 가장 탁월하다고 장담하고, 완전히 의지한다고 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해괴하고 경천동지할 무속과 관련된 국정 개입 의혹이 나올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서늘해진다.  

윤 대통령 부부 주변에 끊임없이 무속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은 홀로 설 능력이 되지 않아서다. 윤 대통령의 고시합격과 검사 선택도 무속인의 말을 따른 것이라는 김 여사 말처럼 윤 대통령 부부가 지금까지 이룬 것의 상당부분은 무속의 힘이라고 굳게 믿고 있을 터다. 그러니 전혀 준비되지 않은 국정을 운영하려면 무속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역사를 보면 국가지도자가 국민 여론보다 무속에 의존하는 때는 국가가 극심한 혼란에 빠진 때였다. 지금이 바로 그런 시기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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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한국일보 전 주필. 1987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사회부장, 편집국장, 수석논설위원, 주필을 역임했습니다. 만 35년 간의 기자 생활을 마치고 2022년 12월 퇴사했습니다. 오랜 기자 경험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우리 사회 현안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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